간절히 바라던 산책남이 아니다. 레게머리의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 아이다. 왜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이고 피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것일까. 지지리 복도 없음을, 남자 복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말을 걸지 않을 줄 알았다. 어색한 마음에 지나가며 눈웃음을 날리던 찰나였다. 그런데 아뿔싸! 그 아이가 다가온다. 도망칠 수도 없고 어쩔 줄 몰라하며 그냥 걷는다.
‘당황하지 말자’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내 옆으로 와서 걸음을 맞춘다.
생각보다 집요하다. 없던 남자 친구를 자꾸 들먹인다.
걷다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대놓고 바람을 피자는 뜻인가?
이제는 남자애가 생각에 잠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미리 생각을 하고 내뱉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고 싶다.
내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흠칫 놀란다. 사실이다. 물어본 적이 없다. 뭐 심지어는 이름도 안 물어봤으니.
24살이란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 짧은 순간 머리는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대충 말하자!
집요한 아이다. 그런데 몇 년 생인지 계산이 안 된다. 그 짧은 순간에 24살이 도대체 몇 년 생인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괴롭다. 거짓말을 못하겠다. 나이 계산이 안 된다. 평소 약한 계산능력이 여기서 직격탄을 맞는 것이다.
레게머리 아이는 쿨 하게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가 버린다.
이것은 무슨 경우냐. 괜히 진지하게 생각한 거냐? 헛웃음이 났다. 나이를 속이게 만든 놈도, 고민하게 만든 것도 그 아이였는데 저러고 가버린다.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며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빌었다. 다시는 그 아이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