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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Apr 20. 2017

Human or Dancer?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이야기 # 춤을 춘다는 것에 대한 사유

Killers의 Human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Are we human? or are we dancer?

멜로디도 밝고 경쾌해서 신이 나는 노래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가사 때문에 이 노래가 더 좋다. 'are we dancer'라는 말이 문법상 옳지 않아서 미국에서는 더 회자된 것 같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인간인가 댄서인가? 



어느 작품을 감상할 때, 춤을 추는 장면에서 마음이 크게 동요한 적이 있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감동을 받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 가지의 작품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마지막에 김혜자가 넋을 놓고 춤을 추는 장면

https://youtu.be/lCDei_2iVwc

아아, 이건 정말 다시 봐도 명장면이다. 영화 속 김혜자는 원빈을 위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그런 심리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고 미친 사람처럼 될 대로 되라 춤을 춘다. 말 그대로 미쳐 있는 상태의 그녀는 그렇게 그냥 그 순간에 관광버스에서 춤추는 아줌마 아저씨들 사이에 녹아들 뿐이다.

와... 진짜 이 엔딩을 나는 넋을 놓고 봤었다. 역시 봉준호 감독이라고 생각하면서.



<푸에르자 부르타> 공연에서 퍼포머들이 미친 듯이 정말 미친 듯이 춤을 추던 장면

뉴욕에 살 때 이 공연을 5번도 넘게 본 것 같다. 당시에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공연을 했었고, 줄만 미리 서면 $25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뉴욕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선물이랍시고 이 공연을 보여줬었다. 또 봐도 재미있고, 함께 보면 특히 더 즐거운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다른 그 어떤 공연과도 다른 one of a kind라 인상적인 장면이 많지만, 공연을 가장 처음 보던날 퍼포머들이 무대를 박살내고 스티로폼과 쓰레기통들을 여기저기 던져버린 후에 미친 듯이 다 같이 춤추던 장면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냥 너무 통쾌했다. 너무 시원하고 통쾌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나도 무대 위로 올라가 함께 무대를 부시고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었다.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던져버린 후 비워진 무대 위에서 그들은 정말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미친 듯이.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춤추는 것을 보면서 나는 pure joy를 느꼈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100% 스탠딩에 보는 사람들도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보게 되는 공연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가만히 서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들썩들썩 리듬을 타며 신기해하면서 보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같이 춤을 추고 환호를 내뱉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물을 뿌릴 때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물 뿌리는 구역으로 뛰어드는 사람과 멀찌감치 구경하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나와 내 친구들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늘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매번 공연장을 나올 때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쫄딱 젖어서 나왔다. 그래도 그 희열이란!


칼 라거펠트가 찍은 오노 요코가 춤추는 영상

https://youtu.be/-8hESy5Nv_4

이 영상에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동요했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순간에 취해서 몸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듯한 오노 요코의 몸짓이 좋았던 것 같다. 춤을 추고 있는 순간에는 누군가를 정의 내리고 구분 짓는 모든 기준이 의미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이런저런 근심과 걱정, 생각은 잠시 잊혀지고 그저 그 순간과 동화될 뿐이다. 



나는 모두가 다 같이 음악을 즐기고 춤을 출 때의 에너지가 좋아서 그렇게 공연 보는 걸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가 보다. 최근에 한 달간 동남아 배낭여행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꼭 춤추는 순간들이 들어가 있다. 

- 치앙마이의 노스게이트에서 화요일 밤 즉흥 잼 세션에 갑자기 벌어진 댄스파티. 그곳에서 나이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신나게 너무 아름답게 춤을 추던 여자분을 보며 나도 이렇게 젊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리오넬과 ATM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어느 대가족의 댄스파티. 집 앞에 신나는 캄보디아 노래를 빵빵 틀어놓고 남녀노소 모두가 몸을 흔들고 있던 그곳에 우리도 껴서 미친 듯이 춤을 췄지. 어찌나 많이 웃었는지.

- 캄보디아 씨엠립,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댄스파티.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방방 뛰고 있었고 그 모습은 즐거움과 귀여움 그 자체였다.


뭐. 내가 춤추면서 노는 걸 좋아한다는 건 나와 친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춤을 춘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나를 넘어선 무언가가 된다는 것. 

이성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워지는 것.
잠시 현실을 떠나 있는 것. 내가 내가 아닌 동시에 가장 온전한 내 자신이 되는 것.

그리고 순간을 사는 것.


더 좋은 건, 굳이 '춤'이라는 행위를 깊이 사유해보고 굳이 이런 의미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춤을 춘다는 건 꼭 무언가 생산적인 결과를 바라고 하지 않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거다. 누구나 춤을 출 수 있고, 그냥 좋아서 신나서 춤을 추게 되니까. 행복해지니까.


인간은 춤을 추는 동물이다.


고로 are we human? or are we danc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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