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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상

'자식들에게 이제 다 줘야지'

by 집녀

은행 옆자리 할머니가 업무를 보고 계셨다.

한 여든 다 되셨으려나.

혼잣말을 계속하셨다.

"이제 자식들에게 다 줘야지"

처음엔 그냥 흘려 들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또 한숨을 쉬며 혼잣말처럼 하셨다.

"이제 자식들에게 다 줘야지"


할머니는 돈을 찾으러 오셨나 보다.

가만히 들어보니 할머니의 인생이 흘러나온다.

젊은 은행 여직원을 상대로 인생사를 풀어내셨다.

"45년을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했지.

이제 사람도 써서 해. 여기 말고 통장도 많아. 세계여행 가려했는데

몸이 안 좋아 못 가겠어."

그리고 또 조금 있다. 혼잣말로 한숨을 섞으며

"이제 자식들에게 다 줘야지"


순간 나는 내 업무를 뒤로 하고 할머니를 붙잡고

"절대로 자식들에게 돈 다 주시면 안돼요! 본인 돈 끝까지

어느 정도는 갖고 계셔야 해요!"

라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보다 업무를 빨리 마치고 은행을 나섰다.

은행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돈을 맡겼나 보다.

그 돈을 오늘 찾으러 온 것인가 보다.

"잘 있어" 하면서 떠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자식들에게 돈 주지 말라고 참견이라도 했어야 했나.

아니야 나보다 훨씬 더 잘 사시는 분일 거고

자식들에게 돈 다 주는 건 아니겠지.


"이제 자식들에게 다 줘야지" 하면서 한숨을 같이 내쉬었던 것은

마음 한편에 본인도 아쉬움이 큰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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