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림바링 (Limbering)

숨 고르기, 하지만 다음을 위한 진정한 도약


현재 시점의 필자는 다양한 오픈 클래스에 참가해본 경험도 있고, 직접 오픈 클래스를 주최해서 열어보기도 했고, 그 외의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봤다. 필자가 발레를 배운 지 3년 차쯤 됐을 때 우연히 유명 무용수가 강사로 초빙된 오픈 클래스에 신청했다가 당첨돼서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주최 측에서 개별적으로 참가자들에게 연락을 해서 오픈 클래스에 필요한 준비물이나 수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필자도 전화를 받고 클래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다가 오픈 클래스의 레벨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

“웜업은 각자 하는 건지 아님 개인 매트를 준비해 갈까요? 그리고 바워크나 센터워크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가요?”

“ 네, 이번에 진행되는 오픈 클래스는 발레 바(ballet barre)를 이용해서 직접 발레 동작을 하나씩 배우는 걸로 진행이 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바워크 전에 개인 매트를 챙겨서 몸을 풀까요? 아님 스튜디오에 비치된 매트를 사용해도 되는 건지요?”

“매트 사용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고, 이번 *** 발레리나의 오픈 클래스에서는 실제로 발레 바를 이용해서 동작을 익히게 됩니다.”

“발레 수업이니 당연히 발레 바는 사용하는데… 제가 궁금한 건 바워크나 센터워크의 난이도인데요…”

“수업의 난이도는 당일 선생님이 수강생의 수준을 보고 결정하실 거고, 참가자는 실제 발레 바를 이용하게 됩니다.”

과장이 아니고 필자의 질문에 담당 직원은 앵무새처럼 ‘발레 바’를 이용하는 클래스라는 대답만 세네 번 이상은 반복했다. 게다가 고의가 아닌 상당히 해맑은 목소리로 성의를 다해서 계속 ‘발레 바’만 강조했다. 이 오픈 클래스를 주최하는 단체는 발레와는 상관이 없고 자기들의 상품을 홍보하는 데는 전문적이었지만, 정작 발레 클래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은 없다. 실제로 발레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발레 바’라는 존재는 참으로 낯설고 동시에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묻든 일관성 있게 '발레 바'만을 강조했던 이벤트 담당 직원의 답변이 동문서답(東問西答)이었을지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을지 현재까지도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실 발레 클래스에 있어서 발레 바는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시보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발레가 워낙 대중적으로 운동 자체로도 핫이슈가 돼서 발레 바 자체가 그렇게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약 두 달여 동안 필자의 위클리 매거진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직접 발레를 해보지 않았더라도, 바워크, 센터워크 정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거라고 추측한다. 





“그 발레 바가 뭐길래…” vs “너무나도 소중한 발레 바!!”



바워크의 모든 동작을 짚어내지는 않았지만 약 9주에 걸쳐서 대략의 큰 가지를 훑어나간 셈이다. 마지막에 림바링(Limbering)이라는 이 생소한 단어는 간단히 말하자면 바워크의 마지막 스트레칭 동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림바링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구부리는 능력, 유연한 정도를 뜻한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신체의 관절을 부드럽게 구부리고 꺾고, 늘리면서 하는 모든 운동 동작이 림바링에 속한다. 잠에서 깼을 때 쭉쭉이 체조하듯 기지개를 켜거나 손목, 발목 관절을 돌리고 포인, 플렉스 동작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바워크의 마지막 에너지 폭발 그랑 바트망 제테 순서를 마친 당신 앞에 무엇이 놓여있는가? 그렇다. 바로 소중한(?) '발레 바'가 놓여있다. 그렇다면 발레 바를 이용한 림바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림바링은 보통 한쪽 다리를 바에다 올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리를 앞쪽 방향(드방)으로 올리고 상체를 곧게 세우고 음악에 맞춰서 한쪽 다리로 천천히 플리에 한다. 이 상태로 상체를 앞, 옆, 뒤로 구부리는 캉브레 동작을 해주기도 한다.  이때 몸의 중심이 스탠딩 레그 쪽으로 정확히 이동하면서도 상체의 코어가 바르게 정렬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몸을 세우는 축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줘야 한다. 이후에는 다리를 사이드로 한 채로 위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좀 더 숙련되면 바에 다리를 뒤(데리에)로 걸고, 상체를 바르게 정렬하고 똑같이 동작을 반복한다. 또는 바를 양손이나 한 손으로 잡고 한쪽 다리를 뒤로 길게 뻗는 런지 동작을 하기도 좋고, 스트레칭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는 발레 바를 양손으로 잡고 다리를 앞뒤 일자로 만든 채 체중을 싣고 서서히 내려가는 동작을 연습하기도 좋다. 이렇듯 발레 바를 이용한 림바링 종류는 너무 다양해서 일일히 글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발레 바에서 수행하는 사이드 림바링 / 모델 : Rebecca Mabin(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발레 바를 이용한 런지의 바른 자세 / 모델 : Rebecca Mabin(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말로 하거나 글로 설명하면 간단할 것 같은 림바링… 그러나 현실은?



발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기준으로 이야기하겠다. 발레 클래스에 들어와서 폭풍 같은 바워크를 마치고 자신의 앞에 있는 바에다 한쪽 다리를 올리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부터 쉽지 않다. 초보자들은 허리보다 약간 위의 높이에 놓여있는 바에다 다리를 올리는 건 고사하고 얹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올린 다리나 서있는 다리나 무릎을 쭉~ 펴줘야 신체의 정렬 상태를 알 수 있다. 참으로 산너머 산이다. 바워크 마지막이라고 뭐가 좀 쉬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스트레칭마저 우아하고 시원시원한 발레 동작과는 거리가 있는 뭔가의 찝찝한 마음과 비루한 몸뚱이와의 투쟁으로, 마치 물 한 바가지 끼얹은 모닥불의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마무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발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너무 놀라거나 섣불리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에게 소중한 ‘발레 바’를 열심히 설명했던 상담직원처럼 발레의 많은 요소들이 당신과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초보 발레인 이어도 바에다 편안하게 다리를 얹고 동작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여기서 누가 더 유연하고 선천적 신체 조건을 타고났을까 라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겠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이런 림바링이 발레 클래스에 어떤 위치에 있는 걸까? 바워크를 하기 전에도 개별적으로 간단히 몸을 풀지만 바워크를 마치고 하는 림바링은 이전보다 체온도 좀 더 상승해있고, 바워크를 제대로 했다면 신체의 각 부위가 충분히 이완되어 동시에 대부분의 근육은 팽팽한 텐션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즉, 센터워크에서 춤을 추기 위한 진정한 준비 상태가 되어 있다. 그 센터워크를 진행하기 전에 숨고르기를 하면서 자신의 몸을 꼼꼼히 점검하는 단계가 바로 림바링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엄청난 업무를 수행하거나 지긋지긋한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거나 또는 자기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 비약적인 도약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닥쳐온다. 놀랍게도 이런 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이 자신이 그 순간을 감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들 모르게 조용히 마음의 심호흡을 하며 진짜 경기를 치를 준비를 한다.

발레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동작 한 동작이 중요하지만 전체의 맥락을 보면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것 같이 끊이지 않는 흐름을 지니고 있다. 림바링이 그 중간의 쉼표의 역할을 한다. 그 쉼표에서는 그냥 철퍼덕 주저앉으면 안 된다. 바워크의 낯설고도 힘든 과정을 무사히 치른 당신이라면, 이미 당신의 몸과 마음은 더 힘든 다음 레벨을 향해 달릴 준비가 되어있다. 림바링을 마지막으로 묵묵히 당신 곁을 지켜준 소중한 ‘발레 바’와의 작별을 하고, 센터워크에서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은 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만 우아하게 춤을 춰보도록 하자.


"여러 가지 난관 속에서도 바워크의 산등성이를 무사히 건넌 당신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모델 : Rebecca Mabin(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이전 10화 그랑 바트망 제테_Grand Battement Je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