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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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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Nov 28. 2016

눈의 동경

깊게 새겨질 나의 발자국


당신은 새하얀 눈을 닮았어요


매년 겨울,

새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코끝이 얼어붙는 줄도 모른 채

소복이 내리는

우러러보곤 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새하얀 눈을

'동경(憧憬)'해왔기에.


그리고 당신은 제가 동경하던

그 새하얀 눈과 닮은 연인이었습니다.




눈을 닮은 당신을

동경했습니다.


내리는 눈을 우러러보듯

키가 큰 당신을 우러러봤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눈처럼 하얗고 깨끗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조심히 걸어요"라고.




저는 당신이 눈 위를 걸으며 만들어 놓은

커다란 발자국을 따라 걷길 좋아했었습니다.


눈 위에 파인 당신의 큰 발자국 안에

나의 작고 초라한 발을 넣으면

동경하던 당신과 발을 맞추는 기분이었기에.


이러한 연유로, 저는 눈이 쌓인 날이면

당신의 뒤를 따라 걷길 좋아했고.


당신은 그런 저를 위해

늘 한 발 앞서 걸어가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저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기엔,

너무나 미온한 저였다는 걸.




당신의 발자국을 조용히 따라가듯.

저는 늘 당신에게 맞춰 살았습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

당신이 가고 싶은 곳

당신이 듣고 싶은 말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당신을 위해 행동했습니다.


하기 싫어도 하고 싶은 척

먹기 싫어도 먹고 싶은 척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그래야만 동경하는 당신이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저의 그런 거짓된 행동이

오히려 당신을 더 멀어지게 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그 모든 척들은 결국

나를 버리는 행동이었다는 걸.

당신에게 나를 속이는 행동이었다는 걸.


당신은 그런 저의 거짓된 모습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는 걸.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걷던 시절,


어쩌면 저는 당신을 동경하는 마음보다,

허름한 운동화를 신은 초라한 저의 발을

당신에게 들킬까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당신은 그런 저발을

궁금해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연인을 위해 모든 걸 맞춰주기만 하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 연애는 거짓될 뿐만 아니라,

서로를 힘들게 하는 연애라는 걸.


그건 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낮춰

생각하는 서부터 비롯된다는 걸.




무엇보다 진정한 사랑은,

연인의 발자국 옆에 내 발자국을

나란히 새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것.




어느새 다시 겨울입니다.


제가 몹시도 동경하는 새하얀 눈이

이제 곧 소복이 쌓일 것입니다.


올 겨울에는

당신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저의 작은 발자국을 새하얀 눈 위에

끝없이 새기고 싶습니다.


그 새하얀 눈 위에 깊게 새겨질,

저의 또렷한 발자국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습니다.


제가 당신을 바라보던

그 동경의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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