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을 나서는 게 가장 힘들다.

2025.11.19 리스본

by 집녀

여행 중 제일 힘든 순간은 바로 호텔 문 밖을 나서는 순간이다.

오늘 하루 일정을 완수할 것을 다짐하며,

그것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 생각에 벌써부터 진이 빠지며.

굳이 돌아다니지 말고 숙소서 뒹굴거릴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문 밖을 나서기 위한 준비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밥 먹고 칫솔질하기, 대장 비우기, 짐 다시 확인하기 등등.

조식을 먹고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저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누적되는 여행의 피로가 발을 더 무겁게 한다.


나도 이런데 엄마는 어떻겠는가.

여행을 앞두고 가장 많이 걱정한 것은 엄마의 건강과 체력이다.

여든을 앞둔 엄마를 위해 무릎 핫팩, 어깨 핫팩, 수면 핫팩, 무릎보호대 등 많이도 챙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갑자기 무릎이 안 좋아지셨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이번 여행에서도 엄마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무릎이 제대로 버텨줄까였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하루 2만 보 가까이 걷고 있다. 가능한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철저히 이용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다행히도. 아직 무릎은 괜찮으시다. 신기할 정도로 괜찮으시다.

엄마는 무릎을 많이 단련시키니 오히려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하신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좋아지신 것인지 처음엔 의심했지만

재차 확인을 거친 결과 정말 무릎이 좋아지신 것이다. 다행이다.


체력과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2주간의 여행에 선뜻 나선 이유는

엄마는 나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 딸내미는 똑똑해서 왠만한 가이드보다 훨씬 좋은 곳에 많이 데려다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믿음에 부응하는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야 하지만 실상은 불친절하다.

오늘 어디 갈 건지 여러 번 설명해도 까먹으시기 때문에

그냥 대충 설명해 드린다.

오늘은 좀 추운 데 갈 것이다. 오늘은 좀 많이 걸을 것이다.

오늘은 되게 유명한 곳에 갈 것이다. 오늘은 점심때를 못 맞출지도 모른다 등 등.

그런 불성실한 브리핑에도 엄마는 새롭게 펼쳐질 세상을 기대하며 힘을 내신다.

일정짜랴 통역하랴 길찾으랴 힘든 딸에게 짐되지 않기 위해

더 화이팅하시는 것일수도.




KakaoTalk_20251222_103426870.jpg 하루의 시작 전 마음을 다잡고 계시는 엄마.




호텔 문을 나서는 그 순간.

아. 오늘도 하루 종일 기나긴 여정이 이어지겠구나라는 생각과.

오늘의 일정이 뒤틀어지지 않고 잘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오늘도 아프지 않고 잘 버텨야 한다는 마음이 발동한다.

밤새 그렇게 잠을 자고도, 시차가 아직 적응이 안 됐는데 아침시간대가 그렇게 졸릴 수가 없다.

호텔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하품부터 한다.

눈이 슬슬 감긴다.

그러다가 뒤따라 오는, 나 하나 바라보고 뒤따라오는 엄마를 보면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를 믿고 오는 엄마를 위해 오늘 하루도 힘을 내야 한다.

오늘 하루 엄마에게 최고의 일정을 선사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다짐하며 뒤처진 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


"엄마 오늘도 한번 씩씩하게 놀아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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