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못 찍는 부모님 구박 마세요.

2025.11.19. 리스본-신트라-호카곶-리스본

by 집녀

"아니! 아니! 이렇게 말고.. 하늘을 좀 더 나오게. 내 몸은 전체가 다 나오게!!!"


동화 속처럼 예쁜 페나성(리스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신트라에 있는 궁전) 안에서 한국어가 크게 들린다.

딸이 아빠한테 짜증을 내고 있었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부모님과 딸 이렇게 세 명이 여행을 왔나 보다.

그런데,

한 두 번으로 그칠까 싶었던 딸의 구박이 계속 됐다.

예쁘게 사진이 나올 만한 자리에서 결과물이 안 나오자 사진을 찍고 있는 아빠를

질책하는 것이었다.


KakaoTalk_20251222_170928406.jpg 동화속에 나올법한 페낭성

처음엔 웃으면서 지켜봤다.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처럼.

그런데 딸도 참 집요하다. 나 같음 아예 기대도 안 할 텐데. 딸의 사진 집착이 대단하다.

아빠에게 계속 사진을 부탁했고 맘에 안들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무안해하는 아저씨에게 계속 꽂혀 있었다.

딸의 질책에 서서히 마음이 상하기 시작한 듯하다.

딸과의 여행을 기대하며 옷도 아주 멋있게 맞춰 입으신 듯한데,

맘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페나성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그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

마침 아저씨가 내 옆쪽에 있었다. 여전히 아저씨는 풀이 죽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꾸 입이 근질거렸다.

"아버님 속상해마세요 원래 딸들은 다 그래요.. 저도 아빠한테 그랬어요."

이렇게 말하면 아저씨의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말할까 말까를 열 번 정도 고민하다 결국엔 말하지 못했다.

아저씨가 더 무안해질까 봐.


나 또한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이제는 엄마와의 여행으로 됐지만.. 사진을 건지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진 구도도 엉망이고, 손가락 사진(손가락이 렌즈를 가리는 사진)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그중에 한 두장은 건질만하다. 그것만도 어디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나를 이렇게 애정으로 찍어줄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느냐.


아저씨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었던 나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위로하며 속죄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찍어준 사진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그 딸도 빨리 알아야 할텐데.



KakaoTalk_20251222_150038836.jpg 그나마 덜 걸린 엄마 손가락.



KakaoTalk_20251222_150453295.jpg 손가락 걸린 사진






(예전 아버지와 관련해서 썼던 글)

https://brunch.co.kr/@yoon9j3r/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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