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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Sep 06. 2024

모녀의 바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1

 외할머니는 큰 도로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다. 엄마와 나, 그리고 어린 동생이 손을 잡고 걸어서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무수한 날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종종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큰 딸이었던 나는 엄마의 손짓 하나 눈빛 한 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엄마가 왜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할머니랑 무슨 얘길 나눴길래 우리랑은 한마디도 안 할까? 그렇게 갈 때 보다 두 배는 더 길어진 듯한 귀가 길을 재촉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던 엄마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가족들 앞에 서서 맑고 고운 목소리로 성량을 뽐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외할머니가 특히 좋아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엄마보다 더 큰 자랑이 있었다.     


 엄마의 남동생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고 하필이면 마음도 곱고 착했다. 의대에 진학했던 외삼촌은 의대마저도 전교 2등으로 졸업했던 영재 중의 영재였다.

 내 기억 속의 삼촌은 힘든 의대 공부를 마치고 저녁에 귀가해서도 졸리고 힘든 눈을 비비며 할머니의 지친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었던 천사 같은 아들이었다. 음식상에 있는 생선 가시를 정성스럽게 발려 할머니의 밥 위에 말없이 올려놓던 동화 같은 아들이었다.


 고부 갈등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할머니에게 삼촌은 ‘존재의 이유’였고 ‘삶의 원동력’이었다. 할머니는 아마도 본인이 가지신 모든 것을 아들의 꽃길에 장식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사랑은 늘 삼촌을 향해있었고, 그건 어린 나도 느껴질 정도의 기울기였다.        

   

 삼촌보다 먼저 결혼했던 엄마는 성악을 전공했기에, 혼수로 집에 있는 피아노를 꼭 가져가고 싶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귀하고 귀한 피아노를 자랑스러운 삼촌에게 주고 싶었고 그런 할머니의 생각은 엄마를 미치도록 만들었다. 할머니는 끝내 엄마에게 피아노를 주시지 않았다.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흐르는 넓고 깊은 강은 건널 수 없는 바다가 되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금지어가 있었다.


“엄마, 그러는 건 할머니랑 똑같다.”

“엄마, 그 표정 할머니 닮았어.”


 이런 식의 발언은 가족 대화 분위기를 삽시간에 냉각시켰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 삶의 여기저기에 스며있는 할머니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했다. 온 힘을 다해 할머니와는 반대되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할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했고 혹여라도 딸만 둘이었던 우리 집 둘째가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까 봐 애쓰고 눈치를 봤다. “차별하지 않는 공정의 저울을 가진 엄마”가 우리 엄마가 정해놓은 ‘최고의 엄마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결혼을 통해 따스한 세상을 만났다. 아빠는 3형제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아빠의 세상에는 차별로 인해 목놓아 울었던 사람도, 관심이 사라질까 봐 두려운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아빠를 만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났던 엄마는 아빠의 세상이 부러우면서도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해 갔다.      




 “음대 나온 우리 며느리가 피아노가 없으면 쓰나?!”     


 사정을 다 알고 계셨던 친할아버지는 조용히 엄마를 불러 노란 봉투를 건넸다. 꼭 좋은 피아노로 사라고 두 손에 쥐어 주시는 그 돈 봉투를 붙들고 참 오래도 울었던 엄마. 너무 슬플까 봐 하늘에서 천사 같은 시아버지를 주셨다고, 엄마는 피아노를 닦을 때마다 감사함이 가득했다.

 남몰래 미워했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사를 하면서 엄마는 피아노를 처분했다. 그렇게 사랑하고 미워한 할머니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사실과 할머니가 사주지 않은 우리 집 갈색 피아노는 하나의 묶음이 되어 엄마를 힘들게 했다. 엄마의 슬픔으로 짙어진 갈색 피아노가 우리 집을 나갈 때 나는, 코끼리처럼 커다란 피아노가 엄마의 슬픔과 그 아픈 기억을 모두 짊어지고 나갔으면, 그렇게 엄마의 치유를 빌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차별과 비교로 늘 눈치 보고 위축되는 삶을 살았다. 아빠를 만나 조금은 그 마음을 치유하는 것 같았지만 마음속에 새겨진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식’이란 주홍글씨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평생 동안 ‘자식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임무를 띈 사람처럼 보였던 엄마는, 삶의 다른 부분에서는 쉽게 무너지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모녀 관계에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요소들을, 딸 둘을 키우면서 새롭게 익혀가듯 어설프게 배워갔다.

 엄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너무 깊어서 다른 사람의 상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 깊은 슬픔을 알고 있던 나는 평생 ‘엄마의 임무’에 최대한 협조했지만 내 마음속 슬픔을 엄마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어떤 상처나 슬픔도 엄마의 것보다는 보잘것없어서, 늘 슬프고 안쓰러운 엄마에게 나의 고민을 더하기 싫어서, 내 상처는 스스로 보듬고 치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겐 딸이 없다. 아들만 둘인 나는 딸 가진 엄마들을 남몰래 시기하고 질투했다. 왜 어설픈 우리 엄마에겐 딸이 둘이나 있는데 나는 단 한 명도 가질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싶다. 내게 딸이 있었다면 ‘딸 마음 읽어주기’에 집착해 다른 부분은 모조리 흐릿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에게 받지 못한 위로를 이번 생에 모두 쏟아주겠노라 최선을 다해 매일 다짐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들들의 마음은 잘 읽히고 괄호가 난무하지 않아서 좋다. 오히려 나의 관심과 위로가 너무 과해서 무색할 때가 많아서 다행이다. 무용하게 넘치는 나의 위로가 우리 엄마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서툴고 어설픈 엄마도 나에겐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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