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8. 포르투갈 리스본
파티마에서 리스본, 비록 1시간 20분의 짧은 이동거리였지만 대도시로 간다는 마음에
긴장됐다.
일곱 개의 언덕 위의 도시, 1755년 대지진으로 도시의 80% 이상이 붕괴된 도시,
그리고 내겐 '리스본의 야간열차'의 그 도시.
역시 두 번째 방문이지만 버스터미널 도착과 함께 대도시에 왔다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소지품도 잘 챙기고!'
마음을 다잡으며 당장 엄마에게 말했다.
"핸드폰 잘 챙겼지?"(이 말은 여행 내내 하루에 수십 번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숙소를 정할 때는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대중교통이 바로 앞에 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관광지로 가는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물론 안전하고 깨끗한 곳도 중요하지만 4성급 이상은 대부분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는 것이 여행을 다니면서 가진 내 나름의 판단이다.
이번 숙소도 위치깡패다. '문디알 호텔'은 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한 28번 트램이 바로 앞에 있었고, 지하철 버스 모든 곳에서 5분 거리 안에 위치해 있다.
늦은 점심을 위해 선택한 것은 '우마 레스토랑'. 몇 년 전 친구와 왔을 때도 먹었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왔다. 이 맛은 엄마가 꼭 봐야 하는 맛이다! 무엇보다 안 좋아진 속을 달래는 데는 죽 같은 밥이 최고 아니겠느냐. 조그만 레스토랑에 할아버지가 주인이시다. 몇 년 전 그 할아버지 맞는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건재하셨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도 직접 식당을 운영하시다니...
해물밥은 요리 특성상 한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애피타이저로 시킨 문어샐러드가 입맛을 확 돋우며 먹을 의지를 살려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훨씬 벗어난 오후 3시쯤이어서 웨이팅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손님은 꽤나 있었다.
옆좌석 다닥다닥 붙어먹어야 했기에 옆 손님은 어떤 음식을 시켜 먹는지, 내가 시킨 음식은 어떤 모습인지 미리 확인도 가능했다.
그러던 와중에 옆좌석에 손님이 들어왔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추위에 패딩을 겹겹이 입은 나와는 반대로 그 동양인 남자는 민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솔직히 앉고 나서야 남자인 줄 알았다. 엄마랑 같이 들어온 그 남자는 날씬하고(나보다), 결 좋은(나보다)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둘의 관계가 엄마와 아들이라는 것은 'Mom~' 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엄마한테 자주 하는 그 'Mom~'을 남자가 뱉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엄마를 마주하고 앉듯이 그 남자도 자신의 엄마를 마주하고 나와 나란히 앉게 됐다.
한쪽은 엄마와 딸, 또 다른 한쪽은 엄마와 아들.
해물밥을 기다리는 내내 지치기도 했고, 별 할 말도 없어 조용히 앉아있던 나와는 달리,
그 남자'애'(나보다 어리기에 남자애라고 하겠다)는 계속 종알종알 댔다.
"Mom~샬라샬라", "Mom~ 솰라솰라"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한시를 쉬지를 않고 계속 떠들었다.
동양인이지만 영어로 말했다. 중간에 중국어를 섞어 말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짧은 영어 리스닝 실력에 듣자 하니 여행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니다. 잘못 보면 동석인 줄 알만한 딱 붙은 바로 옆자리라 안 들릴 수 없는 거리니까.
"Mom~ 여행지 중에 어디가 좋았어? 한국 안 가봤지? 부산도 되게 좋아!"
부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저 그곳에서 왔어요!"라고 자연스레 맞장구칠뻔했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왠지 말을 괜히 꺼냈다가는 밥 먹는 내내 말을 시달려야 할 것 같아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도 한참 계속된 남자애의 종알종알.
마침 우리 쪽 해물밥이 나왔고 그 크기에 놀란 엄마와 옆집 '엄마는'동시에 입을 벌렸다.
옆집 엄마에게 세련되게 살짝 웃음을 보이며 해물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도 왠지 옆쪽 대화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보다 더 간드러진 목소리로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남자.
남자의 엄마는 흰머리 가득하지만 6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말에 참으로 잘 귀 기울여 주고 있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아들의 종알거림이 사랑스러운 듯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엄마와 나.
배고파서 해물밥에 집중하던 엄마가 갑자기 " 니보다 더 살갑게 하네"라고 툭 말을 던졌다.
엄마한테 주의를 줬다. 옆테이블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라는 눈짓 발짓으로. (영어도 중국어도 잘하는 것을 보니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웬만한 딸보다는 엄마에게 잘하지만,
밥을 먹는 와중에 옆 남자에게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살가움을, 너의 다정함을 내가 당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 그런 다정한 아들을 둔 엄마는 무슨 복일까.
그 엄마 복 받았네.
엄마가 모자를 두고 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다시 찾은 식당에
아직도 엄마와 아들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40분이 훨씬 지났는데도 말이다.
이 식당 일정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것처럼...식은 해물밥 앞에서도 그들의 다정스러운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