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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 이야기

당신의 경쟁 상대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나의 연인, 발레를 읽다>의 전반부는 발레 클래스의 바워크 순서에 따른 발레 용어 하나씩을 주제로 한 연작 에세이다. 본 매거진은 ‘발레를 글로 배워보자’라는 취지보다 ‘발레를 글로 읽어보자!’라는 쪽에 더 가깝다. 시초는 발레 용어로 풀어간 간단한 에세이였지만, 이면에는 우리 모두의 평범한 삶의 방식이 들어있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글을 썼다.

지난주 림바링을 끝으로 매거진 전반부를 마무리했다. 후반부에서는 발레에 관련된 환경이나 궁금한 점, 나아가서 생소한 분야의 이야기를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글로 풀어낼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 관점이지만 윤여사의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면서 발레에 대한 재고(再考)를 해보고 싶다.




필자가 작년에 무릎 수술을 받을 때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수술 전 날 입원을 하고 수술 담당 전임의사 두 명이 배정되었다. 환자 히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간단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재작년 일상생활 중 잘못 넘어지면서 무릎이 어긋나 굉장한 통증을 느꼈는데 그때 인대와 연골판 손상이 됐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평소에 어떤 운동을 해오셨나요?

“꾸준히 발레를 하고 있었어요.”

차트에 열심히 기입하던 의사 선생님이 수술 전 상황 체크로 바쁘게 쓰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다시 질문한다. 아마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본인이 생각한 발레의 이미지와 수술을 앞둔 중년 부인의 입에서 발레를 한다는 이야기에 잠시 동안 혼란이 온 것 같았다.

“음… 발레 선수세요?”

“아니… 선수가 아니라 취미로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필자 머릿속에는 ‘선생님 발레는 경기 종목이 아니라서, 선수가 아니라 발레리나라고 합니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진지하게 진단을 하고 있는 의사에게 요모조모 따지기가 참 뭐한 상황이었다.


발레는 무대에 올리는 공연 예술이다. 그러나 오늘의 칼럼의 주제는 그 의사 선생님 표현대로 정말 <발레 선수>처럼 시합을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발레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꼭 한 번씩은 거쳐가는 자기 점검의 순간인 ‘콩쿠르’에 관한 이야기다. 게다가 요즘은 꼭 전공자가 아니어도 일반인도 원하면 일반부로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저변이 확대되었다.




콩쿠르 : concours

'경쟁' 또는 '경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며, 국제 콩쿠르에서는 보통 Competition이라고 영어로 표기된다. 보통 음악, 무용, 미술, 영화 등의 예술 분야에서 각 개인이나 단체의 능력을 경쟁하는 형식으로 베푸는 대회이다.


우리가 ‘콩쿠르’ 하면 나가 본 사람보다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계 각 분야의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이들 덕분에 마치 유수의 국제 콩쿠르가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 분야이긴 하지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 우승자인 조성진 군과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우승자인 선우예권 군 덕에 콩쿠르란 단어가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발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Prix de Lausanne)나  미국의 YAGP(Youth America Grand Prix)란 명칭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시작점을 0에다 맞춰보자. 이렇게 유명한 국제 콩쿠르에 눈높이를 맞추기보다 ‘콩쿠르’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콩쿠르가 존재한다. 콩쿠르 시즌이 시작되면 콩쿠르만 주관하는 웹사이트에서는 한 달에도 3-4개의 크고 작은 콩쿠르가 공지된다. 그 많은 콩쿠르의 주최자가 누구이며 왜 그렇게 다양한 대회가 열리는지에 대해서는 이 칼럼에서 논할 생각은 없다. 물론 콩쿠르의 퀄리티에 따라서 우수한 경연도 있고,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하는 도떼기시장 수준의 경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많은 콩쿠르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많은 지원자가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콩쿠르에 출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공식적인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예술 분야에 해당되지만 발레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겠다) 무용실에서 매일 클래스를 하고, 작품 연습을 하는 것 모두 결국에는 무대에서 춤을 추기 위한 것이다. 목표의 종착점은 발레 공연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발레를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공연에 자주 서는 것도,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콩쿠르는 자신의 현 상황을 평가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인 셈이다. 또한 콩쿠르를 통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보면서 좀 더 폭넓은 시야를 경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느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콩쿠르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요즘은 군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콩쿠르의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고, 입상의 조건도 꽤 까다롭기 때문에 한해에도 지극히 제한된 인원만 군면제 혜택을 수혜 받는다.

또 한 가지 콩쿠르에 나가는 이유는 입시나 취업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을 취득하기 위해서이다. 외국의 경우는 콩쿠르보다 예술 학교나 단체에서 쇼케이스 같은 방식을 통해서 발레 컴퍼니와 계약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발레 컴퍼니에 입단을 하기 위해서는 정식 오디션을 통해서 취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력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콩쿠르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조금 제쳐두고 콩쿠르는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발레 콩쿠르의 대부분은 약 2분 이내의 솔로 바리에이션을 보여준다. 참가자가 많을 경우는 시간을 1분으로 제한해서 한참 흥이 오르는 부분에서 곡이 뚝 끊기는 경우도 있다. 시간 제한상 음악이 뚝 끊겨도 당황하지 말고 하던 동작을 차분히 마무리하고 우아하게 퇴장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의상과 메이크업을 전부 완료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는 메이크업과 의상을 입고 대기하는 대기자들로 경연장 곳곳이 이재민 수용소 수준으로 돗자리와 텐트가 동원이 된다. 자기의 순번이 되기 전에 허기지지 않도록 밥도 미리 먹어둬야 하고, 몸도 굳지 않도록 계속 움직여주고 풀어야 하고, 분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하면서 짧게는 몇 시간, 참가 순서에 따라서 거의 하루 종일 대기를 할 때도 있다.

콩쿠르는 긴장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경연장이기도 하다. 보통 참가자보다 보호자 입장에서 함께 가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지켜보며 더욱 긴장이 되기도 한다. 발레 전공자 학부모 사이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콩쿠르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면 ‘기가 쭉 빨려나가는 기분’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모든 참가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자신만의 에너지를 극한으로 뿜어내는 장소, 분명 힘든 과정이긴 하지만 발레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몇 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와도 같다.


모델 : Claire Teisseyre(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콩쿠르라는 형식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꽤 높다. 하긴 모든 경연이나 대회에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치열하고 순위를 매겨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100% 투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일회성에 채점하는 방식을 막기 위해서 참가자들과 함께 클래스를 하며 앙쉔느망을 과제로 주기도 하고, 며칠에 걸쳐서 인성을 눈여겨보기도 하고, 무대 화장을 하지 않고 맨 얼굴로 작품을 하게 하기도 하고, 무대의상이 아닌 레오타드를 입고 노메이크업으로 예선을 치르는 콩쿠르도 있다. 환경적인 요소보다는 춤에 기초한 참가자의 여러 가지 기본 소양을 보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하는 방식은 필요하다고 본다. 

콩쿠르의 취지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자신의 실력을 공식적으로 판단하고 동시에 평가받기 위한 장치이다. 좋게 이야기해서 ‘선의의 경쟁’이라고 말하지만, 가혹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사실은 ‘말없이 치르는 전쟁터’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매일 펼쳐지는 단순한 반복의 일상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마치 콩쿠르를 치르는 상황은 일어난다. 당신의 일상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크고 작은 미션 클리어의 연속일 것이다. 꼭 누가 평가를 하고 상을 주고 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현 단계보다는 나은 것을 지향하며 목표를 향하고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 상대는 ‘어떤 사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든 상황이든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누구나  휴식 같은 편안함을 누리는 여유로운 일상을 기대하지만, 그런 휴식의 시간보다는 치열하게 관문을 넘어서고 지루하리만큼 반복을 통해서 일상을 켜를 쌓아나가게 된다. 그 일상의 켜는 그 사람의 실력인 동시에 연륜으로 쌓여가게 된다. 

자… 이쯤 되면 각자 인생의 콩쿠르에서 당신의 경쟁 상대를 ‘누구’에 한정 지을 것인가? 아님 이전의 상황보다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상상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 몫이다. 


모델 : Alina Nanu (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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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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