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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지오&데벨로페 (Adagio & Développé)

공작새에게 아름다운 꼬리 깃털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필자는 유튜브로 음악을 들을 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앨범 자체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콘서트 실황을 보여주는 영상과 음악을 더 좋아한다. 발레와는 사뭇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이 영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7년도 연주 실황 영상이다. 쇼팽의 발라드 1번부터 4번까지 곡은 살인적인 테크닉을 요구하는 동시에 말도 안 될 정도의 감정 몰입이 필요한 작품이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이 워낙 유명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곡은 발라드 4번이다. 유튜브 영상으로 정확이 27분부터 유심히 살펴보면 된다. 27분경에 조성진 군은 이미 발라드 1번부터 3번까지를 완주한 상황이고, 마지막 관문이 4번을 앞두고 있다. (약 40초간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다듬는 부분이 나온다.)  쇼팽의 발라드 4번은 유독 힘을 빼고 감정을 싣는 도입부가 등장한다. 피아노 건반을 세게 두들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약하게 치면서 모든 감정을 실어서 음악의 서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약하게 힘을 빼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청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파트가 바로 발라드 4번의 도입부가 아닐까 싶다. 그저 스튜디오에서 CD트랙을 트는 것과는 달리 이미 3번까지 힘든 과정을 지나 4번 연주를 앞둔 그의 소리 없는 준비는 뭔지 모르게 청중마저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지막이 힘을 빼지만 가장 강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과정을 쭉 지켜본 청중은 CD 트랙으로 한 번에 맞춰서 쉽게 접하는 발라드 4번과는 완전 다른 세계의 발라드 4번을 만나게 된다.

오늘 이야기하게 될 아다지오 & 데벨로페의 순서가 마치 쇼팽의 발라드 1번부터 3번을 완주하고 마지막 곡인 4번의 도입부를 치게 되는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본다. 힘을 빼지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부분. 그 느림 가운데 흐르는 에너지는 어떤 화려한 점프나 피루엣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b0Ebqe9JJo

27분 부터 보길 바란다 (Seong-Jin Cho | Chopin 4 Ballades | LIVE Video 2017)





‘내 다리와 싸우지 말자…'


취미라도 발레를 좀 진지하게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누구나 공감을 할 것이다. 발레 클래스 바워크를 수행하다 보면 머리로는 내 다리와 참 친해지고 싶은데 몸통과 다리의 사이가 남남처럼 멀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팔과 다리가 내 두뇌에서 한꺼번에 컨트롤되지 않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참으로 당혹스러운 순간이다. 팔, 다리, 몸통이 각각 자기 목소리만 힘껏 내면서 중앙 통제를 하는 두뇌에서는 대혼란인 카오스(chaos) 상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좌절의 절정을 맛보는 타이밍이 바트망 프라페를 지나서 롱 드 잠브 앙레르를 통과해서 뭔가를 쭉쭉 늘려줘야 할 것 같은 다음 순서이다.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이 취미발레인들의 유연성 능력 향상을 위해서 이쯤에 많이 넣는 순서가 아다지오_나이 어린 친구들이나 프로 무용수는 전혀 힘들지 않게 시원한 스트레칭_그러나 성인 취미발레의 경우는 거의 자신의 다리와 사투를 벌이는 시간. 오늘 그 생생한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발레를 떠올리면 토슈즈로 예쁘게 서있고, 멋진 아라베스크 동작을 선보이거나, 기가 막힌 점프를 하거나, 신공에 가까운 피루엣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누구나 꿈꾸는 것이 낑낑거림이 아닌 제법 멋지게 쭉 뻗은 다리를 허공에 올리고 있는 동작을 하.고.싶.어.한.다. 발레에서는 이렇게 한쪽 다리를 쭈욱~ 뻗고 버티는 동작을 데벨로페(Développé)라고 한다. 데벨로페는 ‘펼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오색 무늬를 뽐내는 공작새처럼 꼬리 깃털을 활짝 펼치는 능력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사람의 다리로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는 있다. (라고 쓰지만 일반인은 조금 힘들고 전공자나 전문 무용수에 해당한다라고 이해하면 된다)

데벨로페 동작은 서있으면서 지지하는 다리에 충분히 무게 중심을 옮기고 마치 나무가 땅에 뿌리박듯이 꼿꼿하게 지탱을 하면서 동시에 복부 코어에 단단하게 힘이 잡혀야 나머지 다리(working leg)를 앞이든 옆이든 뒤로든 맘껏 ‘펼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였지?” 


“그렇다. 바로 취미발레인!!! ”


취미발레인들이 프로 발레리나(리노)들처럼 데벨로페가 가능하지 않기에 대부분의 발레 선생님들은 방법을 약간 바꿔서 바워크를 순서를 진행한다. 아다지오(Adagio)라고 불리는 순서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딱 아는 음악 용어, ‘느리고 완만하게’라는 뜻이 있고, 라르고(Largo, 아주 느리게)와 안단테(Andante, 걸음걸이 정도의 느리게)의 중간 정도를 뜻한다. 음악 용어에서 유래하지만 발레에서는 플로어 워밍업, 바워크, 센터워크 어디서든 쓰일 수 있고, ‘느리고 조용하게 동작을  하거나 춤을 춘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취미발레 클래스에서는 보통 바워크에서 아다지오라고 하면서 몸의 중심을 이동하는 연습을 겸해서 드방, 알라스콩, 데리에로 다리를 잡고 늘리는 동작을 한다. 원래 정석은 데벨로페 동작 전에 우아하게 파세(passé)를 하며 무릎을 공중에 띄우고 살짝 애튀듀드(attitude)를 거쳐서 다리를 공작새 꼬리 깃털 펼치듯 180도나 그 이상으로 쫘악~ 펼치고 버텨줘야 한다. 그러나 취미발레인의 대부분 현실은 90도에서 올라가려고 하면 상체가 구부러지거나 엉덩이가 뒤로 쭉 빠지거나 지지하는 다리(supporting leg) 쪽의 무릎이 비실거리며 구부러진다. 이것도 연차가 좀 된 사람은 되도록 지지하는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지 않으려고 힘을 준다고 주지만 잠시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무릎을 완전히 펴지 않고 동작을 하기가 쉽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 한 가지! 칼럼에서 종종 강조하곤 했다. 지지하는 다리의 무릎을 완전히 펴지 않고 비굴하게 살짝이라도 힘이 빠져 있으면 생각보다 엄청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예상한 그런 일… 예뻐지고 누구나의 로망인 가늘고 긴 근육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발레가 엉뚱하게도 허벅지와 종아리의 원치 않는 부위에 펌핑이 돼서 튼실한 다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 취미발레인들이 동작을 하나 하더라도 꼼꼼히 제대로 해서 제발 ‘발레 하면 다리 굵어지잖아요?’라는 편견을 싹 없앨 수 있게 올바른 자세로 동작을 수행하도록 하자. 




아다지오 중에 함께 세트로 다니는 데벨로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까?



우선 아다지오가 시작되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온 몸에 힘을 빼야 한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늘릴 때 머리로는 힘을 빼야지 하면서도 막상 스트레칭이 시작되면 신체 여기저기가 경직되기 쉽다. 다리를 잡는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허리를 구부리기 쉬운데, 아다지오 & 데벨로페 동작을 할 때 집중해서 힘을 줘야 할 부분은 복부이다. 복근은 팽팽하게 잡고 몸통 자체가 견고하고 안정되도록 단단하게 힘을 준다. 이때 복부에 힘을 준다고 하면서 흉곽을 부풀리듯이 숨을 참으면 갈비뼈가 벌어질 수 있으니 이때는 숨을 길게 내쉬도록 한다. 신체의 특징이 숨을 츠~~ 내쉬면서 이완하면 스트레칭 향상에 효과적이다. 데벨로페를 할 때도 다리를 드는 높이에 신경 쓰기보다 다리를 길게 확장하면서 뻗는다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 180도가 무리라면 단 90도를 들더라도 제대로 된 자세로 다리를 곧게 뻗고, 발목을 잡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진다면 무릎이나 허벅지 안쪽을 잡고 몸통과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다리를 쭈욱 뻗어보자.


다시 한번! 올리기 전에 우선은 길게 뻗는 단계부터 실천하도록!


이 단계조차 어려움을 느끼는 초보 발레인이라면 이 동작을 매트를 깔고 똑바로 누워서 해보도록 하자. 누워서 등을 바닥에 대면 적어도 등을 반듯하게 펴는 느낌은 알게 된다. 처음부터 욕심부리기보다 편안하게 숨을 내쉬며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자. 하루아침에 되기 어려운 동작이니 지난 시간보다 딱 1cm 정도씩 나아진다는 마음을 가지고 편안하게 하면 된다. 




반대로 선천적으로 유연성이 좋은 경우 이 동작에서 좀 더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필자는 비전공자이지만 유연성이 좋은 편이라서 다리를 잡은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게 데벨로페 동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유연성이 좋은 사람이 범하기 쉬운 실수가 움직이는 쪽이 아닌 반대쪽, 즉 지탱하는 쪽 골반이 같이 흐느적거리면서 빠져나가기 쉽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자세로 이 동작을 하면 몸에 주는 효과가 거의 없다. 항상 골반을 올바른 위치에 두고 지지하는 쪽 다리의 엉덩이 근육에 힘을 주고 집중해서 다리를 늘린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다리를 들 때 드는 다리(working leg, 움직이는 다리)에 집중하기 쉬운데 다리를 들 때는 지지하는 다리 쪽 근육의 힘으로 움직이는 다리의 동작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자. (데가제, 롱 드 잠브, 퐁듀 등 다리를 드는 모든 동작에 해당이 된다) 만약 다리를 잡고 하는 데벨로페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잡지 않고, 몸을 고정해서 다리를 들어 올려서 지탱하는 연습을 해본다.


결국 유연성과 근력의 조화로움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는 동작이다. 이 동작만 나오면 한숨 쉬면서 끙끙대기보다 자신의 호흡과 아름다운 음악에 집중하며 즐기면서 하길 바란다. 아다지오의 기본은 릴랙스, 데벨로페는 내 다리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잘 안되더라도 내 몸의 곳곳에 주문을 걸어보자. 


‘내 다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꾸준히 연습하면 공작새의 꼬리처럼 멋지게 펼쳐질 것이다…’


충분히 힘을 빼고 인생을 바라보듯이 이 동작을 할 때는 '잘해야지!'란 생각보다 편안하게 숨을 내쉬며 '즐겨야지!'란 마음으로 해야 한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데벨로페를 원한다면 말이다. 향상된 나의 기량과 신체 라인을 기대하며 아다지오의 음악에 온전히 온몸을 던지길 바란다.


편안하고 올바른  데벨로페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 모델 : Claire Teisseyre(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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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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