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기
이 길이 싫어
내 발가락 사이를 징그럽게 파고드는
이 불쾌한 모래의 감촉을
난 정말이지 증오해요
소름 돋도록 완벽한 당신은 나에게
싸구려 신발 한 짝도 신겨주질 않네요
내 발에서 검은 피가
서늘하게 인사해요
이 길 위에서
나 너무나 아파요
왜 하필 나는 이런 길인 건지.
내가 걸어야만 하는 이 길을
끊임없이 증오했다.
이 길의 모습은
검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내가 발을 딛는 순간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나쁜 길이었다.
반면 내 옆에는
착한 길이 있었다.
그 길의 모습은
하얗고 보송하고 잘 다듬어진
친절하게도 튼튼한 구두까지 준비되어 있는
그런 착한 길이었다.
이 상반되는 두 길 사이에는
가시로 무장된 철조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쁜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착한 길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늘 착한 길을 걷길 희망했기에
가시로 무장된 철조망을 넘어보려 애를 썼지만
그때마다 맨발의 나는 피를 흘렸고.
철조망 너머의 사람들은
빛나는 에나멜 수제구두를 신은 채
철조망 너머의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하필 나는 이런 나쁜 길 위에 있는지.
왜 나는 착한 길을 걸을 수 없는지.
착한 길을 걷는 사람과
나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속도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는데도
착한 길을 걷는 너는 늘
나에게 뒷모습만 보여주었고.
나는 그런 너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우울함으로
나 자신을 깎아내렸는지.
그러다 결국 나는 포기한 것이다.
네가 있는 착한 길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이 나쁜 길에 익숙해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같은 도착점을 향해 걷는
너와 나였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은
길의 차이였다.
너는 이미 도도하게
나를 앞서 간지 오래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히 걸어서
네가 도착해있을 그 도착점에
2등으로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래서 난 이 나쁜 길을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네가 편히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눈물 흘리며 이 길을 걸었다.
신발도 없는 내 발바닥에 박힌
수많은 유리조각과
수많은 벌레들의 잔해들.
내 발에서 흘러나오던 새빨간 피는
이제 검은색이 되기 시작했고.
내 발톱은 다 빠져버렸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앉아
내 발 밑 상처들의 피가 마르길 기다리며
잠시 쉬어갔다.
어차피 내 목표는
네가 있을 그곳에 두 번째로 도달하는 것이니까.
좀 늦어도 상관없었으니까.
피가 마르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언제부턴가 이 나쁜 길이
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 발에 상처가 나는 간격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만큼 중도에 멈춰야 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뎌진 건지.
길이 좋아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나는 점점
이 나쁜 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도착점이 보였다.
그런데 덩그러니 서있는
너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는 의아해하며 끝까지
이 나쁜 길을 걸어 드디어
너의 옆에 나란히 설 수 있었다.
나는 벅찼다.
비록 늦었지만 이렇게
너의 옆에 나란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비로소 고개를 돌려
너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너는 왜
울고 있는 거니.
너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고 그 앞에는
또 다른 길이 있었다.
그 길은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빛나는 길이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길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다이아몬드 길은
육각형의 다듬어진 모서리들 때문에
날카로운 뾰족함을 드러냈고.
지금까지 너에게 방패가 되어주었던
그 에나멜 수제화는 이미 닳은 지 오래되어
한 발짝만 내딛으면 밑창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너는 두려움에 떨며 더 이상
출발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그 울퉁불퉁한 길이
너에게 줄 아픔이 감히 상상도 안되었기에.
그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것이다.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한 채.
반면 내 발에는 굳은살이라는
방패막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어떤 아픔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나쁜 길이 아닌
착한 길이었다고
내가 여태껏 걸어왔던 길은
앞으로 내가 진정으로 빛나는 길을
걷을 수 있도록 훈련시켜준
착한 길이었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내 앞에 찬란히 빛나고 있는
이 다이아몬드 길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 울퉁불퉁한 다이아몬드 길.
내 발에서는 그 어떤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세 가지.
첫째,
이 빛나는 아름다운 길 위를
내가 걷고 있다는 것.
둘째,
이 빛나는 아름다운 길 뒤에서
이젠 네가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
셋째,
이 빛나는 아름다운 길 끝에
어떤 또 다른 길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울지 않고 걸어나갈 것이라는 것.
내 발에는 단단하고 강한 '굳은살'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