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일 차 /그래서, 몇 년생이야?

by 집녀

그 남자애를 또다시 봤다.


간절히 바라던 산책남이 아니다. 레게머리의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 아이다. 왜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이고 피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것일까. 지지리 복도 없음을, 남자 복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말을 걸지 않을 줄 알았다. 어색한 마음에 지나가며 눈웃음을 날리던 찰나였다. 그런데 아뿔싸! 그 아이가 다가온다. 도망칠 수도 없고 어쩔 줄 몰라하며 그냥 걷는다.

‘당황하지 말자’


“안녕!(영어로 진행되지만 영어로 쓰기 귀찮아 바로 한국말로 쓰겠다)”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내 옆으로 와서 걸음을 맞춘다.


“아.. 안녕! 또 보네?”

“너 운동 열심히 하네! 남자 친구랑은 안 해?”

생각보다 집요하다. 없던 남자 친구를 자꾸 들먹인다.


“아 남자 친구는 여기 없어. 다른 지역에 있어”

“그래? 그럼 여기서 나랑 만날래?”

걷다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대놓고 바람을 피자는 뜻인가?


“하하.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네. 남자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너를 만나지?”

“다른 뜻 없어. 그냥 나랑 만나자고. 어차피 너 공원에 자주 나오는 거 아냐?”

“그건 맞는데. 만나자고가 데이트하자는 뜻이야?”

이제는 남자애가 생각에 잠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미리 생각을 하고 내뱉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고 싶다.


“아니 공원에서 봐서 같이 놀자고”

내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아. 나에게 관심 가져줘서 고마운데. 나 나이가 너보다 훨씬 많아."

"그게 왜? 나 너 나이 안 물어봤는데? “

흠칫 놀란다. 사실이다. 물어본 적이 없다. 뭐 심지어는 이름도 안 물어봤으니.


“음 그게. 너랑 세대차가 좀 많이 날 것 같다는 뜻이야. 너랑 놀 나이는 아니라는 뜻이지”

“그래? 나 24살이야. 넌 몇 살이야?

24살이란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흠. 어쩌란 말인가. 이 자식에게 20살 가까이 많다는 것을 굳이 밝혀야 한다는 말인가? 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아이에게 굳이 진지해질 필요가 있을까?’

그 짧은 순간 머리는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대충 말하자!


“음.. 너보다 한 열 살 많아. 그러니까 놀기는 좀 그래”

“열 살? 난 괜찮은데? 친구 중에도 그 정도로 나이 많은 사람 많아”

“딱 열 살이 아니라 열 살쯤 많다고”

“그래? 정확히 몇 년생인데?”

집요한 아이다. 그런데 몇 년 생인지 계산이 안 된다. 그 짧은 순간에 24살이 도대체 몇 년 생인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음..”

“몇 년 생인데?”

“음”

괴롭다. 거짓말을 못하겠다. 나이 계산이 안 된다. 평소 약한 계산능력이 여기서 직격탄을 맞는 것이다.


“미안해. 여하튼 우린 아닐 것 같아!”

“그래? 알겠어! 다음에 봐!”


레게머리 아이는 쿨 하게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가 버린다.

이것은 무슨 경우냐. 괜히 진지하게 생각한 거냐? 헛웃음이 났다. 나이를 속이게 만든 놈도, 고민하게 만든 것도 그 아이였는데 저러고 가버린다.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며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빌었다. 다시는 그 아이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