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곡선을 사랑한 훈데르트바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훈데르트바서'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그의 그림과 건축물, 사진작품들 모두 좋아하지만 그 밑바탕에 있는 그의 철학을 정말 좋아합니다.
훈데르트바서를 처음 알게 된건, 2008년 유럽 여행 중 비엔나의 쿤스트하우스에 들렸을 때입니다.
장난스럽고 틀에 박히지 않은 그의 작품을 구경하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보면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특히 전시를 다 보고 나와서 마지막에 보게 된 사진 두장과 글귀는 충격적이었습다.
아주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나는 고대한다. 내 자신이 부엽토로 돌아가기를.
관 없이 나체로
내가 직접 심은 나무 아래 묻혀
아우테이어러우어의 내 땅에...
죽은 이의 매장은 관 없이 행하여져야 한다.
수의에 쌓여 흙 속에
적어도 60센티미터 두께로.
고인의 무덤 위에는 반드시 나무가 심겨져야 한다.
그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상징적임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죽은 이는 환생할 자격을 부여 받는다.
예를 들어 나무가 자라나는 것과 같이
그의 위에 그리고 그를 통해.
이로써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의 신성한 숲이 탄생한다.
행복한 망자의 정원.“
-
사진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히고 그 위에 나무를 심는다면,
그 사람의 양분과 영혼으로 자란 나무는 그 사람이 아닐까요.
하늘나라로 간 할아버지를 누군가와 함께 찾아간다면,
할아버지 위에 심겨진 나무를 가리키면서
"이게 우리 할아버지야.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지"라고 할 수 있을테죠.
안아볼 수도 있고, 얘기도 들려주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곳이 있다면, 죽은 이들로부터 태어난 생명의 장소가 될 것 같아요.
훈데르트바서는 이 숲은 보통의 숲보다도 아름다울 거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깃들어진 숲이니까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아주 싫어합니다.
말 그대로 자연에서는 완벽한 직선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들은 '네모'가 아니라 자연을 닮은 나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심지어 바닥조차도 울퉁불퉁해요. 그의 건축물들은 자연과 닮아있고, 자연과 상생합니다.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나뭇잎 하나도 모두가 조금씩 크기가 다르고 똑같이 생긴 것이 없듯이,
그의 건축물은 창문과 문의 생김새가 모두 드라고 불규칙하며, 늘 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클림트와 에곤쉴레의 영향을 받은 훈데르트바서의 그림들.
"농장에서 일할 때 풀이 얼마나 푸르고 땅이 얼마나 진한 갈색을 띠는지 보았다.
그때 나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화려한 색채로 이루어진 사람의 얼굴과 집과 나무들. 그가 친환경적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그림 속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그의 갈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훈데르트바서는 종이, 물감 등을 직접 제조하고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거리에서 주워온 것들로 오브제를 만들기도 했다고 해요.
그의 그림들 역시 완벽한 직선이 없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섯가지 피부론.
그의 "다섯 가지 피부론"을 통해 그의 철학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훈데르트바서는
첫번째 피부는 몸,
두번째 피부는 옷,
세번째 피부는 집,
네번째 피부는 나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
다섯번째 피부는 더 큰 의미에서의 자연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입고 싶은 옷을 입습니다.
옷이 내가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수단과 방법인 것처럼,
훈데르트바서가 주장하는 나머지 피부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는 "우리 자신이 직접 우리 환경의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첫번째 피부와 두번째 피부에 신경쓰듯이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피부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다른 말로 모두가 지구와 자연을 조금 더 신경쓰고 아낀다면, 분명 더 이상적인 세상이 될 것 같아요.
이밖에도 그는 창문의 권리와 나무 세입자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Window Right(창문의 권리)
창문 밖의 팔이 닿는 만큼, 창문과 벽을 개조해 저 곳에는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게 해야한다!
Tree Tenants(나무 세입자의 권리)
나무들이 설 땅을 빼앗았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옥상과 집 안에도 나무들에게 공간을 내줘야한다!
나무 세입자는 우리에게 산소와 다른 것들을 제공해준다.
파라다이스는 곁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 지구상에서 파라다이스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2011년 여동생과 엄마와 갔던 동유럽 여행에서 비엔나를 찾았을 때,
우리는 그의 건물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훈데르트바서가 만든 집, 쓰레기장, 미술관, 스파까지.
조금은 즉흥적으로 여행경로를 수정해 150키로를 달려 꿈에 그리던 블루마우에도 다녀왔어요.
"블루마우 진짜 가보고 싶다. 가면 진짜 좋겠다"를 반복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가자.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라는 결론에 다다랐죠.
사진으로만 보고 상상만 해오던 장소를 내 눈앞에서 직접 봤을 때의 설렘이란:)
필름카메라로 담아서 블루마우 입구사진에는 사진이 두장이 찍혔네요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결과물!
건물 안과 밖의 곳곳을 구경하고, 건물 위에도 올라가보고, 스파도 즐기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파라다이스가 실현된듯한 느낌이었어요:)
유명한 온천물이라 몸에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현실화할 수도 있구나"를 느끼며, 순간순간을 즐기다 왔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새로운 현실의 시작이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고,
내 주변 환경과 자연을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공존할 것인가.
훈데르트바서의 글귀를 읽거나 그의 작품들을 보면,
우리가 꿈꾸는 것들을 못할 이유가 없는데, 하지 못할 이유들을 먼저 생각하고,
결국 우리끼리 정해놓은 틀 안에 갇혀서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글귀들을 다시 꺼내보니 역시 정말 좋네요.
그의 사상을 담은 글귀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모든 것은 한 없이 간단하며, 한 없이 아름답습니다."
- 훈데르트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