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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Aug 20. 2015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마법 같은 순간

온통 파랗고 하얀, 가슴이 탁 트이는 산토리니를 기억하며.


여행하기를 좋아합니다. 유명 관광지를 찍고 찍고 후다닥 장소를 옮기는 그런 여행 말고요, 낯선 장소에서 현지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길거리 음식을 먹고,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차도 한잔 마시고, 벤치에 누워서 하늘도 보고...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를 실감하며 그 곳의 분위기와 시간을 음미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유명 관광지를 안 가는 건 아니에요. 여행책에서 필수코스로 꼽는 곳들도 가긴 하지만, 늘 여행을 마치고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일상적인 순간에 조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생소함을 느꼈던 스냅샷 같은 광경들이었습니다.


브런치에 그런 스냅샷 같은 순간들과 저의 여행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2011년, 엄마와 여동생과 갔던 산토리니 이야기예요. 딱 이맘때쯤 갔으니, 벌써 4년 정도 흘렀네요. 

모든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모두 무보정입니다. 


산토리니 너는 오 쏘 뷰티풀.

산토리니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관광지가 몰려있는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 마을에 숙소를 잡아서, 꽤 긴 거리를 버스인지 택시인지를 타고 온 탓이다.


아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그 광경이란.

짐을 침대에 던져두고 야외 테라스로 나와 눈 앞의 전경을 감상했다.

해는 바다에 걸려 있었고, 바다는 마치 구름같이 보였다.

하늘색이 어두워질수록 경계선이 모호해졌다. 

다음날 세상은 온통 파랬다.

바다도, 하늘도, 그리고 건물도.

모두 포카리스웨트였다. ㅋㅋㅋ 


이런 곳에서 어떻게 기분이 시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라리라라라라~ 라라~ 라라~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산토리니의 매력에

나도 엄마도 내 동생도 마냥 행복했다.

어딜 걸어도, 어딜 찍어도 엽서.


사진을 찍을 곳이 넘쳤다.


물론 여행을 하면 사진 찍을 곳 천지지만,

산토리니는 빛도 잘 들고, 아무 데나 대충 찍어도 엽서가 찍히는 바람에 눈이 핑핑 돌아갔다.


유럽에 카메라를 여러대를 가지고 갔는데, (나는 카메라를 -특히 필카를- 모은다)


산토리니에서는 올림푸스와 펜삼이, 그리고 라사르디나 로모로 사진을 찍었다. 물론 아이폰으로도 찍었다.


펜삼이 사진들은 빛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사진이 모두 거의 하얗게 나왔다.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펜삼이 사진들은 생략하겠다.


라 사르디나가 담은 산토리니의 모습. 산토리니와 로모의 색감이 마음에 든다. 

순백의 건물들 사이사이에 분홍 꽃들이 포인트.

역시 사르디나가 담은 산토리니.

그리스 국기도 산토리니처럼 싱그럽다.

어딜 걸어도 눈 앞엔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여행을 할 때면 새삼스럽게 느끼곤 했다.

'지구에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 많다'

'세상은 넓고, 내가 못 가본 곳은 아직 많구나'


산토리니도 그런 생각이 든 곳 중 하나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을 때도 청량하고 아름다웠지만,

노을이 질 때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흰색 건물들도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알록 달록한 산토리니의 골목 골목.


사실 골목이랄 것도 없지만, 산토리니의 길과 건물 사이사이를 걷는 재미가 있었다.


길변에 있는 갤러리와 상점도 산토리니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재미있게 구경했다. 


가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여행 기념품으로 그림을 한 장씩 샀다. 생각보다 비싸지도 않았고, 집에 와서 벽 곳곳에 걸어두니 보기도 좋고, 가끔 가다 한번씩 여행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서 또 좋더라.

지역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보는 건 늘 즐겁다. 

산토리니에는 각진 건물이나 길이 별로 없다.  

건물도 둥글둥글 길도 둥글둥글하다. 

그래서 좀 더 정감 가는 것 같다. 

주변 환경이랑도 잘 어우러지고, 더 자연스럽다.


산토리니 건물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하얀색 집에 밝고 톡톡 튀는 색이 칠해진 문이나 계단이 많이 보였다.

레스토랑도 아니고 상점도 아닌 것이, 산토리니 현지인들이 사는 집 같았는데

내 눈에는 너무 귀엽고 신기해 보였다.


특히 세 번째 사진은 마치 누가 연출해놓은 느낌이었다.

빛바랜 하늘색 문과 창문. 오래된 자주색 의자.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 몇 장.


마치 연출된 것 같은 우연의 순간들을 발견하는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엄청나게 귀여운 다이아몬드 문 앞에서 한 컷. 

어쩜 마을이 이렇게 귀여운지. 만화 속에 또는 소설 속에 나오는 마을들 못지 않았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공중 전화박스. 

왼쪽에 붙어 있는 '칵테일 바' 간판 때문에 더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전화를 거는 게 칵테일 바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 같은 거면 재미있을 텐데.

뉴욕의 Please don't tell  바처럼.



산토리니에서 마주친 마법 같은 순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마주했다.

산토리니에서 '아틀란티스 책방'이란 서점에 들리게 되었을 때다.

아틀란티스 책방에 내려가는 길에는

보물상자에 여러 가지 책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 가방 안에 귀여운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광경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신났는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나는 늘, '마리와 나'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도 실현될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믿었었던 것 같다.

물론 구름 위를 여행한다던지, 그렇게 환상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행을 하면서 가끔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들은 몇 번 있다.


고전소설이 가득 찬 가방 안에서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나는 그런 만화와 같은 특별함을 느꼈다.


이건 그저 여기서는 매우 일상적인  일일 뿐이었다.

전혀 연출된 것도 아니었고, 억지로 이 고양이를 이 가방 안에 눕힌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길고양이가 어쩌다 보니 서점에서 꾸며놓은 보물상자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뿐이었지만,

나에게는 실로 마법과 같은 순간이었다.

고양이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매우 클래식한 책들을 침대 삼아, 매우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책방에 들리는 현지인에게 이것 좀 보라고 신나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양이 머리를 한번 토닥 거리 곤  말 뿐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서,

산토리니를 추억하면 책으로 가득 찬 이 가방 속에서 낮잠을 자 는 고양이가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예전에 본 '마리 이야기'라던지 지브리 만화 속에서 본 순간이 현실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아틀란티스 책방 역시 꽤나 특별했다.

책방에 들어가니 온갖 책들이 작은 공간에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서 토끼굴에 책방이 생기면 이런 느낌일까.

호기심이 많은 눈으로 보자니

책방의 곳곳이 신기하게 보였다.

천장에는 이렇게, 단어로 이루어진 원이 있었고,


벽에는 주인이 없는 새를 위한 새장이 붙어있었다.

책방에서 마주친 '공주병에 걸린 공주' 책.


마침 다양한 언어의 책이 있어 이곳에서 나는 책을 3권 정도 구입했다.

하나는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집이었는데, 

그의 초기 작품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이었다.


-

아무튼,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이 책방에서 구입한 책들을 꺼내보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 책 말고 나머지 책  2개는 수필집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국제봉투와 함께 딸려왔다.

국제봉투가 딸려오는 바람에, 에세이집을 모두 읽은 후, 

나는 그 특별한 선물을 좋아할 것 같은 내 친구들에게 앞면에 편지를 써서 책 겸 편지를 보냈다. 


그것조차도 참 낭만적인 일이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책을 모두 읽은 후,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라니.

여행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다.



-

모두의 경험이 다르겠지만, 산토리니는 특히나 느리게 여행하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혹시나 산토리니를 갈 계획 중에 있다면, 별다른 계획 없이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길을 잃음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지냈던 숙소는 위와 같이 생겼다.


여기서 엄마와 동생에게 라면을 끓여줬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라면 중에

내가 끓였지만서도, 이때 먹은 라면이 가장 맛있었다.


하긴, 저 테라스에서 무언들 먹어도 안 맛있을까 싶지만


산토리니를 갈 계획에 있다면, 산토리니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내 동생과도 산토리니에서 인생 사진 몇 장을 남겼다.ㅎㅎㅎ

그녀의 루믹스로 찍은 우리의 그림자 사진.


2011년 8월 산토리니에서 우리는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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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어요. 펜삼이로 찍은 빛바랜 사진들도 몇장 찾아서 올립니다:)

위 사진이 고양이 머리를 토닥거리던 현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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