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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r 17. 2019

독립출판을 만들고 달라진 것들

책이란 매개체가 더 고맙게 느껴지는 요즘

독립출판 <퇴사는 여행>을 만든 지 한 달이 조금 넘게 흘렀다. 2년 전부터 마음속에 짐처럼 남아있던 작은 도전을 해냈다는 점에서 뿌듯하고,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퇴사는 여행>을 내고 달라진 것들이 있다.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하는 글.





1. 창작자, 제작자로서의 도전

"왜 독립출판이었어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의도치 않은 몇 번의 퇴사 덕분에? 나를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퇴사'를 해보는 게 곧 여정이란 의미에서 <퇴사는 여행>이란 제목을 붙였다. 퇴사를 하면 늘 여행을 떠났던지라 '퇴사=여행'이 떠오른 것도 한 몫했다. '일'과 '여행'은 서로 섞일 수 없는 상반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 일과 여행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생의 가장 큰 학교였던 '일'과 '여행' 이야기가 반반씩 섞인 책을 만들고 싶었다.


출판사와 연결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너무 광범위한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솔직히 팔 자신이 없었다. '우선 머릿속에 있는 대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먹자 오히려 걱정이 사라졌다. 서투르더라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떻게든 남는 게 있을 것 같았다. 독립출판은 나에게 창작자, 제작자로서의 도전이기도 하다.



2. 사적인 이야기를 종이 위에 올린다는 것

며칠 전 연희동 '책바'에서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읽다가 수집한 문장.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 리베카 솔닛


괴롭고 슬픈 일을 겪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를 이해한다. 이유랄 것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이 글이 되었다. 내 메모장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글들이 있다. 온라인에는 올릴 수 없던 글을 종이 위에는 올릴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실용성 여부를 떠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페이지 속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퇴사는 여행>에는 아빠에게 쓴 편지가 들어가 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모두에게 말할 수 있었다.



3. 책을 만들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대화들

누군가 나의 행보를 응원해주는 것도 감사하고, 내 경험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말도 감사한데. <퇴사는 여행>을 만들고, 예상하지 못했던 대화가 오고 갔다. 가까운 가족, 혹은 엄마 아빠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책을 읽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아빠도 멀리서 뿌듯해할 거라고, 잘했다고, 앞으로도 용기 있게 잘 살자고 말했다. 할머니는 울면서 말했지만 슬프기만 한 눈물은 아니었다.


이모에게서도, 아빠 친구 분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이모는 내 책을 읽고 이런 말을 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이모가 덕분에 지금의 트렌드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이 나이에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와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에게서는 장문의 메일이 왔다. 두 메일 모두 가장 좋았던 건 마지막 문장이다.

"집필 경험, 여행 경험과 음악 경험, 직장 경험도 풍부한 혜윤아! 앞으로도 너의 삶의 여행기가 어떨까 많이 궁금하구나. 계속 얘기 들을 수 있게 좋은 책 또 나오길 기다리마."
"버닝맨 글래스톤베리... 수많은 다국적 친구들... 혜윤이 처럼 자유롭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건 너의 용기와 순수하고 열린 마음... 그리고 혜윤이 부모님 덕분인 거 같구나.. 샘도 나를 전적으로 믿어준 부모님 덕분에 후회 없는 나의 길을 찾았거든. 책을 읽고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생기고.. 용기도 생겼어. 이렇게 멋진 제자가 있다니 자랑스럽구나~ 정혜윤 파이팅!"

평소였다면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하지 않았을 대화를 나누게 된 게 감사하다. 책을 만들지 않았다면 영영 듣지 못했을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말로 꺼내지 않아도 매개체가 되어준 책이 감사하다.


내가 더 고마운 #퇴사는여행 후기들ㅠ_ㅠ

"챕터별로 적어둔 bgm을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두시다니 이렇게 친절할 때가. 덕분에 좋은 음악 들으며 잘 읽고 있어요:)" - @jay_lifenlike
"혜윤님의 행복 3요소 안에는 <음악>이 있었다. 그녀의 책 챕터마다 함께 들을 음악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얼른 이 책 속에 들어있는 곡들을 들으면서 글을 읽고 싶다." - @lovebrander
"좋은 이야기는 쉼 없이, 여러 번 읽게 한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신기했던 게 '와.. 너무 좋다'하는 파트가 읽을 때마다 달랐던 것. 글은 그대로인데 나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늘 같았던 것은 책을 덮은 순간, 위로와 용기로 가득한 나의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희미해질 때, 꺼내서 읽고 또 읽고 싶은 융의 이야기. 앞으로도 잘 읽을게!" - @applemanism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단순히 내가 내게 그냥 굴러들어 왔다고 생각했던 ‘행운’이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우연이 아닌 그 순간의 나의 선택과 의지들이 만든 작은 점들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 내 선택을 믿고 나만의 점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점들은 기필코 연결되어 나만의 ‘행운’과 ‘기회’로 찾아올 거라는 순간이 있음을 믿으며, 용기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길." - @_kyungin
"책을 읽으면서 운 건 이 책이 세 번째.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의 꿈에 후원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정말 멋진 사람. 닮고 싶은 사람." - @miji1991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간 #퇴사는여행 놓치고 싶지 않은 구절들로 가득한 책. 나에겐 변화의 씨앗 같은 책" - @lihailina
"술술 읽히는 데다가, <퇴사는 여행>이라는 제목답게, 퇴사, 일과 삶, 커리어와 같은 키워드들에 퇴사 기간(?) 동안 다닌 실제 여행지의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풍성하고도 알찬 책입니다." - @haeegri
"글마다 제목 옆에 세로로 적혀있는 BGM, 따시시한 색감의 사진들, 마음을 잔잔히 울리는 글들. 책을 받고 살짝 후루룩 넘기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글들에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 @dingfrog
"단언하기엔 섣부르지만 <퇴사는 여행>은 내게 2019년의 책으로 선정될 듯하다. 가장 필요한 때에 선물처럼 찾아왔고, 이 중요한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큰 힌트를 주었으니까. 혜윤님, 책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읽어 내리니 한결 몰입하기 좋았어요. 눈부신 책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2dollar50cents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후기는 하나하나 찾아보고 있어요.



4. 독립출판으로 닿은 인연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 대표님들과 독립출판을 낸 다른 작가분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있다. 독립출판을 만들고 새롭게 열린 세상과 연결, 이를 통한 하루하루가 또 재밌다.


가능한 한 <퇴사는 여행>이 입고된 모든 서점을 가보고 싶어서 하나씩 방문 중인데, 갈 때마다 나는 또 이것저것 지르고 온다. 매력있는 독립출판이 너무 많다. 작가들의 센스와 노고가 느껴지고, 책방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서 빈손으로 나온 적이 없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긴 글렀다.


독립서점에 입고 메일을 보내고, 환영한다거나 가능하다는 답장이 오면 신기하고 기뻤다. 멋진 공간들에 내 결과물을 놓을 수 있다니! 먼저 입고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그게 그렇게 감사했다. 거절당할 때는 아쉽기도 하고, 조금 속상하기도 했지만, 원하는 모든 책방에 입고할 수는 없으니 인연이 닿은 책방에 더 감사하게 됐다.


앞으로 독립출판 마켓도 도전해볼 계획이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모든 책방지기님들과 독립출판을 낸 모든 작가님들을 응원합니다!


온오프라인 독립서점에서 <퇴사는 여행>을 만나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5. 할 수 있는 일이 +1 되었다.

책의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 인쇄, 마케팅, 판매, 유통까지. A부터 Z까지 전부 다 직접 진행하며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건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짜 텀블벅 데드라인이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못했을 것 같다.


<퇴사는 여행>을 만들면서 처음 해 본 일이 많다.


'인디자인'과 '라이트룸'을 처음으로 써봤다. 몇 달간 영상 보며 씨름하고 어찌어찌 만들다 보니 기초적인 건 다룰 수 있게 됐다. 처음에 만들었던 가제본은 디자인이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인디자인이 익숙해지면서 조금은 더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텀블벅도 처음이었다. 후원 금액이 올라갈수록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텀블벅을 시작한 1월부터 완전한 집순이가 됐다. 안 그럼 큰 일 날 것 같았다. 텀블벅을 해보며 알았다. 후원 해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찌나 고맙던지.ㅠㅠ 너무 고마워서 앞으로 주변에서 누군가 텀블벅으로 뭘 한다고 하면 무조건 후원할 계획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을 후원자들에게 주고 싶었다. 2달가량은 노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대폭 줄였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며 거의 3주간은 매일 새벽 4-5시에 잤다. 일과 병행하며 만드는 건 정말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도 은근 벼락치기 스타일이라, 닥치니까 하게 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갈수록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여서 할 게 많았다. 글도, 디자인도 마음에 안 들어서 들어내고, 다시하고를 반복했다.


글은 몇 번 퇴고했는지 셀 수가 없다. (어떤 챕터는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 더 되려나? 진짜 셀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 보니 작은 실수들이 보인다 ㅠㅠ) 디자인도 여러 번 뜯어고쳤다. 종이 재질도 바꿨다. 완성도를 위해 주말을 한번 더 확보하고 싶은 욕심에 결국엔 배송일을 4일 정도 미뤘다. 그래도 어쨌든 결론은 해냈다는 것!! "마감이 가장 큰 영감"이란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텀블벅에서 선물로 같이 구성했던 dear wanderer 더스트백과 스티커. 스티커가 반응이 좋았다!

더스트백, 스티커, 투명 지퍼백, 엽서, 책을 직접 만들었다. 책 만드는 게 가장 힘들었고, 스티커 만드는 건 너무 재밌었다. 뭐 만드는 게 제일 재밌다. 앞으로 또 어떤 걸 만들어볼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책은 1쇄로 600권을 찍었는데 500권 넘게 나가고 60권 정도가 남아있다. 솔드아웃이 되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


결론은 <퇴사는 여행>을 만들고 감사할 일이 늘었다는 것. 그리고 또 새로운 길 하나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 감사합니다.




<퇴사는 여행>으로 광화문 북바이북에서 북토크를 합니다.

- 일시: 4월 26일(금) 오후 7시 30분 ~ 9시

- 장소: 광화문 북바이북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지금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

퇴사 이후의 삶을 막연하게 꿈꾸고 있는 분들

 퇴사를 결심했는데 퇴사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한 분들

 퇴사를 했는데 여전히 앞으로의 삶에 대해 방향을 정하지 못한 분들

▶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      

[출처] <퇴사는 여행> 정혜윤 작가스테이지(부제 : 방황하는 이들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4월 26일 금요일)|작성자 북바이북


여러 고민에 제가 '정답'을 알려드리긴 어렵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며 퇴사, 여행, 이직을 통해 깨달은 것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느꼈던 이야기들을 해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여러 번의 퇴사를 하게 되며 방황했던 이야기와, 고민이 많았음에도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름대로 길을 찾아간 방법들을 나눌 예정입니다. 마케터로서의 정혜윤 이전에 인간 정혜윤으로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될 것 같아요 :)


"당신의 자발적 방황을 응원합니다."



 

본 글을 쓰고 반년이 흐른 시점에 덧붙이는 글.


6. 독립출판에서 기성출판으로

독립출판 1쇄를 매진시키고, 2쇄를 추가로 찍은지 얼마 안됐을 때 쯤, 놀랍고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좋아하는 출판사인 북노마드에 책을 보내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북노마드 대표님이 먼저 내 책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좋아하는 출판사를 만났고, 좋은 대표님, 편집자, 디자이너를 만나 독립출판과는 다른 매력의 <퇴사는 여행>이 출판 됐다. 이제는 <퇴사는 여행>을 떠올리면 파랑과 노랑이 떠오른다.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콘서트를 한 지 한두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와는 다른 직업을 가진 그녀지만 뭐랄까, 동지애가 느껴졌다.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건 짜릿하고도 두려운 일이다. 그 일을 몇 번이고 멋진 여행으로 만들어냈던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제 갓 여행을 시작한 내 마음속 짜릿함의 비율이 51퍼센트가 되는 것을 느꼈다.

- 음악가 장기하


좋아하는 음악가 장기하의 추천사를 받았고, "만약 이 책이 흔하디흔한 ‘퇴사하고 여행하는’ 이야기라면 저는 책 소개를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감사하고 감동 받았던 출판사 서평을 받았다.


놀기로 결심하며 페북에 썼던 글

몇 번의 북토크를 준비하면서 다시 찾아봤던 2017년 초의 페이스북 글. 이 글의 마지막에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묶어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때부터 간직한 작은 꿈을 2년이 되어서야 독립출판 형태로 이뤘고, 정식으로 출간되며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지방 도서관의 어르신들, 독립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브런치 때부터 내 글을 구독해준 사람들 등.


아직도 '작가'라는 호칭은 새삼스러울 때가 많지만, 몇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불리면서 예전보다는 익숙해진 지금이 감사하다. 독립출판이라는 재밌는 세계의 문을 열었다. 그 문은 또 다른 여러 세계로 나를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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