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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Oct 20. 2016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철학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고, 누군가와 왜 함께 하기로 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일에 있어서 내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왜 하는지 알고 싶어 할 때, 누군가가 "그냥 해야 되는 일이야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한다면 나는 전혀 설득이 되지 않는다. 불충분한 설명과 '그냥 하라니까 해'식의 지시는 아무리 열정적인 사람도 아무런 영혼 없이 일을 하게 만든다. 나는 꼭두각시처럼 일할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왜'가 충족되지 않는 일은 누군가에겐 고통이다.


내가 만난 나의 파트너들도 '왜'를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엠디로 일하게 되면서 나의 영업방식은 '내가 A 줄게 넌 B 줘' 형태였던 적이 없다. 그런 영업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네가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래"라며 단정 지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안됐지만 아마도 끝까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숫자가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파트너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상 그랬다. 돈이나 숫자에 급급하지 않은 곳도 많고, 급한 상황이어도 일의 철학적인 부분을 더 우선순위로 두는 곳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도 이 '왜'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한 파트너들은 내가 평소에도 좋아하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공연이든 전시든 그들의 팬으로서 나는 그 컨텐츠를 존중함은 당연하고, 그런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 좋아하는 밴드 공연을 만드는 사람, 멋진 전시와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일로 만날 수 있는 게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난 무언가 영업을 하려기 보단,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게 나의 방식이었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회사 소개를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섞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긴장이 풀리고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가 된다. 관심사가 많이 겹치니까 정말 일 외적으로 만날 정도로 친해진 분들도 몇 명 있다.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걸 다 솔직하게 얘기해준다. 현 상황과 나의 생각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얘기해준다. 이런 솔직함은 차후에 발생할 수도 있는 돌발상황을 미리 방지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관계에서 출발해 연결된 상품들은 서로에게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에는 서로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해줄수 있는 여유로움도 생기게 된다.


나는 파트너들을 만날 때, 어떻게든 억지로 상품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있으면 함께 하는 거고, 아니면 다음에 함께 하는 거고. 파트너와는 늘 컨텐츠를 만드는 아티스트나 고객들의 입장에 대해 고민하고 협의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상품이 만들어진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관계 맺음에서 출발해, 얘기하고 고민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좋은 기획이 나왔다. 좋은 기획은 특별하고 좋은 콘텐츠로 이어지고, 좋은 콘텐츠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물물 교환하는 듯한 영업방식을 까내리는 게 아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는것도 절대 아니다. 숫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일을 진행함에 있어 이런 영혼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도 많다는 얘길 하고 싶다. 이런 방향이 한번 메이드가 되면 훨씬 더 수월하게 진행되고, 서로가 윈윈 하는 효과도 큰 경우가 많았다. (숫자라는 기준을 대도 말이다.) 고객과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다양한 상황을 고민했기 때문에 발생가능한 오해도 줄일 수 있었다. 어떠한 연유로 괜히 급하게 진행을 하다간, 특히 숫자에만 급급하다가 정작 진짜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신뢰가 있는 사이가 당연히 일도 더 잘되지 않을까. 내 콘텐츠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사람에게 더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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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고 있어야 할 역사나 상식을 제외하고, 모르는 것에 대하여 모른다고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는 창피한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나 작은 조직에서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경력이 많고 연륜이 있으면 당연히 도움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아는 척할 때, 경력과 나이를 앞세워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얘기를 듣지도 존중해주지도 않을 때 비극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자동으로 습득이 되지 않는 스킬들이 있다. 공부를 하고, 스스로의 노력을 기울여야 습득이 되는 스킬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부터 인재관리나 회사 경영과 같은 일도 포함된다. 마케팅, 디자인 같은 하드 스킬도 포함되고,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소프트 스킬도 포함된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시간이 흘렀다고 자동으로 전문가가 되고 그냥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나이브한 생각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노력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아, 안타깝게도 노력해도 잘 습득이 안 되는 스킬도 있다. (이를테면 센스라던가). 그래서 나이가 어떻고 경력이 어떻고를 모두 떠나서 잘하는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내가 못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인정해주고 굳이 끼어들여 한 마디씩 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자체도 능력이다. 믿고 맡기는 게 쉬운 일 같겠지만 어려운 일이고, 생각보다 이런 상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한마디 조언을 해주고 일일이 컨펌하는 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 착각일 수 있다.  당신이 의무감에 무작정 주는 가이드는 생각보다 시대에 뒤쳐져있거나, 그냥 센스가 없거나 어느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로 잘 모르는 소릴하는구나 하는 무지함을 드러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적어도 프로세스를 하나라도 줄여 보다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과 같은 조직에 맞지 않는 경영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 명 한 명에게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일을 믿고 맡겨보면 신나서 일할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많이 성장하고 있구나'하는 뿌듯함과 자기만족은 인재들을 붙잡아두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복지와 연봉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나 역시도 내가 커리어적으로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고 얼마큼 성장할 수 있을지가 가장 최상위 요소다. 내가 이전 회사의 보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건 나를 신뢰하고 내 업무에 대한 권한과 자율권을 나에게 줬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짧은 기간에 나는 이것저것 도전해보면서 아주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믿음과 기회를 준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작은 조직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한 명으로 인해 모두의 효율이 오를 수도 있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은 요즘. 그리고 어쩔수 없이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타협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은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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