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올윈!
11월을 마지막으로 올윈을 퇴사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가 작년 10월이니까, 1년 1개월 정도를 다녔다.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과 기대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떻게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일이 합쳐져 있지?' 싶었고, 서비스가 출시되기 이전이라, 0부터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나는 회사를 진심으로 애정 했고, 내 회사란 마음으로 오너십을 가지고 일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향해 가게 되었지만,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이 곳에서 내가 이룬 것들을 한 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세분화되기 전, 초기에는 소수의 멤버들이 홍보, 에디팅, SNS 마케팅, 상품기획, 현장 운영, CS를 멀티태스킹 해야 했다. 나의 경우, 이 모든 일들을 조금씩 다 해보게 되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마케팅 쪽을 많이 신경 쓰다가, 점점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상품기획을 하는 엠디(프로모터)로 집중해 일했다.
서비스가 나오기 전부터 출시 시점까지는 홍보에 중점을 두고 일했다. 앱리프트에서 혼자 마케팅을 했던 경험이 가장 많이 도움이 됐던 시기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에게도, 관심 가는 매체에도 그냥 연락드려서 이곳저곳에 회사 소개를 하고 다녔다. 다행히도 서비스의 디자인이나 콘텐츠가 말랑말랑하고 흥미로운 편이라, 처음 만난 분들도 재밌어하며 들어주셨다. (그게 이전에 일할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DSP와 SSP를 설명할 때보다, '당신은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일이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직접 만나 뵙고 한번 회사 소개를 하고 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 바로 기사로 나진 않더라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면서 인터뷰나 기획기사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벤처스퀘어에 나온 대표님 인터뷰 기사도 그렇고, 추후에 렌딧 세미나를 통해 아웃스탠딩에 나왔던 것도, 이전에 만났던 분들의 도움이나 미팅이 바탕이 돼주었다. 벤처스퀘어 기사는 네이버 메인에 노출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서비스가 시작한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느낌이었다.
올윈 메뉴에서 EVENT 페이지를 보면 다양한 사전예약 페이지가 모여있다. 사전예약 페이지는 사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는데, 처음 생각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크게 주요 기능으로 발전될 줄은 전혀 몰랐다. 첫 시작은 이랬다. 올윈은 판매기간이 짧은 편이라 (길어야 일주일) 사전 마케팅이 매우 중요한데, 내가 처음으로 수량이 200개 이상인 상품을 판매하게 되었을 때는 심지어 올윈이 모바일 웹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티켓을 오픈하기 전에 티켓을 살만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게 정말 많았다 - 이런 공연을 한다는 사실, 올윈이 뭐하는 곳인지, 티켓 판매 방식 등등. 이런저런 제약도 많은데, 문제는 티켓 오픈하기 전에 타깃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을 때 취할 수 있는 액션, 콜투액션(CTA)이 전혀 없었다. 티저 이미지와 영상을 활용해 타깃들에게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더라도, 타깃들이 그대로 증발해버릴 수도 있었다.
이때 이전 회사에서 이벤트나 파티 RSVP 페이지를 만들었던 게 생각났다. RSVP의 주목적은 - 이벤트/파티에 오고 싶은 사람들이 놓치지 않도록 예약하는 개념이었는데 이런 페이지에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그냥 splashthat 같은 사이트로 내가 만들려고 했었는데, 회사의 개발팀, 기획팀, 디자인팀이 얘기를 듣더니 회사에 더 도움될만한 방향으로 의견을 내주고, 다양한 분들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분업이 이루어졌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보태니,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첫 사전예약 페이지가 실현되었다. 그것도 아주 단 기간에. 이때는 고객을 위한 상품도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려고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결과적으로 사전예약 페이지는 딜 오픈 전,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많이 모아둘 수 있는 좋은 마케팅 툴이자 상품의 수요 예측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가장 소중했던 경험 중에 하나가 엠디로서 일을 하며 평소에도 좋아하고 존중하는 공간과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파트너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인생에 한번뿐인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 곳에서도 티켓을 구매해 와준 사람들에게 팬으로서 쉽게 하지 못했던 흔하지 않은 경험이나 감동을 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생소하고 어려운 서비스일 텐데도 구매에 성공해 와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도 그만큼 더 좋은 기획과 경험을 만들고 그만큼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선순환 구조가 일어난다면 파트너에게도, 고객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1년 동안 자신의 철학을 투영시켜 자기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개인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현장에서도 감동받은 시간들이 정말 많다. 멋진 파트너들과 함께 뭔가를 만들 수 있어서 행운이었고, 특별한 경험에 함께 할 수 있던 것도 행운이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정말 파란만장했지만,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재미있고 값진 경험을 짧은 시간동안 빡세게 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페북에도 적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너무나 멋진 동료들을 만났다. 다들 어찌나 성격도 좋고 재미있고 능력도 좋은지. 함께 일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우린 계속 만나겠지만, 언젠가 좋은 기회로 다들 함께 일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
큰 애정을 가지고 일했던 곳이라 나온 게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은 나에게 자양분이 되어줄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어디선가 이런 얘기를 봤었다. 사람들을 계속해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autonomy, mastery, purpose라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권한과 자율성, 일을 하면서 얼만큼 숙달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맞는 말 같다. 비록 내 마음속의 나침반을 따라 나는 다른 길을 향해 발길을 옮겼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만의 중심을 가지고 내 갈 길을 가봐야지.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다.
올윈을 통해 인연이 닿았던 분들과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
그리고...
나는 벌써 짧게 여행을 떠나와 있다. 내일이 본격적인 여행 첫날이다. 7,000년 된 나무가 있고, 온통 초록 투성이인 아주 오래된 숲.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숲이 있는 야쿠시마 섬으로 떠난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자유롭게 나의 생각들을 펼칠 수 있는 곳에서 멋진 사람들과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수 있는 길들을 찾아갈 거다. 끝은 또 다른 시작! 인생은 한번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