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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드 잠브 (Rond de jambe)

컴퍼스로 그려내는 유려한 반원


이번 주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필자의 설명이 잠시 필요한 시점이다. <나의 연인, 발레를 읽다>는 2016년 본 브런치에서 잠시 연재가 됐던 기획이다. 작년 출간을 할 때도 이 챕터에 포함된 글의 책 수록 여부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시리즈는 발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발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상시의 평범한 생활과 가까운 이야기다. 작년보다 내용도 조금 더 풍성해지고, 새로운 부분을 첨가했으며,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오류가 있는지 주변에 있는 프로 무용수들에게도 자문을 구하며 글을 수정하며 보완하고 있다. 쉽게 말해 발레 클래스와 우리의 일상의 자연스러운 공통점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발레가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영감을 얻는 요소가 되길 바란다. 위클리 매거진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나의 연인, 발레를 읽다>에서는 기존의 발레 에세이와는 약간 차별화를 둔 생활형 에세이에 가깝다. 이 글을 통해 잠시나마 일상을 되짚으며 사색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매주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생각하며 사진의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 김윤식 작가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동그란 원을 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원형 모양자를 이용해서 한 번에 휙~ 쉽게 그리거나 좀 큰 원을 그려야 할 때는 커다란 대접 같은 것을 종이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꾹 누른 다음 바깥 테두리를 따라 차분하게 그리는 방법이 있다. 원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원형자나 틀 없이 연필 하나 들고도 원을 잘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원을 그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컴퍼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번의 추억 여행은 학창 시절 ‘제도’ 수업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직업적으로 컴퍼스를 쓸 일이 있는 사람 말고는 학교 때 컴퍼스를 사용해 본 이후로는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전공의 특성상 대학 때까지 줄곧 사용을 했지만 졸업 즈음 오토 캐드 컴퓨터 프로그램이 일반화되자 핸드 드로잉의 비중이 줄면서 T자, 운형자, 삼각자, 컴퍼스 등이 수명을 다하자 제도 책상 위에서 사라지게 됐다. 그러다가 막상 필자의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수학 시간 준비물로 컴퍼스가 등장했다. 오랜만에 컴퍼스를 만지작 거리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거 롱 드 잠브잖아?


롱 드 잠브(rond_둥근/round, de_의/of, jambe_다리/leg)



이쯤에서 우리가 발레 용어를 좀 어렵게 느끼는 이유에 대해 잠깐 설명해볼까 한다. 발레의 시작은 이탈리아의 궁정 무용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의 발레로 꽃을 피운 나라는 프랑스다. 불어를 원래 알거나 공부를 해 본 사람은 발레에 나오는 줄줄이 용어가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불어라고는 봉주르, 쥬뗌므, 마드모아젤, 마담, 옴므, 팜므 이런 식으로 10개 미만의 단어만을 겨우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발레 클래스의 용어 자체가 제2외국어가 아닌 외계어 수준이었다.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할 때 동작 자체도 헷갈려 죽겠는데 용어도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더더욱 헤맸다는 핑계를 슬쩍 끄집어 내본다. 어쨌거나 발레 용어는 미련하리만큼 무한반복으로 외우거나 필자의 경우 요령을 터득한 방법이 그나마 익숙한 영어 단어로 대체해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롱 드 잠브는' 다리의 둥근원’이란 의미로 쉽게 말하면 다리로 땅위에서든(아 테르/à terre) 공중에서든(앙 레르/en l’air) 다리로 원을 그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클래스에서 흔히 하는 롱 드 잠브는 정확히 롱 드 잠브 아 테르(Rond de jambe à terre)를 말한다. 발로 원을 그리되 처음에는 땅 위에서 그리고 이 동작이 익숙해지면 이후에 다리를 들어서 공중에서 돌리는 동작(롱 드 잠브 앙 레르 / Rond de jambe en l’air)을 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부터는 자신의 왼쪽에 발레 바가 놓여 있고 1번 발을 한 상태의 기본자세로 서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글을 읽어 보자. 롱드잠 음악이 시작되고 왼손을 살짝 바 위에 올려놓는다. 지금부터는 내 몸이 컴퍼스가 되는 것이다. 현재 왼쪽 다리는 서포팅 레그(supporting leg)이자 컴퍼스의 뾰족 침이 달린 기둥 다리가 된다. 컴퍼스를 사용할 때 무엇을 가장 주의해야 하는지 기억하는가? 제대로 된 원을 그리려면 내가 그리고자 하는 원 크기를 가늠해서 중심에서 그리는 부분의 반지름을 측정해서 컴퍼스를 너비를 조절하고 원 중심에 컴퍼스 침을 콱!!! 제대로 고정해야 한다. 그리고 컴퍼스의 중심의 위에서 꼭 잡고 연필이 달려 있는 쪽 다리에 스냅을 주듯이 스윽~~ 그려나가야 한다. 컴퍼스를 사용할 때 축이 흔들리면 정확한 원을 그릴 수가 없다. 이렇듯 우리가 롱 드 잠브를 할 때 서포팅 레그 바깥쪽으로 예쁜 반원을 그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반원을 그릴 때 앞에서 뒤로 또는 바깥쪽으로 향하면 앙 데올/en dehors, 뒤에서 앞으로 또는 안쪽으로 향하면 앙 드당/en dedans 이라고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다 익히려고 하면 갑자기 머릿속에서 뒤엉킬 수가 있으니 이번에는 롱 드 잠브의 기본 동작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롱 드 잠브를 할 때 주의할 점은 반원을 발로 그리고 다리가 직선으로 제자리를 찾을 때 반드시 1번 발을 지나도록 한다. 그리고 턴듀에서와 마찬가지로 롱 드 잠브 데리에를 할 때도 발이 안짱으로 턴인되지 않도록 하자. 또한 원을 그릴 때 복부 코어와 골반은 바른 위치에 놓고 흔들리지 않게 하며 움직이는 다리(working leg)가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스케이트 날처럼 움직여야 한다. 힘을 뺐지만 힘을 주고 있는 상태… 쉽지는 않다. 지면을 매끄럽게 쓸고 가지만 발끝까지 에너지는 가득 찬 상태로 쫀쫀하게 움직여줘야 한다. 


롱 드 잠브의 올바른 예시 / 모델 : Claire Teisseyre(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움직이는 다리를 가볍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그렇다. 지지하는 서포팅 레그 쪽에 무게 중심을 실어준다. 

단, 롱 드 잠브 할 때 골반 위치를 바르게 놓고 휘청거리지 않게 한다.

복부 코어와 상체 직사각형 박스는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다리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골반을 제대로 턴아웃하고 무릎을 서서히 굽히고 펴는 플리에를 하고, 다리를 발레답게 지면에 뻗는 턴듀를 해보고 그 다리를 뻗으며 들어 올리는 데가제를 마쳤다. 그리고 좀 더 우아하게 곡선을 그려 보는 롱 드 잠브에 도전한다. 차분히 바워크를 하나씩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발레의 기본 동작을 몸에 인식시키는 과정이다.



발레의 바워크… 신기하지 않은가? 한자리에 서서 하는 동작부터 직선, 곡선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나올 퐁듀, 프라페, 바트망 등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바워크의 순서를 차분히 생각해보면 마치 몸을 점, 직선 곡선, 면, 입체로 사용해나가는 과정과 같다. 보통 발레 이론에서는 몸의 큰 근육에서부터 잔근육에 이르기까지 풀어주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직업상 공간감에 익숙한 필자는 몸으로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발레리나(리노)의 발레 동작과 취미발레인의 발레 동작을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순한 테크닉의 차이, 예를 들어 정확한 피루엣, 엄청난 체공을 보여주는 점프, 기예에 가까운 아라베스크 등으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그런 기술적인 면을 제외하고도 상당히 느낌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디테일의 차이, 즉 손끝 발끝 시선의 처리와 동작이 연결할 때 나오는 알론제… 로봇 체조 알론제 말고 세련된 알론제로 마무리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필자의 팁… 우리의 몸을 평면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좀 더 입체적으로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발레는 움직여야 할 곳과 고정할 곳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춤이다. 그래서인지 취미발레인들은 생각보다 몸이 너무 경직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몸의 입체감을 살려서 내가 서있는 곳의 공간을 느끼며 무브먼트를 추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단순히 멋 내는 기교가 아닌 나의 동작으로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조금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롱 드 잠브는 직선에서 곡선으로 우아한 입체감을 표현하는
발레 동작의 또 다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컴퍼스를 상상한다고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가 아닌
그 결과물로 유려하고 세련되게 그려질 반원을 떠올리길 바란다. 



자신의 몸을 삼각뿔로 사용할지 정육면체로 사용할지 정32면체로 사용할지 면이 사라지는 진정한 완전체인 구체로 사용할지에 대한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보다 많은 취미발레인들이 자신의 서있는 곳의 공간을 우아한 풍성함으로 표현하길 기대해본다.


지금 자신의 동작을 살펴보자. 발레의 동작 하나로 당신이 서있는 공간이 입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쭉 뻗은 직선 라인으로 입체적인 공간감을 표현하고 있다 / 모델 : 이용정(前 유니버설 발레단) 이동탁(유니버설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6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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