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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듀 (Fondu)

내 몸속 관능(官能)과의 조우(遭遇)




치즈 마니아라면 노랗디 노란 체다 치즈나 치즈계의 청국장에 속하는 블루치즈, 산뜻한 맛이 돋보여서 샐러드 위에 토핑처럼 올라가는 리코타 치즈를 좋아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피자 치즈라고 불리는 모짜렐라 치즈는 많은 대중이 부담 없이 좋아하는 치즈가 아닐까 싶다. 전통적으로는 물소의 젖으로 생산되어서 차갑게 썰어먹는 맛도 좋지만 따뜻하게 하면 쭈욱~ 늘어나는 치즈의 매력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스위스 요리 중 대표적인 아이템은 퐁듀. 사실 퐁듀는 아주 고급스러운 음식이 아닌 양치기 목동들이 딱딱하고 식은 빵이나 야채, 고기 등을 좀 더 풍미 있게 먹기 위해서 에멘탈 치즈, 그뤼에르 치즈, 드라이 화이트 와인 등을 냄비에 넣고 은근히 녹인 것에 찍어 먹는 것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지금부터는 퐁듀를 떠올려보자. 꼬챙이에 꽂은 딱딱한 빵을 녹인 치즈에 푹 찍어서 꺼낼 때 쭈욱 늘어나는 치즈, 그 치즈를 조금이라도 더 빵에 붙여 먹겠다는 마음 하나로 꼬챙이를 조심스럽게 살살 돌린다. 투박한 듯 하지만 정교함과 정성을 들여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이 음식 이름과 동음이의어가 발레에도 존재한다.



이전에 플리에부터 롱드잠까지 쓴 몸을 퐁듀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전까지 직선의 힘(턴듀, 데가제)에서 반원(롱 드 잠브)의 그려나가는 정형(定型)을 따랐다면 퐁듀에서는 살짝 타원에서 비정형(非定型)으로 향해 가는 곡선을 그린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양쪽 무릎을 턴아웃으로 플리에 하면서 워킹 레그(Working leg)를 스탠딩 레그(Standing leg)의 발목에 갖다 대고  구부린 무릎을 펴면서 워킹 레그가 앞이든 옆이든 뒤로 가는 동작이다. 이쯤 되면 퐁듀의 뜻이 마치 늘어난다 쯤으로 될 것 같지만 퐁듀(Fondu)는 ‘녹는다, 용해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릎을 구부리면서 자세가 낮아지는 것을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퐁듀가 다른 모든 장르의 무용의 스탭인 다운&업의 느낌과는 살짝 다르다. 발레에서 퐁듀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몸속 관능(官能)과의 조우(遭遇)



‘관능’이라는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육체적 쾌감, 특히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이라고 표기되어 있다(출처 : 네이버 국립국어원 사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예술의 미를 추구하는 입장이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첫 번째 의미 때문에 보통 ‘관능적이다’라고 하면 생물학적으로 섹슈얼한 이미지에 호소하는 방식을 떠올리기 쉽다. 어떤 의미로든 좋다. 관능이 추(추할 추/醜)가 아닌 미(아름다울 미/美) 쪽에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단지 관능이라는 어감 때문에 1차원적인 생물학적 의미에만 집중하지 말고 근본적인 아름다움에 접근했으면 한다.


100% 사견이지만 필자는 발레 동작 중 퐁듀와 관능이 가장 조화롭게 상응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양쪽 다리를 바깥으로 구부리며 자세가 낮아지지만 옹색하거나 찌그러진다는 느낌보다 탄성 좋은 공을 힘껏 누를 때 팽팽하게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타원을 연상시킨다. 그 상태에서 코어의 중심이 갑작스럽게 떨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지탱했다가 서서히 몸을 뻗어나가며 자신의 몸이 가장 아름다운 곡선으로 뻗어나가는 라인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확실히 다리를 뻗거나 구부리는 동작에 비해서 뭔지 모르게 내 몸과 나갈 듯 말듯한  밀당을 하는 느낌이 드는 동작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개인의 내면에는 관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 안에 그런 것은 없어!’라는 생각으로 “관능 따위 개나 줘버려!!!”라고 하거나, 반대로 “관능…?? 어휴 손발 오글거려…”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생물학적 성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기보다 내 안에 육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꺼내서 그것과 대면한다고 생각해보자. 관능은 그리 저급한 차원도 아니고 그것과 맞닥뜨렸을 때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며 당황하기보다 예술적 차원의 건강함으로 승화시켰으면 한다.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퐁듀 동작 하나에 미학적 차원의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이유는 사실 발레는 내 안의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과 흡사했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일지 모르지만 발레를 시작하면서 거울 속의 나를 정확히 보는 것 자체가 당혹스러웠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도 꽤 걸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이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당혹감보다 정면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현재 발레에 관한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은 이전의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보이고, 그것을 묵묵하게 해낼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직접 발레를 하면서 발견하게 된 나의 이면을 인정하고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삶에 있어서 당신도 예상치 못한 내면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직면해본 적이 있는가? 그 아름다움을 넘어선 관능을 당신은 삶에서 어떻게 승화시켰는지 궁금하다. 표정, 말투, 취미생활, 직업에서의 열정 등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었을 것이다. 굳이 피하지 말고 자신만의 멋진 방법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속한 공간과 환경에서 당신의 모습과 표현 방식으로 그곳이 좀 더 풍성한 윤택함이 흘렀으면 한다. 비단 발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이런 아름다움과 관능이 삶에 투영되었을 때 우리는 예술 세계를 더 가치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작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글의 서두에 군침 돌도록 꺼낸 치즈 이야기… 퐁듀를 할 때 단순히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물리적 상상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존재할 예술적인 관능에 안테나를 세우도록 하자. 그리고 당신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아름다운 몸의 곡선을 천천히 그려보자.


인간 몸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라인 / 모델 : 한상이(유니버설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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