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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맘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렵다’


추리 소설을 읽는데 두어 페이지 넘기니 사건이 터지고 바로 범인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초반에 살짝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이 사람이 범인이며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이 궁금해서라도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된다. 필자가 추리소설을 맛깔나게 써내는 작가 수준은 아니지만, 발레 전공의 세계는 미스터리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실없이 웃어보자고 범인 미리 밝힌 추리소설에 비유를 해본다. 만약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김새는 상황일지 몰라도 솔직히 말하면 정말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발레맘 생활이다.




아이를 셋 키우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가 많다고 더 힘들고, 아이가 적다고 덜 힘들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아이가 하나이거나 여럿이거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보호자 입장에서 한 사람을 책임지고 양육한다는 것은 대단한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필자가 자랄 때만 해도 공부냐 예체능이냐 이런 식으로 이분법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필자가 엄마가 되고 나서 그런 이분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것을 특별히 더 잘한다고 해서 그것에 관련된 직업을 평생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인생이 그랬듯이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선택의 폭은 넓고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과거에 겪어왔던 10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래 세계에서는 환경과 상황의 급변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발레가 뭐 그렇게 유별난가?

발레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유별난 분야는 아니다. 음악 들을 줄 알고, 리듬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레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레리나(리노)를 꿈꾸는 아이들, 흔히 ‘발레 전공자’라고 하는 아이들의 생활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음악이나 미술, 운동을 포함한 체육도 매일 연습을 하거나 레슨을 받는다. 발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음악, 미술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발레는 체육 분야처럼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이 지극히 짧다는 것이다. 보통 발레단에서 프로 무용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은퇴시점은 40세 전후이다. 이보다 훨씬 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고 관련 분야로 일을 하거나 아예 다른 분야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발레단에 입단을 하거나 데뷔를 해야 하는 시기도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으로 일하는 시기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대학 입학을 선호하는지라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이 쌓이다 보니 사회생활 시작 시점에도 모라토리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발레는 이렇게 늦게 입단을 하면 아예 의미가 없기에 프로 무용수로 활동을 하려면 최대한으로 빠른 시기에 입단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한창 실력을 쌓는 시기에 묵묵히 뒷받침하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체코국립발레단 세레나데(Serenade) 공연 리허설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개인적 사정으로 부모가 돕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발레맘의 생활은 거의 동일하다. 아이를 레슨 시간에 맞춰 매일 데려다주고 입시 준비할 때 체력 보충과 식이조절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고, 아이의 선생님이 아이와 감성적 케미가 맞는지 긴밀하게 살펴봐야 하며, 아이가 힘들어할 때 묵묵히 기다리는 역할까지 도맡아야 한다. 간단한 의상 수선은 기본이요, 여자 아이 같은 경우는 토슈즈 선별 및 토박스, 슈즈 리본 꿰매는 일은 다반사다. 필자 주변에는 콩쿠르 분장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직접 분장을 배워서 하는 발레맘도 있었다. 이런 모든 것이 아이가 조금 성장을 하면 스스로 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다. 발레맘 생활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것은 육체적  소모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 하나만 생각한다고 해도 주변의 다른 아이와 은근히 비교하게 되고, 그렇게 비교하고 있는 모습에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몸을 쓰는 직종인지라 부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뜻하지 않게 부상이 생기면 한동안 발레를 못하기도 하고, 심한 부상은 아예 발레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매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쌓이고 누적된다. 시간이 쌓일수록 아이의 실력은 향상되지만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엄마는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이 소진된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국적을 막론하고 대개 나라의 발레맘이 비슷한 상황이다.


체코국립발레단 세레나데(Serenade) 공연 리허설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필자의 경우도 아이가 이 분야에서 완주한 상황이 아니라서 나름 소신을 갖고 묵묵히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필자와 함께 일하는 젊은 무용수를 만나게 되면 대부분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간혹 개인적인 궁금증에 무용수의 어머니에 관해서 묻곤 한다. 함께 일하고 있는 김경식 작가, 김윤식 작가… 형제 발레리노를 만나서 함께 작업하다가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을 때 형제의 어머니를 뵙고 싶다고 했었다. 어쩌면 훌륭한 무용수를 키워낸 대선배 발레맘의 긍정적 에너지를 나눠 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무용수의 부모님을 만나 본 결과 그분들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강했다. 단순히 강한 카리스마가 아니라 자녀들이 올바른 무용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무엇보다 자녀의 재능과 근성을 믿어 준 것이다. 엄마라고 앞에서 무조건 상황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아닌 뒤에서 지켜보고 한 마디씩 툭툭 던져줄 수 있는 듬직한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발레를 하길 꿈꾸는가? 멋진 일이긴 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분야다. 그래도 가치 있고 소중한 한 명의 예술가가 탄생하도록 오늘도 아이와 대화하고, 운전하고, 바느질하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수많은 발레맘들을 응원한다. 단순히 이 끝없는 뒷바라지로 나중에 보상을 기대하기보다 현재 더 이상 소진되지 않도록 자신만의 출구를 만들어 놓았으면 한다. 이것은 발레맘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리라. 아이가 준비되면 언제든 지금의 둥지를 떠나 더 큰 날갯짓을 하도록 아이도 엄마도… 언젠가 올 그 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몫을 성실히 해냈으면 좋겠다.


**이번 글을 통해 특별히 마음속 든든한 선배맘이신 신성옥 선생님(김경식, 김윤식 작가 어머니)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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