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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 이야기

승부보다 더한 무게감이 존재한다



어떤 분야에 ‘선수’라는 호칭이 붙으면 승패와 등수가 매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레랑 먼 친척 뻘쯤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리듬체조는 정확히 경기 종목이고, 선수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발레는 운동 경기가 아니다. 무대에서 감동도 주지만 기예에 가까운 기술적인 요소가 있어서 뭔 채점표를 들고 막 점수를 매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콩쿠르라는 점수로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도 있지만, 무대의 모든 공연은 전적으로 마음속으로만 살포시 점수를 주지 겉으로 ‘이번 공연은 몇 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우아하게 펼쳐지는 공연을 예술의 눈으로만 고상하게 평가하니까 승부욕은 존재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 무용수의 세계는 작품이 정해지고 캐스팅이 정해질 때까지, 심지어는 캐스팅이 정해져도 더블 캐스팅 안에서도 미묘한 승부욕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좋아서 시작한 취미발레의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승부욕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취미발레 세계에서는 상상초월의 승부가 펼쳐진다.
이번 칼럼은 프로,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승부의 관한 이야기를 필자의 관점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영화 <블랙 스완_Black Swan>에서는 프로 발레 세계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과 타인과의 경쟁 세계를 살벌하게 표현한 영화다. (필자의 이전 칼럼 참조)

https://brunch.co.kr/@yoonballet/43

영화를 보면 주인공 니나는 백조의 호수 주역 캐스팅이 결정되기까지 다른 단원들의 시기, 질투도 받고, 스스로도 강박증에 얽매이게 된다. 주역으로 캐스팅이 돼도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느끼는 내면의 불안이 영화 내내 짙게 깔려 있다. 영화를 보면 프로 발레 세계가 저렇게 숨 막히다 못해서 공포스러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저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무용수들이 느끼는 갈등이 무엇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의 프로 발레 세계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저런 공포심은 없겠지만,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경쟁심은 분명히 존재한다. 단순히 경쟁 체제가 아닌 승부(勝負) 즉, 누가 이기고 누가 패배하느냐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어쩌면 점수를 매기는 운동 경기보다 이런 상황이 훨씬 더 혹독하고 잔인하다고 볼 수 있다. 점수로 매길 수 없는 부분이기에 내 마음속에는 이미 패배감이 휘감고 있어도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취미발레 세계의 승부욕은 무엇일까? 발레는 단체 클래스로 수업이 진행된다. 취미라도 열정이 넘쳐서 개인 레슨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체 클래스다. 처음에 발레를 시작할 땐 순서를 익히기도 어렵고 발레 학원의 에티켓이나 분위기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수업이 조금 익숙해지면 그제야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좋은 사람, 단순히 키 크고 늘씬한 것도 좋지만, 발레를 좀 했다고 하면 발레에서 말하는 좋은 신체 조건… 발등 아치, 쏙 들어간 무릎, 긴 목, 가늘고 우아한 팔 라인, 쇄골의 모양새 등 아주 구체적인 신체 조건을 은근슬쩍 평가하게 된다. 그러고 센터 워크를 시작하게 되면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사람마다 각자 유난히 잘되는 동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하는 동작은 홀랑 까먹고 남 잘하는 동작만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보게 된다. 욕심이 지나치면 발레에 깔려 있는 기본 매너도 잊은 채 타인에 대한 배려심 조차도 잊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는 집착에 빠지게 된다. 바 옮길 때 죽기 살기로 맨 앞자리를 차지해야 하고, 늦을 것 같으면 슈즈나 수건을 먼저 던지기도 하고,(이건 흡사 지하철에서 빈 좌석을 향해 가방을 먼저 던지는 몰염치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센터 워크를 할 때도 타인 진로 방해라는 최악의 매너를 탑재하기도 한다.

또 다른 유형은 승부욕보다는 물욕에 가깝긴 하지만 실력과는 무관하게 장비에만 끝없이 투자를 하는 사람도 있다. 뭐 한 번씩 기분 전환으로 레오타드를 구입하고 발레 스커트나 용품을 구입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가끔 자기가 가장 튀어야 한다는 욕심에 끝없이 장비를 사들이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취향이니까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자기만족이나 취향으로 구입을 하는 건지 은근한 승부심 발동으로 장비를 사들이는지는 본인 스스로가 정확히 알고 있을 거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의 어원은 ‘Profess’ 고백하다. 공표하다에서 유래되었다. 중세시대 기사단이 서약을 할 때 고백의 의미로 쓰였고, 서약에는 목숨을 건 책임 의식이 베이스에 깔려 있다. 그 어원이 현재는 전문직업인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흔히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사용되는 단어에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내재되어 있다. 그에 비해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인 amator는 라틴어로 ‘사랑하는 사람’ 즉, lover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프로는 급여를 받는 직업을 의미하고, 아마추어는 취미, 애호가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를 시소의 양쪽에 태우고 반대 의미로 규정짓는다. 



프로페셔널(이하 프로)과 아마추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고 돌직구로 말한다면 돈을 버는 직업이기 때문에 더 치열하고 냉정한 승부 세계가 펼쳐진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발레의 프로 세계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꼭 발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에 어느 분야에서든 적용할 수 있다. 직업 세계에서 경쟁심, 승부심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  자신이 승부욕을 갖지 않으려고 해도 주변 환경에서 승부욕도 없는 사람은 열정이 없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사실 승부욕과 열정은 별개의 논리임에도 막상 그 세계 안에 속해 있으면 이것이 승부욕인지 열정인지 혼동이 온다. 직업인 프로페셔널, 취미인 아마추어… 이 모든 분야에 승부욕, 열정, 애정 등 모든 것이 한데 엉켜서 버무려져 있다.



필자는 누가 봐도, 누구에게 나이를 이야기해도 완연한 중년이 되었다. 20-30대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기 싫었고, 남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다. 이것이 때로는 내가 속한 세계에 관한 열정으로 보이기도 했고, 승부 근성이 강한 집념의 여성으로 보이기도 했다. 

오늘 이야기의 마무리는 단순한 ‘승부욕’보다 조금 더 무게감이 실린 ‘책임감’에 대해 생각했으면 한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리노)는 좋은 공연에 대한, 배역에 대한,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취미발레인은 아마추어라는 용어에 걸맞게 발레를 애정 하는 마음에 대한, 자기 몸의 건강을 위한, 이전보다 좀 더 정확하고 나은 실력을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타인을 이겨먹겠다는 ‘승부욕’보다 처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책임감’을 마음 한가운데 심는다면 자신이 나가야 할 방향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언뜻 보면 쉽고 당연한 논리 같지만 책임감은 승부욕보다 무게감이 훨씬 더하다. 어쩌면 살벌하게 점수를 매겨서 당신은 몇 등이라고 순위를 매기는 행위보다 아무도 평가하지 않고, 본인의 마음속 책임감을 의식하는 게 더 혹독할 것이다.


체코 국립발레단 Seperate Note 공연 실황 이미지 컷
  모델 : kristina kornová, kristýna němečková (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발레는 분명 함께 하는 예술이다. 솔로 바리에이션도 중요하지만 군무가 존재하지 않으면 작품 자체의 의미가 없고, 그 연장선은 클래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체 클래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단체 클래스에서 함께 할 때 다른 사람을 보고 배우는 요소도 많겠지만,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자신이 그 자리에서 왜 춤을 추는지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의 책임감을 의식했으면 좋겠다. 책임감… 분명히 승부욕보다 무겁다. 하지만 그것은 이기고 지는 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가 있다. 자신 기준의 책임감으로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사람, 상황이 돼보는 건 어떨까? 

또 한 가지 더… 책임감의 별책부록은 포용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뭐든 이겨만 보겠다고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자.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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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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