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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이야기

몸은 끊임없이 내게 이야기한다


발레에 관한 ‘잘못 인식된 연속적인’ 두 가지 편견이 있다.

첫째, 발레를 하다 보면 누구나 부상이 생긴다. 발레는 평소에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근육을 자극해서 하는 운동이다 보니 취미로 하더라도 여기저기가 다치기 쉽다.
둘째, 결국 발레를 하다 보면 뼈와 근육과 인대의 구조가 발레가 원하는 쪽으로 바뀌게 돼서 정상적인 신체 구조와는 다르게 되므로 부상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턴 아웃, 꼿꼿한 등 라인을 강조해서 동작을 하다 보니 경추부터 요추까지 일렬 라인으로 정렬이 변형되어 장기간 하면 만성적인 통증을 지니게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우선 이 두 가지는 잘못 알고 있는 진실이다.




이번에는 부상에 관한 이야기다. 꼭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제 막 취미로 발레를 입문한 사람도 발레가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하는데 몸 곳곳이 아파서 발레를 한동안 쉬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요즘같이 발레가 일반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치솟는 상황에서 마치 ‘발레=부상’의 등식을 공식화하기도 한다. 오늘은 위에서 언급한 이 편견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미리 밝히고 글을 시작할까 한다.



프로 무용수의 부상의 범위는 굉장히 넓고 다양해서 한 번에 두루 설명하기는 어렵고, 이번 칼럼에서는 취미발레인이나 초보 발레인들이 쉽게 겪는 부상의 종류와 예방법에 관한 것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필자도 발레를 하면서 소소한 부상을 많이 겪었다. 처음에 할 때는 발레 동작이 워낙 생소하다 보니 근육이 아프고, 발목을 삐기도 했다. 격렬하지 않을 것 같지만 발레를 하다 보면 근육의 피로도가 누적되기 쉽다. 취미발레인들이 발레에 한참 재미를 붙여서 하다 보면 흔하게 겪는 부상의 종류는 대략 다음과 같다. 고관절 통증, 뒤쪽 대퇴사두근(허벅지) 햄스트링 통증, 무릎 앞쪽에 위치한 슬개건 통증을 병행한 염증, 발목 염좌, 인대 손상, 아킬레스건 통증 등이 있다. 이런 통증과 손상을 간과하고 무리한 동작을 하다 보면 염증이 생기기도 하고, 다리 위쪽에서 시작된 통증 및 불편한 증상이 말단으로 타고 내려가다가 심한 경우 무지외반증이나 족저근막염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짚고 넘어갈까 한다. 발레를 배우다 보면 자세가 상당히 좋아진다. 흔히 현대인의 고질병 중 하나인 거북목과 굽은 등, 곰 세 마리 얹은 어깨의 묵직함이 사라진다. 아주 흔하진 않지만 팔과 상체의 동작인 폴 드 브라 알라스콩만 제대로 해도 처진 팔뚝살이 조금 해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발레를 해서 상체 쪽 부상은 거의 없고 오히려 좋아지는 반면 유난히 하체 쪽에 부상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한 번의 칼럼의 글로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고,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신체를 잘 못 이해하고 잘 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레 동작의 완성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연결되는 라인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발레를 처음 접하고 배울 때를 떠올려보자. 바클래스 순서를 따라 하려면 팔과 상체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오로지 발 동작 따라 하기에 바쁘다. 

이렇게 시작한 발레, 시간이 지나서 발레 동작이 조금 익숙하게 되면 용어도 이해하게 되고, 발의 움직임의 패턴을 익히게 된다. 이렇게 초급 단계를 갓 벗어나기 시작하면 동작에 슬슬 욕심이 생긴다. 턴아웃도 좀 더 완벽하게 하고 싶고, 점프도 더 멋있게 뛰고 싶고, 피루엣도 제대로 돌고 싶어 진다. 취미발레인의 경우 다리 동작이 제대로 된 다음에야 상체 사용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신체 구조적으로 다리 쪽에 부상이 더욱 많이 생기는 이유는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섭리인 중력과 신체 중 다리가 온몸을 받치고 버티는 하중 때문이다. 그리고 발레에서 강조하는 풀-업(pull up) 상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풀업 상태를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발레에서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공중에 떠오르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세 군데를 제외하곤 말이다. 온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부양되는 기분으로 쭈욱 위로 늘이지만, 어깨를 묵직하게 내려주고, 팔을 아래로 모으는 동작인 앙 바(en bas)에서는 손바닥에 묵직한 공을 얹어 있는 것처럼 동작을 하고, 지지하는 발바닥은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균일하게 땅에 뿌리박듯이 힘을 주고 있어야 한다. 즉, 떠오르는 몸을 이 세 군데에서 눌러준다는 기분으로 해야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서있는 기본 동작 조차 참 어렵다. 그런데 발레는 가만히 서있는 동작이 아닌 신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서있는 동작도 만만치 않은데 발 끝을 뻗고, 위로 솟아오르듯이 점프하고, 발을 차고, 몸의 중심을 끊임없이 옮겨줘야 한다. 필자도 취미발레인이지만 이런 복합적인 동작을 수행할 때 몸의 자연스러운 상태와 구조를 잊게 되고 그저 동작 흉내내기에만 급급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누적되면 백 퍼센트 의심할 여지없이 부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럼 어쩌라는 건가?
재밌어서 열심히 하는데 이래저래 해도 부상이 생긴다면
발레는 결국 포기하라는 이야기인가?


모든 솔루션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취미발레인들이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간단한 노하우를 알리고자 한다. 

우선 발레 첫걸음 초보자라면 전신 거울 앞에서 앙 파세(en face) 폴 드 브라 앙 바에 발은 턴아웃 1번 포지션 기본 서있기 동작을 해봐야 한다. 물론 최대한 풀 업의 기분을 느끼며 자세를 취해 본다. 이 동작을 해보면 자신의 발 턴아웃 각도도 알게 되고, 턴아웃을 했을 때 몸이 휙~ 뒤로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면 1번 발 각도를 조금 좁혀야 한다. (무리한 턴아웃은 금물!)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좌우대칭으로 조화롭게 이루어진다고 여겨지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것이 아닌 기본 동작을 두뇌에 잘 기억시키자. 우리가 보통 ‘몸이 기억하게 하라’는 말을 종종 하지만, 사실은 뇌에서 먼저 기억하고, 그 명령을 온몸에 전달시키는 것이다. 발레를 하다 보면 머리로 끊임없이 생각을 하지만 몸이 기억하기 전에 다음 동작으로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기본 서있기만 정확히 잘하면 몸의 중심이 파악되고, 그래야 모든 움직이는 동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다음은 어느 정도 초보 레벨을 벗어난 중급 이상의 취미발레인들이 부상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근력 운동 병행과 몸에 무리되는 동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도한 욕심은 금물!! 중급 이상이 되면 취미발레인들 사이에서도 현격한 실력 차이가 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근력이 좋고, 어떤 사람은 유연성이 뛰어나다. 마치 발레를 배워서 익숙해지면 모든 동작을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취미발레인이 모든 동작을 잘하기는 어렵다. 데벨로페가 잘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피루엣이 잘 되는 사람이 있고, 그랑 제테를 시원시원하게 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폴 드 브라가 유난히 우아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중급 이상이 되면 내가 잘하는 동작보다 내가 안 되는 동작에 집착(?)을 하게 된다. 안 되는 동작을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좋지만, 욕심이 조금 들어가면 정작 중요한 근력 운동이나 기본자세를 간과하고, 무리한 동작을 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다른 장소에서 시작된 부상을 간과한 채 재활하지 않고 몇 개월 동안 방치하다가 센터 워크 동작에서 큰 부상으로 이어진 경우이다. 결국 수술하기까지 이르렀는데 아마 꽤나 긴 시간 동안 재활운동과 치료를 겸해야 할 것이다. 수술 이후 바뀐 생각은 ‘내가 왜 발레를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는 거다. 그러고 내린 결론은 발레를 통해서 신체의 건강과 마음의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요즘에는 다시 발레 클래스에 참여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동작만 하고, 할 수 없는 동작은 그냥 스킵한다. 몸의 양쪽 밸런스를 맞추는데 가장 중점을 두고, 내가 하지 못하는 동작에 대해 조바심 내지 않는다. 아마 발레에 열정을 불태우며 마치 전공자 마인드로 달려들었을 시기에 비하면 겉으로 보이는 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을지 몰라도, 좀 더 기본에 충실하고 내가 잘하는 동작에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내 몸이 요구하는 내적 성장에 중점을 둔다. 나이 들어감을 인지하고, 이번 생애에 현란한 푸에테(fouette)를 돌지는 못하더라도 내 몸에서 말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발레 7년 차에 수술 이후 진짜 어깨에 힘 빼고 발레를 즐기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력을 무시하는 동작은 프로들에게 맡기자 / 모델 : Alina Nanu (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유행가 가사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내 몸은 끊임없이 내게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이렇게 더 하다가는 분명히 아플 거 알잖아? 무릎, 골반이 시큰거리는데도 미련스럽게 무리하게 잘못된 동작을 하게 되면 진짜 큰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땐 잠시 쉬어가는 거다. 인생이든 발레든 전진과 후퇴만 있지 않다. 가끔은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는 게 진짜 어른의 모습…

성인이 돼서 발레 하는 당신을 끊임없이 응원한다. 하지만 꼬리뼈 말아 넣으며 척추를 일자로 만드는 일, 무리한 턴아웃으로 고관절을 오픈하지 않고 무릎을 뒤틀어버리는 일, 아라베스크 라인 만든다고 골반에 무리를 주는 동작 같은 것은 삼갔으면 한다. 발레리나(리노)의 신체 라인을 무조건 따라 하는 건 위험하다. 신체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모든 취미발레인들에게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내 몸에서 말하는 메시지에 조금만 안테나를 세우자. 몸과 마음이 건강하려고 발레를 하는 거지 발레를 하는데 몸이 계속 아프다는 것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신호이다. 

발레의 파세 발란스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밸런스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들 부상 없이 즐겁게 나이 들어서까지 발레 하는 문화를 꿈꿔본다.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오늘도 맑음이다.


Snow Queen 공연 한 장면 / 모델 : Zachary Rogers (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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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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