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큰아들이 늙었다.

by Libra윤희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치약맛과 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딸기는 좋아하지만 인공적인 치약의 딸기향은 치를 떨었고, 복숭아향이나 바나나향이 나는 치약은 맛이 느끼하다며 싫다고 매번 퇴짜를 놓았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민트향 치약은 너무 입이 아프다며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이런저런 치약 다 싫다고 하니 소금맛 치약도 권했더니 헛구역질을 하며 입에 넣지도 않았던 큰아들.


기호식품이라면 다 그냥 관두라고 소리 지르고 말았을 테지만, 양치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렵게 어렵게 아들 입맛에 맞는 치약을 찾았는데 자일리톨 애플민트향 치약이었다. 적당히 상큼하고 달달한 치약이었던 애플민트 치약은 둘째의 입맛도 만족시켜 버려 우리 집에서 가장 애용하는 치약이 되었다.




하루는 치약이 다 떨어져 버려 어쩔 수 없이 내가 쓰려고 넣어둔 쓰고 강한 민트향 치약을 권했다.

"엄마가 지금 구매하면 내일 배송된다고 하니 하루만 이거 쓰자."

맵다고 난리 치는 둘째와는 다르게 큰아들이 묵묵히 이를 닦는다.


'이제 저놈도 인내라는 걸 배웠나 보다. 그래, 쓰기 싫은 것도 때로는 참고 써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하는 나이지, 중학생은.'


그렇게 하드코어 한 민트향 치약을 하루 쓰고 우리 집 치약통에는 다시 애플민트 치약이 자리 잡았다. 첫째도 둘째도 모두 만족하는 애플민트 치약을 잔뜩 장만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음날 아침 칫솔질을 하던 아들이 칫솔을 입에 문채 나와서 뭔가를 어필한다.

"엄마, 어제 쓰던 치약 좀 다시 꺼내 줘.

나 이거 싫어. 이제 그 화~~ 한 치약으로 부탁해."


"아들아 너도 늙었구나. 화~~~ 한 그 맛의 묘미를, 어른의 향을 이해한다면.
씁쓸한 그 맛의 달콤함을 알아버렸다면."



결국... 인내심을 배운 게 아니고. 하드코어 민트향이 그냥 좋았던 거구나.

잔뜩 사둔 자일리톨 애플민트 치약은 둘째가 쓰자. 우리 둘째 늙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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