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슈즈(Toe Shoes)의 정확한 영어 명칭은 포인트 슈즈(Point Shoes)이고, 프랑스에서는 뽀엥뜨 슈즈(Pointe shose)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토슈즈라고 불리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단어이기 때문에 포스트 시리즈에서는 <토슈즈>라고 통칭하겠다. 토슈즈에 관한 내용은 조금 방대해서 두 번에 걸쳐서 연재할 계획이다. 또, <웰컴 투 발레월드> 포스트에서는 발레 백과사전이나 발레 인터넷 강의에 나올법한 내용을 적지 않을 것이다. 발레에 대해 심도있게 배우고 싶다면 집이나 직장 가까운 학원에 가서 훌륭한 선생님께 직접 배울 것을 권장한다.
발레를 처음 배우고 약 6개월까지는 아주 친한 지인들 외에는 내가 발레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무슨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처럼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수준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해도 도무지 발레 동작다운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자신있게 취미로 발레를 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나중에 1년 정도가 지나고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레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주변의 반응은 놀람과 함께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듣는 공통적인 질문 두가지가 있다.
"그럼 뱅글뱅글 잘 돌아요?(피루엣 잘하냐는 질문)"
(겉으론 웃지만 마음 속 대답 : 아니오)
"토슈즈 신고 발끝으로 설 수 있어요?
(겉으론 웃지만 마음 속 대답 : 어설프게...)
이렇듯 일반인이 생각하는 발레라는 것은 잘 돌고(피루엣 또는 턴) 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서 춤을 춘다는 개념일 것이다. 이번 포스트는 취미발레인의 로망인 토슈즈의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취미발레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관심있게 읽기를 바라고, 아직 발을 들이지 않은 사람은 발레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고(어서 드루와~), 남성들은 토슈즈를 신을 일이 없지만 토슈즈의 기본사항을 알고 있으면 발레공연 관람할 때 토슈즈 신은 발레리나의 춤을 더욱 심도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난 마흔살에 발레에 입문했고, 정확히 1년 6개월 뒤 마흔 두살에 영광스럽게 토슈즈 클래스 기초반을 수강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우리 학원의 경우는 1년에 두 차례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포인트 클래스(토슈즈 클래스)가 열리는데 이때 발등, 발목, 무릎 힘의 조건이 된다고 원장님이 인정해주는 사람에 한하여 이 클래스를 신청할 수 있다. 다음 포스트 <취미발레 토슈즈 첫걸음>편에서 발레 레슨과 마찬가지로 토슈즈를 왜 독학하면 안되는지에 관한 설명을 할 참이다) 원장 선생님의 조언대로 발레샵가서 내 발 모양과 잘 맞는 토슈즈를 피팅해서 고르고, 발등 고정하는 고무밴드와 발목에 돌려 묶는 새틴 리본을 꿰맸다. 그렇게 첫 토슈즈 클래스 전날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곱디고운 새 토슈즈를 지그시 바라보며 발레리나의 근처에 다가갈 부푼 꿈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토슈즈 클래스 클래스 첫 날, 모든 수강생(나 빼고는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함께 둘러앉아 토박스 앞부분인 플랫폼 가장자리를 버튼홀 스티치로 꿰매는 작업을 함께 했다. 뭐... 나이도 많고 가사 시간에 바느질 좀 하던 세대라서 딱딱한 석고(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종이를 겹쳐서 붙인 공법)로 이루어진 플랫폼이지만 주부 정신을 발휘하여 제법 근사하게 잘 꿰맸다. 그리고 발가락을 보호하는 토씽(나는 초보라서 가장 도톰한 실리콘 토씽을 사용한다)을 끼고 잘 들어가지도 않는 토슈즈를 낑낑대며 신고, 리본 매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명 <토슈즈 만져주기> 작업이 들어가는데 선생님이 각자 토슈즈를 신은채로 드미 포인(우리가 알고 있는 까치발 모양으로 발을 꺾는것)으로 토슈즈 바닥인 쉥크(강도가 여러 단계이고 발바닥 길이 방향으로 넓적한 스틸심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를 자기 발모양에 맞게 꺾으란다. 그런데... 잉? 드미 포인이 안된다. 발등도 꽤 좋은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그깟 스틸심을 내 발바닥 힘으로 꺾을수가 없다. 마치 발에 꽉끼는 단단하고 불편한 가죽 새 하이힐을 신고 단번에 내 발에 맞는 편안한 캔버스화로 바꿔놓으세요~라는 황당한 주문을 받은 기분?
발레 클래스 첫 날, 유체이탈, 멘붕 경험 이후 토슈즈 클래스 첫 날, 또 유체이탈, 멘붕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이 수업듣던 수강생(대부분 초등학생)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며 발등이 아프네, 발뒤꿈치가 다 까지네~ 귀엽게 엄살을 피우는 틈에 중년 부인인 나도 최대한 불쌍한 표정의 눈빛 공격으로 원장님을 바라보며 "원장님~~ 토슈즈가 안꺾여요~"라고 말하자 원장님이 토슈즈를 벗으라고 하더니 손으로 눌러서 토박스를 살짝 부드럽게 부수어놓고, 뱀프를 만져놓고, 쉥크를 꺾어주셨다. 그러고는 원장님은 뼈있는 말로 내 가슴을 후벼판다.
"지금은 처음이라서 제가 해드리지만 토슈즈는 그 누구도 대신 만져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아프고 고생스러워도 내 토슈즈는 내 발에 맞게 내가 만지는 거예요. 그게 발레리나가 신는 자기 토슈즈예요..."
우와... 지금 생각해도 원장님의 스치듯 남긴 이 말은 나의 짧은 발레 인생이었지만, 앞으로 남은 여생의 큰 부분을 발레에 쏟아넣을 수 있게 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내 토슈즈를 다른 사람이 신고 그 과정을 대신하면, 다른 사람 발에 맞는 토슈즈가 된다는 것이다. 토슈즈를 만지는데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인생을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발레 공연에서 보는 발레리나의 토슈즈는 공주의 구두처럼 마냥 멋지기만 한데, 실제 가까이서 보면 절대 화려하지 않고, 부수고, 구부리고, 누르고, 꿰매고... 새 것이 아닌 나에게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무대에 설 수 있는 토슈즈가 된다는 것.
그렇게 2014년 1월, 평소에 운동화나 플랫슈즈만 즐겨 신던 40대 주부는 불편한 하이힐을 능가하는 토슈즈를 신고 꼼꼼히 드미 포인에서 쉬를 레 쁘엥(토 끝으로 서는 동작)까지 하며 온전히 <내 토슈즈>를 만들어갔다. 이 불편함과 고통을 내 발에만 잘 맞는 적절한 핏(fit)으로 바꾸어 놓을 것을 기대하며...
난 평소에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이유는 불편하고 굳이 하이힐을 신는다고 갑자기 작은 키가 팔등신 미녀로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편안한 운동화나 플랫슈즈를 신는다. 그렇지만 토슈즈는 분명 불편하고 힘들지만 발레리나라면 신어야 할 이유가 있고, 어설프더라도 발레리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일종의 통과의례하고 할 수 있다. 그게 비록 취미 발레일지라도...
국립발레단 단원의 능숙한 플랫폼 꿰매는 장면. 토박스가 단단한 석고로 되어있어서 쇠골무를 끼면 좀 더 쉽게 꿰맬 수 있다. 플랫폼을 꿰매면 동작할 때 덜 미끄러지고 슈즈 외피를 이루고 있는 새틴이 후욱~하고 까질일(?)이 없다.
박슬기 발레리나의 야무지게 토슈즈 만지는 장면.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처음 토슈즈를 신는 초보자용은 쉥크의 강도가 소프트(S)나 미디움(M)정도로 부드러워서 전문무용수들이 매만지는 방법, 즉 바닥을 뜯어서 손으로 쉥크를 마구 휘게하고, 바닥에 칼집을 내고, 아교 풀칠 하고, 망치로 토슈즈 때려잡는 일 등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음 편에 언급하겠지만 초보자는 자신의 다리의 중심과 힘의 포인트 지점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무리하게 전문가 흉내내는 토슈즈 매만지기를 하면 토박스가 금방 무너지고, 슈즈의 변형이 와서 오히려 신다가 발목에 무리가 오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유투브를 너무 맹신하지 말고,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차근차근 드미 포인부터 쉬를 레 쁘엥만 잘해도 첫 토슈즈는 멋지게 길들일 수 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슬기의 연습실 일상)
우와... 나도 슬기씨처럼 신기 전에 해맑게 웃고 싶다. 난 심호흡 여러 번 하고 신는데..
전문무용수의 고달픈 발. 그러나 아름다운 발. (국립발레단 코르드발레 최지인)
솔직히 취미발레인은 이렇게까지 되면서 신을 일은 많지 않다. (사진만 보고 미리 겁먹지 말기를 바란다.) 취미 발레인이라면 자신의 체력 정도에 따라 '알맞게' 신으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발레리나와 토슈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바닥에 뿌려져 있는 여러 켤레의 토슈즈가 그녀의 마음 한편을 말해주는 것 같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무용전문지 <몸> 화보 촬영, 2014)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 김경식, 김윤식(형제발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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