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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망 프라페 (Battement  Frappé)

위기에서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


발레 바워크에 있어서 바트망 프라페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소설의 사건 구성 단계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상투적인 기법에 비유한다면 위기에서 절정으로 치달아서 넘어가는 단계에 속할 것이다. 바워크에 있어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트망 프라페나 뒤에 나오는 그랑 바트망이 꼭 절정이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에서부터 큼직하게 짚어 온 바워크의 단계는 꽤나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속도를 서서히(플리에) 시작해서, 점차 속도를 높이고(데가제, 바트망 프라페), 근육을 잡아주고 긴장시키며(턴듀, 롱 드 잠브) 단련시켰다면 이후에 풀어주며 늘이는(데벨로페, 림바링) 동작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즉, 큰 근육을 풀어주다 세부 근육을 긴장시키는 동작, 느리게 늘이다가 빠르게 긴장시키는 동작까지 약 20분 동안 진행되는 바워크는 마치 한편의 흥미진진한 단편 소설같이 모든 요소를 잘 버무려놓았다.





위기에서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



2014년도에 국내 개봉했던 영화 위플래쉬(Whiplash)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한 학생(앤드류)의 광기와 최고의 드러머를 키우기 위해서 ‘인격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고 하는 폭군 교수(플랫처)의 예술혼을 담은 영화였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서 손에서 피를 철철 흘려가며 드럼을 치는 모습은 좀 과하다 싶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강렬한 타악기 사운드에 점점 몰입이 돼서 내 몸속의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깨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여느 록밴드가 연주하듯이 드럼 스틱을 돌리고 심벌즈를 요란하게 치는 현란한 플레잉보다 정박자 템포를 늘였다가 당겼다가 해도 마치 메트로놈에 맞춘 것처럼 박자를 정확히 맞추는 게 대단해 보였다. 특히 스틱으로 심벌즈를 칠 때 손목과 손바닥의 스냅만으로 마치 스틱이 손 안에서 떠있는 듯하면서 심벌즈를 빠르게 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빠르지만 정박자의 감을 잃지 않는 것… 어쩌면 즉흥의 엇박자보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이 계속 같은 박자를 칠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에게 시계 없이 초를 재어보라고 하면 처음에는 맞추다가 시계의 초침보다 빠르게 재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위키피디아



이번 주제는 바트망 프라페(Battement Frappé)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긴 호흡과 지구력을 요하거나 우아함을 강조하는 순서였다면, 이번에는 템포가 빠르고 강렬한 동작에 대해 함께 고민할 것이다. 발레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바트망 프라페는 다리 몇 번 빠르게 덜덜 떨다가 마는 듯한… 오히려 “도대체 이게 뭔 운동이지?”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훅~~~!!! 지나가는 동작이다. 대부분 이 동작은 발 앞뒤로 바쁘게 뭔가를 하긴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순서 중 하나다.


바트망 프라페의 준비동작에 해당하는 쿠드피에(뒤) / 모델 : Claire Teisseyre(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바트망(Battement)은 ‘두드린다, 부딪친다’, 프라페(Frappé)는 ‘치다, 때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용어 풀이만 봐도 왠지 발로 뭔가 바쁘게 치고 두드릴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는가? 글로 동작을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지만 이 동작은 마치 문구점에서 파는 금속 위에 비닐로 마감된 막대기 팔찌로 손목에 척 갖다 대면 저절로 촤악 감기는 장면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발바닥의 아치가 발목 복사뼈를 촤악 감싸는 기분으로 앞으로(드방), 옆으로(알라스콩), 뒤로(데리에) 움직이면서 동작을 한다. 첫 박자가 엇박으로 시작할 때도 있지만 바트망 프라페의 동작 자체는 집요하리만큼 정박자이다. 어릴 때 사용하던 추의 무게로 작동되는 아날로그 메트로놈의 움직임을 떠올리길 바란다. 설정한 박자가 일정하게 움직이지만 추의 무게로 인해 진자 운동을 하게 되면 중심에서 가장 먼 곳에 가서는 미세하게 속도가 느려지며 무언가 살짝 당겨주는 현상이 일어난다. 바트망 프라페를 할 때도 복사뼈에서 시작된 발 끝이 앞, 옆, 뒤를 뻗어 나갈 때 무릎에 힘을 주고 쫙 뻗어서 최대로 뻗었을 때 살짝 멈췄다가 다시 강하게 끌고 들어와야 한다. 보통 선생님들은 이 부분 설명을 아웃 악센트로 찰 때 힘을 주라고 하신다. 템포가 빨라도 이것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발레를 하다 보면 느린 템포의 동작은 힘이 부족해서 음악이 남아돌고, 빠른 템포의 동작은 얼렁뚱땅 해서 음악이 남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템포의 느림과 빠름에 상관없이 음악을 꽉꽉 채워서 동작을 해보자.)



유독 바트망 프라페를 소설의 위기를 넘어 절정의 직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바트망 프라페는 바워크 중 가장 빠른 움직임과 집요하리만큼 길고 가는 근육을 자극시키는 동작으로 이후에 할 가장 큰 근육인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을 사용하는 그랑 바트망 제테에 가기 위한 준비 작업과도 같다. 프라페의 뜻처럼 내 발로 종아리의 정확한 부위를 제대로만 ‘때리면’ 다리 근육의 모양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헐렁헐렁 대충 하는 동작은 수 백번을 반복해도 별 변화가 없고 위에서 예를 든 영화 ‘위플래쉬’의 드럼 연주처럼 집요하게 강박적으로 수행해야 효과가 있는 동작이다. 왜냐하면 종아리에 분포되어 있는 가느다랗고 긴 근육에 영향을 주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반인은 평소에 찾기 힘든 근육 중 하나이지만 각자의 몸속에 분명 이 근육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존재를 확실히 있으니 각자의 믿음대로 믿기를 바란다.



바트망 프라페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역시 올바른 위치의 턴아웃과 엉덩이 근육을 잡아주며 힘주기, 흔들리지 않는 복부 코어 고정이 되어야 허벅지 안쪽 근육에 자극이 가게 된다. 또한 어느 방향으로든 다리를 뻗을 때 무릎을 힘을 주고 쭉 펴도록 노력하자. 이전에도 수 차례 얘기를 했지만 발레 동작을 할 때 어디에다 정확히 힘을 주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하면 예기치 않은 곳의 근육이 발달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꼭 기본 사항을 정확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바트망 프라페의 순서는 움직이는 다리(working leg)로 지탱하는 다리(supporting leg)의 앞과 뒤를 반복해서 작게 치는 동작인 프티 바트망(Petit Battement)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동작들을 마치고 안쪽 허벅지와 엉덩이 아래쪽 근육에 자극이 간다면 제대로 한 거고, 종아리'만' 터져나갈 듯이 아프다면 불행하게도 힘을 잘못 준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자신 안에 꽁꽁 숨어있던 친구인 강박이, 집착이 꺼내서 열심히 동작했는데 엉뚱한 곳인 종아리랑 허벅지 바깥쪽만 두꺼워진다면 그야말로 새드 엔딩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인생을 살다 보면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깊이 생각하며 가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주변의 모든 채널을 차단한 채 내 안의 힘을 믿고 바라보며 단기간 빠르게 달려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든다면 시험을 코 앞에 앞둔 수험생이 자신의 컨디션 조절할 때도 그럴 것이고, 회사 간의 큰 경쟁 PT 상황이나 각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큰 결정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다른 일보다 단기간에 우선 그 일에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조언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단기간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는 각자의 마음에 이미 자리 잡은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솔직히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 이미 자신의 마음속엔 절반 이상의 결정이 내려져 있다. 조언을 구한다기보다는 동의를 얻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설령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기를… 이미 당신의 결정을 그냥 믿어보자.

발레 바워크의 바트망 프라페도 비슷하다. 빠른 음악에 맞춰서 그냥 설렁설렁 지나가면 그저 빠른 동작에 불과하지만, 신체의 자잘한 근육 하나까지도 집중해서 동작을 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예쁜 근육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신 집중하지 않는다면 이 동작은 내 몸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고 나와 상관없는 딴 동네 이야기로 그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몸속에 이미 존재하는 올바른 근육과 그 주변에 잠재해있는 올바른 에너지의 힘을 믿고, 집중해서 이 동작을 수행하면 된다.


이 격정적인 단편 소설이 절정을 향해 마음껏 치달아 가도록 

“집.요.하.게. 절.대. 포.기.하.지.말.고. 자.신.을.믿.고.” 바트망 프라페를 해보자.


당신 안의 이미 존재하는 에너지에 맡기세요 / 모델 : Barabas Marianna(몬테카를로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6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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