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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Apr 13. 2017

씨엠립의 작은 파라다이스

앙코르왓보다 파파야 식구들 -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저는 씨엠립 하면 앙코르왓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어요. 두 달만에 굳이 다시 씨엠립을 찾아간 것도 어느 집에서 머물렀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멋지게 디자인된 집도 아니고 아주 편리한 곳도 아니지만, 이 곳에서 저는 보석 같은 사람들을 만나 최고의 시간들을 보내고 왔어요. 잊고 싶지 않은 그곳의 기억들을 브런치에 공유합니다 :)



다시 찾은 톨라의 집

두 달 전, 즉흥적으로 떠났던 나 홀로 캄보디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톨라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것이었다. 대나무로 지어진 집과 초록 식물이 가득한 마당에는 거위와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돌아다녔고,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놀러 와서 마을 구경을 시켜줬다.


나는 아이들과 손에 손잡고 마을 골목을 뛰어다녔고 어느 관광 책자에도 나오지 않는 사원에 들어가 노을을 구경하고 사탕수수 주스와 덜 익은 망고를 사 먹었다 - 나는 이 사원을 비밀의 사원이라 부른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나를 포함한 게스트들 머리를 땋아주었고(꼬맹이들이 머리 땋는 스킬이 굉장했다!), 온 가족과 게스트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할머니가 해준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기 전에는 마카레나 노래를 틀어놓고 다 같이 춤을 췄다.

톨라의 집 전경 -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거위, 고양이, 강아지들이 살고 있는 곳
대나무로 만들어진 집!
사랑하는 파파야 식구들
나를 사원에 데려다주며 사탕수수주스 사마시고 있는 리사, 솜원, 티다, 마이

나에게 이 곳은 작은 파라다이스와 같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깔끔하게 멋지게 꾸며진 집도 아니지만, 이 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순박한 눈망울들과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이 있었다. 이 곳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 달간 동남아 배낭여행 일정에 씨엠립을 끼워 넣었다. 단지 톨라의 집을 다시 방문해 조금 더 여유 있게 함께 시간을 보내 보고 싶어서.


이번 여행에는 앙코르왓이나 다른 관광지는 전혀 가지 않고 씨엠립에 머무는 3일간 오롯이 이 집에서 머물며 파파야 식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앙코르왓보다도 이들과 살아본 경험이 더 좋았으니까. 지난번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역시 뭉클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왔다. 입은 즐거워서 분명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들이랄까. 다시 한번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나의 경험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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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괜찮아

파파야 식구들을 다시 볼 생각에 설레는 맘으로 씨엠립에 도착한 날! 이게 웬걸. 툭툭 아저씨가 공항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나야 천막 쳐줘서 괜찮았지만 아저씨는 이 비를 다 맞고 나를 데려다주셨다. 아아 미안하고 감사하고 또 미안하고.

톨라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내가 묵을 대나무 집에서 보이던 장면

집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너무 와서 전기가 나가 있었다. 하하. '첫날부터 빡세겠군!' 생각했지만 다행히 20분 만에 불이 들어와서 그 이후로 끊긴 적은 없다. 오래간만에 파파야 식구들 얼굴 보는데 너무 반가웠다. 도착하니까 렉사가 비 맞으면서 막 뛰어오고, 할머니도 과일이랑 커피를 가지고 맨발로 나오셨다.


과일 먹으면서 내 방 앞에 앉아서 비 오는 걸 구경하는데 비 맞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비옷 입고 오토바이, 자전거 타는 동네 사람들이 보였다. 내 방 화장실에는 파파야 홈스테이의 식구 중 하나인 까만 고양이가 비를 피해 피신해 있었다. 이런 와중에 개구리들은 요란하게 개굴개굴 잘도 울고, 도착한 순간 이런 상황이 조금 어이가 없지만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한 20분쯤 앉아있었을까, 갑자기 내 방에 불이 켜졌을 때의 기쁨이란! 전기가 끊겼다가 돌아온 게 이렇게 단순하고 즉각적인 기쁨을 주다니.

폭우는 순식간에 잦아들었고, 비가 조금 약해지자 동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물이 찬 논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사실 방 앞에 앉아서 과일 먹으면서 비 오는 거 구경하는 내내 심심할 새가 없었다. 계속해서 이런 장면이 보이고 이런 개구쟁이들이 와서 물고기 보여주고 웃고 사진 찍는다고 하면 포즈 취하는데 어떻게 지루할 수가 있을까.

물고기들은 잡더니 다시 그냥 놔주더라. 이런 장면은 비가 오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겠지.

할머니가 가져다주신 과일도 다 먹고, 사진을 몇 장 찍으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고 나는 지난번에 아이들과 해지기 직전에 갔던 비밀의 사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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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고 싶었던 비밀의 사원

아무리 소나기라지만 어쩜 이렇게 날이 금방 개는지. 톨라의 집은 씨엠립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사원까지 톨라의 집에서 10분이면 걸어가는 거리는 씨엠립에 진짜로 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이 광경은 씨엠립의 관광지역과는 사뭇 다르다.

말이 안 통하니까 눈을 마주치면 밝게 웃는 사람들이 보이고, 이렇게 소가 앉아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조금 걸어가자 내가 보물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느꼈던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을 때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처음 들어왔을 때만큼의 신비로움은 덜했지만, 어둑 해질 때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알록달록한 색감이 예뻤다. 이 사원이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앞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가 하교 시간이라 아이들이 문 밖을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하굣길이라니.

엘사는 어딜가나 인기인가봐
귀여운 아이들의 하교길
사원도 예쁘지만 너희가 더 예뻐
이 곳의 아이들은 자전거랑 스쿠터를 너무 잘 탄다
거짓말처럼 맑게 갠 하늘


이 곳에는 관광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나는 어딜 가나 관심받았다. 걸어 다니면 쳐다보고, 눈 마주치면 씨익 웃고. 사원 뒤편으로 가자 뒤쪽에 있던 스님들이 나를 불렀다. 코레아? 라며 부르셔서 가서 인사 나누고 사진 한 컷.

사원을 다 둘러보고 학교 앞으로 가니 귀여운 여자 아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 사랑스러워 ㅠㅠㅠ 사진 찍는걸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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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다

사원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천천히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파파야 홈스테이 이웃들이 물총 싸움을 하고 있었다. 파파야 홈스테이의 주변에는 10살~12살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시골 인심처럼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이웃들끼리 가족들처럼 지낸다.

비 온 직후에 물총 싸움하면서 이렇게 100%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 이런 게 또 보고 싶어서 온 거였지. 이렇게 맑고 순수한 웃음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서.

아유 귀여워!

물이 떨어지면 우물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다시 물총 싸움을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물 펌프를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이는데 내가 해주겠다고 나섰다가 직접 해보니 은근히 힘이 들었다. 애기들이 하기엔 조금 힘들 수도 있지 않나? 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도시 사람 티 내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때문에 리사는 나를 방패로 삼아 내 뒤에 숨어있고 하다가, 같이 놀자고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살짝 망설이던 나는 카메라와 가방을 젖지 않을 만한 곳에 두고 물총 싸움에 가담했다. 나는 물총이 없어서 바가지를 가지고 싸웠는데, 나한테 맞으면 거대한 물폭탄을 맞는 거라 일부러 조금 빗겨나가게 아이들에게 물을 뿌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집중 공격했고, 다 놀고 나니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애교쟁이 리사

파파야 홈스테이에서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브랜드고 명품이고 진짜고 가짜고 동네에서 신나게 뛰어놀건데, 언제 흙이 묻고 흠뻑 젖을지 모르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이곳에서는 겉모습으로 누구를 판단하지 않고 순수하게 사람대 사람으로 모든 인터랙션이 오고 간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가곤 했다. 그게 이상하게도 행복하면서도 울컥했다. 향수를 자극해서 그런 걸까. 너무 순수한 아이들 앞에 서면 도시에서 곤두세오고 있던 나의 촉각과 모든 경계가 허물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파파야 식구들을 다시 만나고, 함께 뛰어논 하루를 보낸 후 아무렇지 않게 까만 야자수를 뒤로 엄청난 색깔을 보여주는 하늘을 보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역시 이 곳을 다시 찾아오길 정말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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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야 홈스테이 주인장 톨라의 이야기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다. 부족한 것도 많고, 교육에 대한 니즈가 분명한 곳이다. 톨라 말에 의하면 국민의 평균 연봉이 $950불이란다. 그러니까 보통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1년 동안 고작 100만 원을 번다는 얘기다. 이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 부족한 곳에 와보니 넘침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사소한 것에 쉽게 짜증내고 욕심 내는 내 모습이 떠오르며 반성을 하게 되기도 했다.


톨라는 정말 선한 사람이다. 그의 얼굴에도 드러나지만. 그는 스스럼없이 농담도 잘하고 정말 잘 웃는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캄보디아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1975년부터 79년, 급진적 공산주의 세력이었던 크메르루주에 의해 전 국민의 25%에 달하는 200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톨라는 그 당시 4-5살이었는데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고, 그는 이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았다.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이런 나라의 상황 때문에 톨라는 어릴 적부터 군인이 되어야 했다. 그는 무기와 총알을 손에 쥐고 싶지 않아 army camp에서 도망쳤고, 도망치는 길은 온통 지뢰밭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살아남았다. 군대를 나온 이후 톨라는 프놈펜에서 노숙자처럼 지내야 했다. 가족들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면 다시 군대로 보내져야 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가족들도 그건 원하지 않았다.


1년간 거리에서 먹고 자던 어린 톨라는 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웨이터로 일을 시작한다. 가게에 남은 음식을 먹기도 하며. 톨라의 목표는 하나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는 것. 결국 적은 페이와 일하는 시간 때문에 그의 꿈이었던 학교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돈을 내면 언제든 시간을 내주는 거리의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 이후 톨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과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 되었다는 게. 자기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톨라는 이 자리까지 왔다. 사랑을 만났고, 가정을 꾸렸고 밝고 사랑스러운 세 자녀를 두었다. 씨엠립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홈스테이를 하며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렇게 번 돈은 다시 이웃에게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쓰인다.


톨라는 현재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은 전쟁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이며, 끔찍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사랑과 인생을 향해 가는 그의 여정이 담길 예정이다. 톨라와 이야기하며 웃다가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조금 숙연해지곤 했다. 그가 정말 대단한 건 그래도 정말 밝고 가볍다는 점이다. 그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 영혼을 닦아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톨라는 운이 좋게도 몸이 건강하고 멀쩡하지만, 자기처럼 지뢰밭으로 도망치다가 몸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었다. 이번에 홈스테이에 머물면서 나는 톨라의 초대로 이 공연을 보고 왔다.


공연은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는 (입구부터 시큐리티 가드가 사람들을 체크하고, 게스트들에게만 거대한 문을 열어준다) 1박에 1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의 5성급 호텔의 잔디밭 마당에서 진행되었다. 이런 곳을 뚫은 것도 톨라의 능력이겠지.


숙박객이 아니면 아예 들어올 수 조차 없는 요새 같은 호텔에 들어오며 감정이 조금 복잡해졌다. 시설도 좋고 모든 게 모던하고 깔끔했지만 이 곳은 진짜 씨엠립이 아닌 기분마저 들었다. 얼른 공연을 보고 진짜 사람들과 따뜻함이 있는 파파야 홈스테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정말 편안하고 아늑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진짜 '집'이니까.



씨엠립 시장에서 지뢰밭 희생자들을 보면 무심하게 지나치곤 했는데, 톨라를 통해 이런 공연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교과서에 실릴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게 훨씬 더 와 닿았다. 나는 특히 다 같이 춤을 추는 부분이 좋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도 고개만 끄덕끄덕하더라도 춤이 되니까. 공연자들은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이건 사족인데, 공연자 중에는 두 눈을 모두 잃고, 팔다리를 한쪽씩 잃은 사람이 있었다. 톨라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이 호텔의 어마 무시한 가격을 듣고 (1박에 약 120만 원) 그 사람에게는 잔디와 돌 밟는 것만 느껴지니 다른 곳과 똑같은데 왜 비싼 거냐고 투덜거리며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이 농담을 듣고 웃었는데, 이 농담은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니, 누군가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건 무엇일까. 내가 삼고 싶은 기준은 어떤 걸까.


확실한 건 이 곳에 묵는 사람들과 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여행을 하고 있겠지. 톨라의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되며, 내가 톨라의 집에 묵음으로서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더 뜻깊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고작 1박에 2만 원일 뿐이지만, 이 돈이 누군가에게 정말 의미 있게 쓰일 것이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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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파파야 식구들과의 수많은 이야깃거리

오전에 일어나서 톨라의 차를 타고 티다와 할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시장에 다녀왔다. 할머니는 '맛있어?'와 '아침?' 같은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한국어를 하시는데, 나와 할머니의 대화는 거의 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할머니들처럼 할머니는 자꾸만 뭔가를 챙겨주고 싶어 하신다. 과일, 커피, 밥 등. 할머니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은가.



할머니는 내 방 앞으로 오시면 계속 내 옆에서 내 팔을 잡고 서계시곤 했다. 말이 잘 안 통해도 그냥 같이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할머니가 아침에 티다 얘기를 해주셨다. 알고 보니 티다는 엄마 아빠가 없고, (노 마마 앤 파파) 할머니가 딸처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할머니가 티다를 더 챙기셨구나란 생각이 들고, 너무 귀엽고 착한 티다를 보면서 조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티다에게는 파파야 식구들과 이웃들이 가족이니까. 그녀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알게 된 건 사실 할머니는 톨라의 가족과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라는 것. 나는 이 사실을 알고 꽤나 놀랐다. ㅎㅎ 당연히 친할머니인줄 알았는데. 이 곳은 이웃이면 그냥 가족이 된다.


파파야 전용 툭툭 아저씨! 나와 꼬맹이들까지 총 7명이 툭툭을 타고 수영장을 갔다.

매주 일요일 이렇게 물놀이를 간다고 한다. 수영도 연습하고. 잘 보면 16살 렉사가 꼬맹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고 있는데, 나도 무슨 기차놀이 마냥 수영을 못하고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 렉사는 동생들에게 무조건 양보하고 배려한다.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하는 속 깊고 성숙하고 따스한 렉사(톨라의 딸)는 홈스테이의 게스트들을 만나서 그런지 영어도 잘한다. 겉도 속도 아름다운 사람.

앉아서 라면땅 먹는 꼬맹이들


이날 저녁은 파파야에 묵던 다른 게스트와 함께 했다. 프랑스에서 소믈리에로 일하던 '리오넬'이란 친구였는데, 그도 나만큼이나 파파야에서의 authentic한 경험을 즐기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밥을 먹기 전에 이렇게 할머니에게 댄스를 청하고 함께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 파파야는 모두를 위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씨엠립에 사는 진짜 사람들과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이 곳은 보석 같은 순간들을 선물해준다.


우리는 이런 순간들과 맞닥뜨렸다.


별들 아래, 댄스 댄스 댄스 올나잇

저녁을 먹기 직전 톨라와 지뢰 희생자들의 공연을 보고 온 나는 톨라의 커뮤니티에 기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것보다 톨라가 훨씬 더 의미 있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현금이 없던 나는 리오넬에게 부탁해서 함께 그의 스쿠터를 타고 ATM에 다녀왔다. (파파야는 시골이라 조금 밖으로 나가야 ATM이 있었다)


ATM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이런 광경과 마주쳤다.

정말 너무너무 웃겼는데, 파파야로 들어가기 직전 어느 집 앞에서 광란의 댄스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들도 아저씨 아줌마들도 노래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 가담해 약 90분 동안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왔다. 우리 둘이 스쿠터에서 내리자 모두가 어찌나 반겨주시던지.


애기들도 춤을 너무 잘 추고, 주접을 떨며 춤을 추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사진 속 옷 벗으신 분), 그분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계속 니킥을 날리셨다. ㅎㅎ 마치 캄보디아판 응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줌마 아저씨는 라미란 김성균.



정말 신기한 건 이렇게 신나게 놀다가 10시 45분쯤 되자 다들 노래를 끄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광란의 댄스파티가 끝나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이 집의 주인은 씨엠립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었다. 씨엠립의 셰프를 이런 세팅에서 만나다니. 리오넬과 나는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면 '아 정말 대박이네!' 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파파야에 묵지 않았다면, 살아보는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겠지.


이 대가족은 매주 일요일마다 이렇게 집 밖에서 노래를 틀고 춤판을 벌인다고 한다. 놀라운 건 이게 캄보디아에선 꽤 흔한 일 같다는 것. 그리고 춤을 추다가 고개를 들면 별들이 보였다. 우리도 가끔 이렇게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춤을 추면 즐거울 텐데. 다시 한번 느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다'



아이들과도 댄스파티

저녁에 리오넬과 이야기하며 비밀의 사원 얘기를 해줬었다. 파파야에서 10분 떨어진 곳에 아름다운 사원이 하나 있는데 그 앞에는 학교도 있고, 한 번쯤은 꼭 가볼만하다고. 그 얘기를 들은 리오넬은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아침에 사원에 들리겠다고 했다.


아침에 생각보다 일찌감치 눈이 떠진 나는 리오넬도 사원을 가겠다고 하고, 나도 가기 전에 한번 더 가보고 싶어 아침을 먹은 후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그리고, 도착한 후 사원은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사원 앞에 있는 학교에서 굉장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연휴를 맞이하기 전에 학교에서 우리나라 학예회처럼 축제를 벌이고 있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이걸 경험하게 되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원래 흥이 많은가.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고, 물총을 쏘거나 밀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여기에 들어서자 나를 사진 찍는 학생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여자아이들도 내 손을 잡으려고 자꾸만 내 옆으로 왔다.


안에서 리오넬과 할머니, 리사, 티따, 마이와 마주쳤다. 꼬맹이들이 노래 따라 부르며 춤추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또 아이들 때문에 실실 웃으며 함께 춤을 췄다.


정말 다시봐도 너무 귀여운 아이들.


리오넬이 비행기 시간 때문에 먼저 떠나고,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학교를 구경시켜줬다.

여기저기 댄스파티가 벌어진 학교


학교 안쪽으로 들어가자 동국대에서 우물을 파줬다는 징표가 있었다. 같은 한국사람이란 이유로 괜스레 자랑스러웠고.


내 사랑 리사가 자기 교실을 보여주겠다며 내 손을 이끌고 이곳으로 데려왔다. 포토제닉 한 그녀


리사의 친구들도 만났다.


어느 정도 춤추고 놀고 다시 파파야로 돌아오는 길.

리사, 티따, 마이는 학교에서 파티를 한다고 하얀색으로 맞춰 입었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 댄스파티에 있었던 씨엠립 셰프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고, 우리는 눈 인사를 나눴다. 진짜 이웃인것 처럼 서로를 알아보는게 새삼스럽게 웃겼다. 역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마지막 동네 한 바퀴

파파야를 떠나기 전 또다시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 리사는 또 내 손을 잡고 come, come이라며 동네 한 바퀴를 구경시켜주었다. 렉사 사촌동생도 나의 마지막 동네 한 바퀴에 합류했다.


동네를 도는데 연꽃밭이 나왔고, 아이들은 연꽃 하나를 꺾어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아이고 귀요미들.

그러더니 몇 개를 더 꺾어가지고 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서는 연꽃을 할머니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안녕! 나의 씨엠립 가족

이제 벌써 또 헤어져야 할 시간. 톨라의 집에서 나는 기껏해야 3일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파파야 식구들의 일상에 초대되어 이들과 함께 살아보는 시간이 더없이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톨라의 집에는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부족한 게 많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 너무나 쉽고 스스럼없이 단순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곳에서 우리는 왜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하는 것인지 질문해보게 된다. 에어컨도 없고, 수영장도 없고, 편리한 시설도 화려한 건물도 아니지만 톨라의 집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 간의 정, 맛있는 음식, 그리고 자연이 있다. 비를 맞으며 물고기를 잡고 친구들과 물총싸움을 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별 아래서 춤을 추고. 행복은 이렇게 별게 아닌걸.


나는 씨엠립에 대가족이 생긴 기분이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마지막 방문은 아닐 것 같다. 씨엠립에 사는 나의 가족을 만나러 언젠가 이 집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나의 씨엠립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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