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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발레 이야기

발레 안 세상과 발레 밖 리얼 월드


그렇다면 뭐 지금까지는 가짜 발레 이야기를 했다는 건가? 그럴리는 없다.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서는 처음 다룬 주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까지도 대중들에게 약간은 낯선 <발레>라는 단일 아이템으로 4개월이 넘는 기간 매주 토요일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발레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나누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위클리 매거진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해서 18주 동안 쉬지 않고 대장정을 달려왔다. 필자는 발레 전공은 둘째 치고, 심지어는 체대, 무용과도 없는 학교를 다녔던, 그야말로 발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취미로 뒤늦게 접하고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이 마흔이 넘어서 발레에 매진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취미 덕후의 결정판으로 취미발레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 자리가 필자 혼자 혼신의 힘으로 다다른 자리가 아니다.  

발레를 좀 더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때 의기투합할 마법 같은 파트너가 나타났다. 형제 발레리노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했던 김경식, 김윤식 작가이다. 김경식 작가는 국립발레단 10여 년 단원 생활을 거쳐 2018년에 가장 떠오르는 영상작가로 인생 2막을 시작했고, 김윤식 작가는 국립발레단에서 5년여 활동 후 현재 체코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하여 발레리노와 사진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의 첫 번째 책인 <어쩌다 마주친 발레>에 나오는 모든 사진은 두 작가의 작품이다. 그리고 1년 뒤 현재 연재하는 위클리 매거진 <나의 연인, 발레를 읽다>에서는 체코 국립발레단의 김윤식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으로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그러고 보면 두 형제와 필자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성별도 다르고, 연령대도 엄청나게 차이나며, 프로 무용수인 김윤식 작가, 취미발레인인 필자와는 발레 실력의 차이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역시나 좋다 못해서 통한의 애증까지 다다른 <발레>라는 아이템이다.

프로 무용수인 김윤식 작가와 취미발레인인 필자의 다른 일상 속에서 발레를 경계로 묘하게 겹쳐있는 다른 두 세상, 진짜 세상을 공유하며 연재를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 두 사람의 일상을 비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프로 무용수와 취미발레인의 일반적인 샘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단지 각자의 직업과 하는 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취미발레 윤여사의 평균적 일과 (아이를 키우는 주부와 비슷한 일과일 것이다)
 
6:30 기상
6:30-8:30 가족들 아침 준비 및 가족 식사, 가족들 순차적으로 출근 또는 등교
8:30-10:30 라디오 들으며, 책 보면서 아침 식사, 빨래, 설거지 멀티태스킹으로 한꺼번에 수행
10:30-12:30 발레 클래스, 클래스 없는 날은 집안일 (청소, 정리, 또는 마트 장 보러 나가기), 고양이와 수다 떨며, 고양이 영역 청소하기, 혼자 지역 도서관이나 영화관 가기도 함, 이따금 학교 도서관 사서 봉사
12:30-13:30 점심 식사. 식후 설거지하며 아이들 간식거리 준비, 저녁 식사 메뉴 고민 하기
13:30-17:00 아이들 순차적으로 하교함, 간식 챙겨주고, 학원 라이딩, 저녁 및 도시락 준비 (오후 이 시간대가 제일 바쁨)
17:00-18:00 저녁 식사
18:00-21:00 뒷정리 및 아이들 과제 점검, 레슨 있는 아이 학원 라이딩
21:00-22:30 하루의 살림, 육아 정리 및 마무리. 아이들 취침해야 엄마 업무도 퇴근
22:30- 취침 전(취침 시간 일정치 않음) 칼럼, 의뢰 원고 등 집필 시간, 체코에 있는 김윤식 작가와도 이 시간대에 작업 진행,  


 

김윤식 발레리노 겸 작가의 일상 (공연이 없는 날, 일상적인 발레리노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8:40 기상
9:20 발레단 출근, 식당에서 아침 식사, 클래스 워밍업
10:00-11:15 발레단 클래스
11:30-18:00 캐스팅에 맞는 리허설 참여, 리허설 사이 잠시 비는 시간에 윤지영 작가와 정보 공유, 글에 맞는 사진 선정 작업 또는 근력 운동, 수면을 취한다. (그러나 리허설과 공연 일정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18:00-19:00 발레단에서 마사지 또는 사우나  
19:00-20:00 집에서 저녁식사 또는 외식
20:00-24:00 개인 사진 작업, 협업 중인 윤지영 작가와의 작업 진행 (사진 셀렉 또는 필요한 사진 스케칭)
24:00 취침


 

발레라는 아이템으로 협업을 하지만 두 작가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주부인 필자는 대부분 살림 육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현역 발레리노인 김윤식 작가는 무용수로서 발레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필자는 발레 이외의 주부로서 해야 할 일로 80% 정도 채우고, 나머지 20%를 발레와 관련된 일로 몰두해서 시간을 보낸다. 그 20%가 주부, 엄마가 아닌 작가로서의 생활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있는 발레 클래스,  발레 관련 자료를 찾고 주제를 찾고, 책을 보며 글을 계속 쓰는 일이다.  

그렇다면 김윤식 발레리노는 일상의 80%가 발레단에서의 연습, 리허설, 공연으로 채워지고, 발레단 일과를 마친 퇴근 후 남은 20%는 발레에서 벗어나 본인의 취미이자 또 다른 직업인 사진작가로서의 일에 투자한다.

둘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필자는 발레 없이 반복되는 일과가 대부분인 삶에서 휴식을 위해서 취미이자 좋아하는 발레 쪽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반면, 김윤식 작가는 대부분 발레로 채워진 일과에서 정작 취미이자 휴식은 발레 없는 방향으로 향한다. 공통점이 있지만, 어쩌면 다른 모양새를 지닌 우리 두 작가의 공통점은 ‘발레’이다. 한 사람이 발레에서 벗어나 퇴근하면, 다른 사람은 발레 세계를 향해 출근을 하는 형국이다.



발레가 직업인 사람과 발레가 취미인 사람.


발레가

좋기도 하고,

자부심도 있고,

가슴 설레기도 하고,

잘하고 싶고,

욕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훅 질려버리기도 한다.

아마 우리 두 작가의 일상과 관점은 다르지만 위에 열거한 이 복합적인 감정이 우리 둘의 교집합이 아닐까 싶다.


 


 

우리 둘에게 각자 “발레의 관점에서 인생을 돌이켜 보고, 현재를 비춰보며, 미래를 바라볼 때 어떤 의미이며,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라고 자문해 보았다.


김윤식 작가 (copyright.2018 Markéta Faustová)

김윤식 작가 : 발레라는 건 유년시절 형(김경식 작가)을 따라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지나온 날을 생각해보니 발레 때문에 평범할 수 있었던 삶이 특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실 해외에 나와서 활동하며 다른 시각으로 보는 요즘 들어서 그 점을 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발레라는 것을 안 했다면 아마 사진도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고, 그랬다면 당연히 윤지영 작가님이랑도 인연이 닿지 않았겠네요. 하하하. 발레와 사진이 있었기에 제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거죠.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발레가 매개체가 되어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발레를 확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발레라는 직업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발레가 분명 제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제가 살아왔던 발레뿐이었던 삶의 영역이 확장된 아이러닉 한 일이 벌어진 거죠. 그렇다면 앞으로도 예기치 않은 더 멋진 일이 많을 것 같아 여전히 설레고 행복합니다.


 

윤지영 작가 (copyright.2018 윤지영)

윤지영 작가 : 제가 살아온 지금까지 인생의 절대적 시간 속에서 발레를 알았던 시기보다 몰랐던 시기가 훨씬 더 깁니다. 시간적으로는 그렇지만, 삶의 변화는 확연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레라는 것을 통해 제가 예상치 않았던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셈이죠. 몰랐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많은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시행착오와 혼돈이 몇 차례 지나가고 있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또 하나의 예술분야의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나의 과거를 반추해보고, 현재에 감사하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있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취미발레인이자 작가인 저도 발레가 너무 좋지만, 가끔은 징글징글할 정도로 싫어지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뜻을 같이 하는 협력자들과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연구하는 그 마음으로 버티고 이겨내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발레는 정말 밀당의 고수인 거 같아요. 이래서 이번 매거진 제목처럼 ‘연인’이랑 일맥상통하네요.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힘들고 미워하는 감정도 함께 있는… 하하하



 

그렇다. 김윤식 작가와 필자에게만이 아닌 발레를 좋아하고 취미로 발레를 하고, 직업 무용수로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마음을 지녔을 것 같다. 발레는 무대 위에서 추함(醜)을 감추고, 궁극적인 미(美)를 추구하는 예술이다. 인간의 추악한 내면, 작품의 악역이라도 무대에서는 못생긴 춤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닉 하게 발레에서는 악역의 춤도, 추악한 내면을 표현하는 춤도 강렬한 카리스마와 고난도의 테크닉이 포함된 동작으로 대체된다. 모든 사람의 인생도 이런 식이면 참 멋있을 것 같지만, 리얼 월드에서 펼쳐지는 일상과 인생은 고달픔과 피곤한 일상의 반복이다. 현실 속의 고통과 끔찍한 일, 있어서는 안 될 악인에게 발레의 '미(美)필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러나 발레를 알게 돼서 비록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세상이 펼쳐진 것이지만, 한 개인에게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겼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이쯤에서 여기까지가 현실세계 리얼월드, 여기서부터가 본인이 좋아하는 발레 세상,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자. 발레가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조금 더 나가보면 발레를 통해서 몸의 변화보다 마음의 행복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 동화 같은 발레 세계를 현실 속에 조금 더 깊이 적용시키자. 업무 중에 스텝 밟으며 춤추고 있을 수는 없지만… 단순히 몸의 풀 업(pull up)이 아닌 마음의 풀 업으로 당신의 삶이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졌다면, 당신은 발레를 인생의 항해에 아주 올바르게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의 진짜 발레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나의 연인, 발레를 읽다> 토요일 위클리 매거진을 구독하고 사랑해주신 독자분들. 그대들이 함께 해줘서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수많은 감정을 뒤로 한채 이번 여정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와 김윤식 작가의 차기 매거진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 다른 감동이 있는 사진과 깊이 있고 재미있는 글로 독자 여러분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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