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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Nov 13. 2016

초겨울의 골목은 어둡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


골목은 어두워야 아름다워


어느 초겨울 저녁.

함께 골목길을 걷고 있던 네가 말했다.

골목은 어두워야 아름답다고.


나는 너의 말을 왼쪽 귀에 담으며

누런 가로등 불빛 아래

사선으로 나란히 서 있는 우리의

그림자 두 개가 더 아름답다 생각했었다.


같은 골목길을 걸으며

다른 생각을 하는

너와 나였다.




나는 오늘.


너와 함께 어깨를 마주하고

너와 함께 발을 맞추며 걷던

그 골목길에 다시 발을 들여 보았다.


골목은 그때처럼

여전히 비좁고

여전히 꿉꿉한 냄새가 나고

여전히 그늘져있었다.


변한 건 이제 이 골목길 위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때의 나는 얼굴에 검은 그늘을 드리운

깜깜한 사람이었다.


너는 그런 나에게 다가와

함께 골목길을 걷자 했다.

나와 닮은 어두운 골목이었다.


나는 어두운 것을 싫어했었다.

어두운 건 무섭고

어두운 건 지긋지긋했기에.


그래서

어두운 골목길로 이끄는 네가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고,

골목은 어두워야 아름답다는 너의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너의 서운한 말에

찌푸린 얼굴로 응답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누런 가로등 아래

홀로 쓸쓸히 서있자니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오늘에서야

골목은 어두워야 아름답다던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서운하던 너의 그 말은

나를 향한 담담한 위로였던 것이다.




우습게도 초파리 덕분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나의 눈에

초파리가 날아들었고 그걸 내쫓다

우연히 고개를 들게 되었다.


고개를 드니 내가 서있는 이 골목 아래로

수십 개의 가로등 불빛이 줄을 서 있었다.


골목길마다 크고 작은

동그란 노란 별이 달려있었다.

그 별이 비치고 있는 골목길은

잔잔하고 고요했다.


아름다웠다.




너와 내가 서 있던 이 골목길을 향해

그저 묵묵히 걸었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높은 언덕 위에 올라와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도 올라갈 길은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골목의 야경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너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었나 보다.

어둠 속에도 올라갈 길이 있다는 것을.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화려하진 않지만

어둠 속에 비친

잔잔한 골목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때문에 훗날,

나의 어두운 모습이 있었기에

남들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둠 속에 있던 나는 더 빛날 것이라고.


너는 그렇게 어둡던 날 묵묵히

위로했었나 보다.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이미 연락을 하기에는

꽤나 먹먹한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너는 그 먹먹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기쁘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나는 너에게 말했다.

너와 걷던 그 골목에 와 있다고.

골목은 어두워야 아름다운 것 같다고.


너는 한동안 침묵하다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많이 밝아졌구나. 정말 좋다."




나는 언제쯤 너처럼 그 누군가에게

어둠이 아름다운 이 골목을

웃으며 보여줄 수 있을까.


너와 통화를 하며

누런 가로등 불빛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오늘따라 쓸쓸해 보인다.


조만간 다시 걸어야겠다.

어두워서 아름다운 이 골목을

오랜만에.


너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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