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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r 21. 2017

i = !

지구에서 스스로 하는 일 이해하기 #3 - 단어 장난

조금 가벼운 글을 써볼까 한다. 대단한 자극을 받았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도 잊고 싶지는 않고, 가끔 꺼내보고 싶을 것 같은 나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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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하고 종종 메모장에 단어로 장난을 치곤 했다. 말장난 같은 단어 장난. '그리움'이란 단어를 적고 그리다, 그림, 울다, 그리 울다 등으로 쪼개 보기도 하고, 이런 단어들을 이어 붙여서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단어를 끄적거리며 놀다가 작은 발견을 하곤 했다.


한글은 위대하다.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한 나라의 왕이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이자이자, 전 세계 문자 중 유일하게 기원이 알려져 있는 문자.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멋있지만, 과학적으로도 디자인적으로도 나는 한글이 정말 좋고 자랑스럽다. 세종대왕님은 대단한 크리에이터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광고회사를 다니던 시절, 메모장에 낙서를 하다가 뉴욕을 세로로 쓰고 뒤집어도 뉴욕이란 걸 발견했다. 

이렇게 (뒤집어서 보세요)






회사 디자이너 언니에게 이 발견에 대해 얘기해주자 언니는 나만큼 신나 하면서 이걸로 뭔가를 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이 모양대로 그래픽을 만들어 뉴욕 곳곳에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왜냐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언니가 이 문자로 간단한 그래픽 디자인을 해왔고, 우린 이 모양대로 뚫은 하드보드지와 검은색 스프레이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섰다. 유니온스퀘어 계단에 하나, 20번가 공중전화박스에 하나, 회사 앞에 하나. 우리는 뉴욕의 거리 곳곳에 몰래 흔적을 남겼다. 다른 스트리트 아트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스릴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세로로 쓴 '뉴욕'은 내 인생 최초의 그래피티였다. (사진 자료는 어딘가에 뒤져보면 있을 텐데 지금은 잘 못 찾겠다.)



2010년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때, 이런저런 제목들을 생각하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i

i 라는 단어는 참 재밌는 단어다.


개인 홈페이지 제목으로, 나에게 필요한? 내가 나의 강점으로 표현하고 싶은 단어들을 끄적거리다가 상상력, 영감, 창조, 아이디어, 그리고 나. 이 모든 단어들이 ‘i’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inspiration

imagination

idea

innovation

i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이다.


이후에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있었는데 i에 대한 발견을 토대로 만들었다.


오래전이지만 가끔 꺼내 보면 재밌는, 그 당시에 썼던 자기소개서:


i로 시작하는 단어 중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첫 번째는 영감이란 의미의 inspiration.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뭔가를 보면 쉽게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꽤 쉽게 감동받고 재미있어하는 단순함이 나의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받으면 갑자기 마음속에 재미난 생각들이 비눗방울처럼 마구 솟아오르는데, 그 기분을 느낄 때 나는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냥 신이 난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세계가 있다. 다양한 나라와 언어, 민족을 넘어, 이 경계를 뛰어넘는 음악, 영화, 책뿐만 아니라 더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그래피티라던지, 치즈라던지, 커피라던지, 거의 모든 것에 있어 국경을 뛰어넘는 세계가 구축되어 있다. 파면 파고들수록 그 세계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정보들로 가득하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 세계 안에서는 대단히 존경받는 인물들이 있고, 그들만의 역사가 있으며 알아야지만 보이는 그 사람들만의 철학과 능력이 있다. 좋아하는 게 생기고, 그 분야에 빠져들수록 이런 세계를 발견하게 되기가 쉬운데, 그래서 취향과 나만의 가치관이 구체화될수록 말이 통하는 사람과 안 통하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 꼭 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더라도, 관심 있게 듣는 사람이 있고,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그 세계만의 이야기를 듣고 간접 경험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두 번째 단어는 상상력이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 무조건 창가 쪽에 앉는다. 수십 번도 넘게 타봤지만, 아직도 창 밖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그 자체로도 신비롭지만, 가끔 높은 산 위를 지나거나, 독특한 지형을 지날 때는 실제로 멋있고 신기한 광경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가끔 어느 외계 행성에 도착했다는 상상을 하며 창밖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럼 별 다를 게 없는 장면이더라도 갑자기 새롭고 신기하게 보인다. 상상력은 일상에 권태가 올 때 다시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세 번째 단어는 아이디어. 경험과 상상력으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들. 내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얼마큼 실천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가 결국 나 다운 방법으로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네 번째 단어는 좀 거창하게 들리는 innovation이었다. 사실 이 단어는 살짝 부담스러운? 감이 있는데, 어떤 흐름을 바꿀 만큼의 혁신이란 느낌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고 싶다.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 그 자체가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이노베이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실현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게 결국 자기만의 삶을 디자인하는 방법이니까.


내가 생각했던 내 나름의 창조물들을 정리해봤었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미술을 부전공했고, 도자기 시간에는 르네 마그리트와 가우디에게서 영감을 받아 도자기를 만들었다. 관심이 있던 분야에는 도전을 했었다. 스스로 배운 포토샵과 코딩으로 학교 동아리의 웹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한 때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뉴욕 청바지 회사에서 인턴을 했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나의 생각을 내가 주도적으로 실현시켰던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나를 정의하는 결론도 i로 마무리했다.

나(i)는 아이+eye. 아이=아이+아이.

내가 만든 이 공식은 나에게 있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처럼 좋아하면 하고 보는 단순함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나만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얻게 된 시선(eye)이 여전한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나의 강점들을 펼쳐보고자 했다면, 지금은 내 안에 쌓인 컨텐츠들을 글 쓰기를 통해 세상 밖으로 펼쳐보고자 하고 있다. 


자기소개서의 진짜 마지막 장은 이거였다.


i = !


i를 뒤집으면 느낌표다.


나는 이 단순한 발견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내가 만든 자기소개서는 꼭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inspiration

imagination

idea

innovation

i = !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것을 보더라도 받는 영감이 다르다.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부터 자기만의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를 실행하는 게 곧 내 삶에서는 혁신일 수 있고,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느낌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느낌표만큼 특별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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