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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드 잠브 앙레르

인체는 과학과 섬세함의 집약적인 구조물이다


롱 드 잠브 앙레르 (Rond de jambe en l’air)



힌지를 간단하게 도식화한 샘플

생활 중에 누구나 접하는 구조체의 일부분이지만 참으로 낯선 단어 힌지(hinge)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까  한다. 토목공학, 건축학에 자주 나오는 힌지 구조.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들어볼 일 없는 이 용어는 ‘구조물 지지점의 일종으로, 휨 모멘트에 대해서는 회전은 자유이지만 수평 및 연직 이동은 고정 지점’, 자동차 용어 사전에서는 ‘핀 등을 사용하여 중심축의 주위에서 서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의 접합 부분으로 경첩을 말한다. 도어나 보닛에 부착되어 경첩과 같은 기능을 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어 출처 : 토목 용어사전, 도서출판 탐구원, 자동차 용어사전, 일진사)



글로 이해가 어렵다면 아주 쉬운 예로 인간의 어깨뼈, 팔꿈치 뼈, 손목뼈, 무릎뼈 등의 구조는 전방향 회전 가능한 힌지이고, 도어 경첩은 단방향 180도 회전이 가능한 힌지 구조이다. 두 부재가 운동 역할을 할 때 중간에 고정된 지지점이 있는 구조물은 힌지다. 생각보다 일상생활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구조 형태이다.



2주 전 글에서 언급한 롱 드 잠브(rond de jambe)는 아테르(à terre), 즉 땅에다 발을 대고 그리는 동작이었다면, 오늘 이야기할 롱 드 잠브 앙레르(rond de jambe en l’air)는 공중에서(an air) 롱 드 잠브 동작을 하는 것이다. 롱 드 잠브 아테르 보다 쉽다면 거짓말… 기존의 롱 드 잠브가 바닥에 예쁜 반원을 완성해가는 동작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렇다. 당신이 예상한 대로 자신의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 성인이 돼서 발레를 해보면 안다.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야 하는 동작은 액션스쿨에서 연습하는 배우처럼 와이어를 몸 여기저기에다 감아 놓고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서 동작을 할 수 있도록 누가 대신 좀 잡아당겨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록 힘들고 절박한 마음이 든다.



발 끝이 지면 위에서 하는 동작을 할 때는(플리에, 턴듀, 롱 드 잠브 등) 지지하는 다리(supporting leg)에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에 집중을 한다면, 발 끝이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동작(데가제, 롱 드 잠브 앙레르, 데벨로페, 바트망 등)은 서있는 쪽에 확실한 무게 중심 이동과 동시에 복부 코어가 더 단단하게 고정돼야 한다. 특히 이런 동작을 할 때 유의할 점은 다리를 들어 올린다고 지지하는 다리 쪽으로 골반이 빠져나가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몸의 중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롱 드 잠브 앙레르를 하면 자연스럽게 앙디올(앙 드오르_en dehors, 앞에서 뒤로 반원을 그린다)과 앙드당(앙 드댕_en dedans, 뒤에서 앞으로 원을 그린다)으로 연결된다. 앙레르 상에서 앙디올, 앙드당 동작을 수행할 때 글 서두에서 언급한 무릎이 바로 힌지가 되는 것이다. 고관절에서 무릎까지는 움직이지 않고, 무릎이 마치 핀으로 고정한 것처럼 지면과 180도 평행이 되게 한 다음 종아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하게 타원을 그려준다. 물론 발 끝 포인 동작은 기본이다. 롱 드 잠브 앙레르 앙디올, 앙드당에서 좀 더 고급반 과정을 익히다 보면 워킹 레그(working leg) 발 끝으로 서포팅 레그의 무릎을 리드미컬하게 치면서 돌리는데 지면부터 45도 , 90도, 135도 지점을 지나 180도 데벨로페로 3초간 길게 버티다가 다리를 내려준다. 설명으로는 마치 수학 공식처럼 쉽게 똑 떨어지지만, 이게 실제로 해보면 내 다리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전봇대로 바뀐 기분이 든다. 앞으로의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발레 하면서 내 다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다리와 씨름을 하는 순간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게 되고, 원하던 대로 다리가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 칼럼을 함께 하는 이유는 발레와 절친이 되려고 하는 것이지 내 다리와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델 : Domenico Di Cristo (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또한 다리를 높게 드는데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리다 보면 서있고, 지지하고 있는 다리의 무릎이 어설프고 비굴하게 굽혀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발레 바워크를 할 때 가장 안 좋은 습관 중 하나가 서있는 쪽 다리의 무릎이 슬그머니 구부러져 있는 상태이다. 서 있는 다리의 무릎에 언제나 힘을 퐉! 제대로 주고 버텨야 한다는 것. 나무가 제대로 위로 자랄 수 있는 것은 지면에 단단하게 내린 뿌리 덕분이다. 아무리 멋있는 수형_樹形을 갖춘 나무라고 해도 뿌리가 흔들리면 자랄 수 없다. 발레도 마찬가지다. 손 끝, 발 끝까지 에너지가 꽉 찬 아름다운 동작을 해내려면 몸의 뿌리인 지지하는 다리와 복부의 코어의 힘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취미발레를 하는 일반인 입장에서 위에 설명하는 모든 동작을 실제로 해보면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발레에 쓰는 근육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근육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발레 클래스에서 단계별로 동작에 집중한다면 몸속의 잠들어 있던 미세한 근육이 깨어나면서 이것이 평소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직업이든, 오래 서 있는 직업이든,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직업이든… 특정 근육에 피로도가 쌓일 수밖에 없지만, 꾸준히 발레로 잔근육을 발달시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좀 더 바른 자세로 일할 수 있고, 같은 작업량이라도 피로감이 경감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접 발레를 해보면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냥 보기에 쉬워 보이는 동작도 실제로 해보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어렵다고 얼굴 찌푸리고 인상 쓰면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도록 동작을 수행해야 한다. 발레는 운동을 넘어서 몸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춤이자 예술이기에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태연하리만큼 해내야 한다. 발레리나(리노)들이 무대에서는 웃지만 자신의 춤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는 기절할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는 사실…

사실 우리 각자의 삶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옛말에 ‘들여다보면 문제없는 집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각자의 삶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다 알 수 없는 것은 개인이 어느 정도 그 고통을 감내하고 숨기고 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고통의 숨기는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적당히 눌러놓고, 세상을 향해서는 당당하게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감당할만한 어려움이라면 단계를 높이며 극복해나가는 것도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고작 발레 동작인 롱 드 잠브 앙레르 설명하면서 너무 거창하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발레를 하다 보면 우리 인생의 모습과 닮은 것들을 무수히 발견하게 된다.



모델 : 이상은 발레리나, 드미트리 세묘노바 발레리노(드레스덴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자… 말했듯이 이 동작은 나뿐만 아니라 그 누가 해도 어려운 동작이다. 어려움에 굴복하지 말고 동작에 집중하고 극복해보도록 하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롱 드 잠브 앙레르를 할 때 발 끝을 들려고 애쓰지 말고, 좀 더 큰 근육인 대퇴사두근(허벅지 근육)을 들어 올린다는 기분으로 해보자. 당신의 몸속에는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섬세하고 과학적인 구조가 신체 모든 곳에 숨어 있다. 사용하지 않아서 기계의 녹슨 부속으로 만들지 말고, 발레나 운동이라는 적당한 사용법과 윤활유로 건강한 신체로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된다.

아마 당신의 무릎 속에 베어링 같은 롤러볼 힌지 구조를 떠올린다면 롱 드 잠브 앙레르의 앙디올, 앙드당 동작이 좀 더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몸이 생각보다 섬세하고 집약적인 구조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실제로 맞는지 아닌지 임상 테스트는 각자 발레 클래스에서 직접 해보도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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