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석양무렵이라면...

2025.11.18. 포르투갈 리스본

by 집녀

일상에서는 해가 뜨던 지던 별 신경도 안 쓰는데,

왜 항상 여행을 가게 되면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집착하게 될까?

기막힌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집착?

남들 다 가봤다는 그곳에, 그 시간에 있어야 한다는 집착?

여행 중 해 질 무렵 숙소에서 뒹굴고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나였다.

특히 석양 무렵 시간에 있어야 할 곳에 없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7개의 언덕으로 만들어진 도시 리스본, 다시 말해 곳곳에 전망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만큼 선택의 고민도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디로 갔냐고? 조르주성이다.

이유는? 여행책자 제일 앞에 소개돼 있고, 검색에서도 제일 먼저 나온다.

대표 전망대라는 뜻이다. 많이 가는 데에는, 추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28번 트램(리스본에서 한 번은 타봐야 한다는 그 트램)은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기에 그냥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버스는 정문 코앞에 내려준다. 괜히 28번 트램 타려고 하다가 많이 걷지 마시길.(다만 이러다가 저번 방문 때처럼 28번 트램을 결국 못 타지 않을까..)


조르주성은 리스본 알파마 지구 제일 꼭대기에 있다.

탑과 성곽을 따라 펼쳐진 돌길을 걸으면 로마시대 때 지어졌다는 조르주성의 역사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석양 무렵 오렌지빛이 돌기 시작하면 반질반질한 돌이 보석처럼 반짝이기 시작한다.

몽환적인 세피아톤으로 공기가 변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제일 낭만적인 순간이다.

혼자 온 사람들끼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질 수도, 매력 없던 남사친 여사친도 어느 순간 멋지고 예쁘게 보이는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여행지에서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에게 석양시간은 중요한 기회다.

물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석양시간은 황홀하다.

삭막했던 푸른빛 돌던 세상이 발그레해지는 순간. 마음이 몽글해진다. 살아온 날들도 되돌아보게 되고,

살아갈 날들도 다짐을 하는 순간이 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조르주성 전망대에는 바글바글 대고 있었다.



KakaoTalk_20251216_111502929.jpg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테주강이 보인다.


"제가 사진 좀 찍어드릴까요?"

엄마와 이래저래 안 나오는 각도로 사진을 찍던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

한국 여자분이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핸드폰을 맡기고 온갖 포즈를 취했다.

"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꺄악! 혹시 사진작가세요? 너무 예뻐요! 인생샷이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사진이 나왔다. 찬란한 석양이 엄마와 나를 감싸고 있었고 우리 둘은 마주 보며 웃고 있었다. 오버 떨지 말라는 엄마 말에도 정말 예쁜 사진을 건졌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 나도 찍어주겠다 했지만 극구 사양해서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 참 아름다웠는데 말이다.


KakaoTalk_20251216_111527634.jpg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리스본 시내



한국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혼자 여행 온 한국여자분들이 많았다.

와인 한 잔 들고, 아니면 이어폰 끼고 석양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어떤 상념에 빠져서 석양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도 그랬다. 홀로. 일부러 고독을 즐기려고.

고독을 즐기러 여행을 간다는 말에 지인은

"평소에도 아무도 옆에 없고 고독하던데 뭐 굳이 해외에서까지 가서 고독을 찾냐"며 비웃었다.

비웃는 말이었는데 맞는 말이기도 해서 더 이상 홀로 여행을 가지 않기로 했다.

2021년 쿠바 여행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혼자만의 여행은 없었다. 앞으로도 혼자 여행은 가고 싶지 않다.

외롭다. 그리고 엄마랑 가는 여행이 제일 좋다.



KakaoTalk_20251216_111448571.jpg 지금 보니 엄마의 모습이 왜 이리 외로워 보이지?


엄마가 지는 해를 보며 말했다.

"서글프네.. 내 인생 같구나..."


'엄마 그럼 엄마는 지금이 제일 예쁠 때야! 서글퍼하지 마!'

혼잣말로 엄마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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