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일상

육체노동의 가치가 전멸한 세상에서 나는 땅콩을 깐다

by 집녀

정월대보름을 맞아 선물 받은 부럼 한 봉지.

한 참을 쳐다봤다.

견과류를 좋아했다면 진작에 덤볐을 것이나 던져놓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까고 싶었다.

에라 내가 안 먹으면 엄마라도 드려야지 라는 생각에

한 개 둘 까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이 됐다.


티브이에서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쇼트 경기가 한창이다.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전에 까자.

호두가 생각 외로 쉽게 박살이 나 인이 났다.

까다 보니 땅콩을 까는 것이 새삼 재밌었다.

비닐봉지에는 빈 땅콩 껍질이 가득 차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통에는 속살을 드러낸 땅콩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 10분이면 다 깔 줄 알았던 땅콩 까기는 거의 쇼트 한 그룹 경기가 다 하도록 까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재미나더니 중간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 육체적 노동의 가치가 무엇인가.

차라리 까 놓은 땅콩을 사다 먹고 까는 시간에 다른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

아니다. 이렇게 까서 결국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까 놓은 땅콩은 더 비쌀 것이다.

아니다. 그거 얼마 한다고 30분 넘게 피 같은 시간을 땅콩을 까고 있는가.


흔히들 단순 육체노동은 온갖 잡생각을 잊게 해준다고 한다.

육체노동이 명상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 단순한 땅콩 까기를 하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누군가는 하고 있을 그 단순한 육체적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는 이 세상에 화가 났다.

(뜬금없고 쓸데없는 사고 전환)


육체적 노동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농경사회에서부터 수렵 사회까지 우리는 육체노동을 통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육체노동을 지금 사회에서는 무시하고 가치 없는 일로 여긴다.

육체노동에 집중하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한다.

그럼 어떤 노동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머리로 일하는 것이 노동인가.

시간이 금인 부자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에게 이 땅콩까기는 단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바보들의 행동인가.

다시 말해 이렇게 땅콩을 열심히 까고 있는 것이 무시받을 일인가!(맥락 없는 결론까지)


땅콩 까기는 30여분 뒤에 끝이 났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다 깠다는 성취감보다는 또 쓸데없는 일에 집중해버렸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노동은 신성하다.

땅콩까는 일이 신성하고 보람된 일로 여겨지는 사회가 그립다.


까기 시작할 때 상황
다 까고 난 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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