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아빠는 못하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온수가 안 나올 때, 화장실이 막혔을 때,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마당 하수구가 막혀서 물이 역류할 때, 세탁기가 동파되었을 때, 밥솥이 망가졌을 때... 아빠는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 뚝딱뚝딱 해결하셨다. 어린 시절 맥가이버를 볼 때, '저거 우리 아빠도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일단은 구조부터 파악해라. 구조를 알면 어디가 문제인지 금방 찾아. 그럼 니가 고칠 수 있는 건지 없는 것인지 판단이 나오지.” 아빠의 말씀은 지금도 육성으로 들리는 듯하다.
나와 내 여동생은 모두 결혼을 했지만 어쩌다 보니 아빠가 사시는 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틀고 한동네에 살고 있다. 한 아파트 세 지붕의 우리 가족은 아직도 아빠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어딘가 고장 나고 난감한 일이 생기면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아빠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득달같이 우리 집으로 오셔서 문제가 된 부분을 거짓말처럼 고치고 귀가하신다.
난 문과전공 여자이지만 이런 이과형 아빠의 피를 받은 혼혈종인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발생되는 ‘이과 계통의 문제점’과 장비가 필요한 일은 내가 거의 다 해결한다.
결혼을 하기 전에 생활 속에 녹아든 남자는 유일하게 ‘아빠’뿐이었기 때문에 ‘남편’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발생되는 이런 문제를 척척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믿음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부분이라 가능 여부를 체크할 필요도 없는, 기본장착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사진도 걸어야 하고 시계도 걸어야 하고 새롭게 필요한 물건들은 사서 세팅해야 하는 통에 벽에 못질할 일도 많고 조립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 남자, 못질하는 모양부터 이상하다. 못질을 하면서 자기 손을 망치로 두드리질 않나, 잘못 맞은 못이 튕겨 나와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질 않나. 못 하나를 가지고 박지도 못하고 그만 두지도 못하고 난리를 친다.
벽시계 하나는 못을 못 박아서 바닥에 내려와 있고 전자시계는 시간 세팅을 못해서 다른 나라 시간이 흐르고 있다. 컴퓨터를 구매해서 모니터와 본체를 연결해야 하는데 어떤 코드를 어디에 꼽아야 하는지 버벅대는 통에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결혼을 하고 집안 시스템이 엉망이 되어 버려서 한동안 나는 이상한 나라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평상시에 몹시 깨끗하게 주변을 정리하는 편은 아니지만, 시스템만큼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터라 꼬여버린 시스템을 보고 있자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물건이 짧은 동선 안에 배치되어야 하고 거슬리는 동작 없이 물건을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정리되어야 한다. 불필요한 동작이 추가되는 것 같으면 꼭 다시 전면 재검토를 통해 재배치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저런 시스템 다 필요 없다고 쳐도, 적어도 벽을 보면 시계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를 켜면 윈도 화면이 모니터에 떠올라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그때부터 나는 직접 손을 걷어붙이고 못을 박기 시작했고, 시계를 한국 시간으로 돌려놓았고, 컴퓨터와 모니터가 한 몸으로 전류를 흘릴 수 있게 세팅했다. 남편이 회사를 가면 혼자 집안 도면을 그려 조금씩 가구를 재배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혼자 시스템을 정비했다.
결혼 8년이 지나고 남편은 해외로 발령을 받아 4년간 집을 비우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거의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 시작했다. 집안에 전등이 고장 나면 혼자 척척 갈아 끼우고, 샤워기나 세면대가 고장 나도 혼자 공구를 사용해서 고친다. 싱크대 문이 고장 나면 인터넷에서 부품을 구매해 직접 고치고, 세탁기가 동파되어 더 이상 통이 돌지 않을 때도 유튜브를 검색해서 혼자 해결한다. 화장실 유리 부스가 망가졌을 때도 드릴을 이용해 콘크리트 볼트를 직접 박아 보수했는데 그때는 가족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혼자 모든 걸 해결하다 보니 집안에서 별명이 생겼다.
“윤보수”
이제 우리 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두 윤보수를 부른다.
이케아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가구 바꾸는 재미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또다시 나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의자, 서랍, 책장, 테이블 심지어 침대까지, 일단 사 오기만 하면 내 손에서 물건이 조립되어 완성품이 되었다. 반면 남편은 이상하게, 이케아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친절한 설명서를 해독하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손목에 고질병이 생겨 더 이상 이케아를 조립할 자신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신나게 조립하며 작은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진출처: Canva
이렇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니 문득 내가 친정아빠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빠가 오랜 시간 꽤나 스트레스를 받으시며 우리의 뒷일을 해결해주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뭉클하고 감사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아빠도 큰딸이 집에서 ‘윤보수’를 자처하며 많은 일은 해결하고 지낸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말씀을 하셨다. 말씀 끝에 하시는 탄식.
“너랑 나랑은 그거 직접 안 하면 또 못살지. 남이 하는 거 보면 마음이 답답해서 못 맡겨. 맞지? 근데, 그래도 자꾸 남편도 시키고, 아들도 시키고, 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니가 늙어서도 힘들어.”
남편은 아직도 모를 것 같다. 가끔 장인어른이랑 만나서 남편의 이런 면을 흉보며 스트레스 풀고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남편, 바로 당신, 당신이기 때문에!! 그리고 뭐 망가지면 나 좀 그만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