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문은 위험만 막은 게 아니었다.
올해 3월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가 쓰던 물건을 대부분 버리지 않았지만, '안전문'만큼은 예외였다. 나는 그것을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치부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내다 버렸다. 내 기억 속 첫째는 화장실 문턱을 넘지도, 부엌 아일랜드 식탁 선반 전기밥솥을 만지지도 않았던, 그런 순한 아이였다. 안전문의 의미가 없었다. 안전문이 활짝 열려있어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내 기억 속에는.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화장실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기어가 안을 들여다보려 안달이었고, 상체를 들어 아일랜드 선반 위를 더듬거리며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어 남편에게 둘이 정말 다르다고 했더니 남편은 첫째도 그랬다고 했다.
"첫째가? 내 기억 속 첫째는 순둥인데? 애기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니란다. 첫째도 화장실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안전문을 쾅 닫으며 "안돼"라고 말했기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 거고, 학습한 거라고.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단단히 부서졌다. 첫째는 순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안전문을 쾅 닫으며 '안돼'라고 소리쳤기 때문에 포기하고 학습했던 것이다. 애초에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려,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을 나는 아이의 기질이라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안전문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치고 살았을까. '위험해', '안돼', '넌 못 할 거야'라는 말로 나와 상대방의 수많은 가능성을 애초에 막아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 안전문만 없었다면, 나와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의 삶의 풍경은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