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포크 잡지의 실사판 영화
음식으로 말하는 미니멀 판타지 무비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로 선정된 후 처음 만나는 영화다. <리틀 포레스트> 제목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서 살짝 검색해보니 임순례 감독,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배우 주연이었다. 일본 만화 원작에 일본에서 이미 상영된 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란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가면 재미가 없다. 딱 여기까지만 정보를 얻고 그대로 검색창을 닫고 영화관에서 만날 영화를 기대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영화 보기를 간청하는 마음으로 스토리를 쓰지는 않겠다. 필자의 경우 스토리를 미리 알고 가면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해서 항상 스토리를 모르고 가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 <아가씨>에서 연극처럼 펼쳐지는 모든 출연진의 과장된 연기 속에 빛을 발하는 배우 김태리가 있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촌스러운 듯해도 많은 색을 담을 수 있는 좋은 배우의 얼굴. 그리고 약간의 어색함은 있지만 기괴한 이야기 속에 요부 같기보다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이 배우가 나지막이 읊어내는 연기는 어떨지 기대가 됐다.
식욕은 사람을 자극시킨다. 그래서 수많은 방송에서 그토록 먹방을 자처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식욕은 성욕처럼 대놓고 드러내기 민망하지도 않고, 저급하지도 않다. 경계선에서 잘만 이용하면 은밀한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재료가 아닐까 싶다. 배우 김태리는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배고픈 젊은이로서 천박하지 않고 씩씩하게, 그렇지만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먹는 연기를 해야 했다. 자연스럽고 내면의 성장 과정에서 흔들리는 눈빛보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을 진지하게 잘 표현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킨포크 잡지의 실사판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부제목으로 ‘미니멀 판타지 무비’라고 말한 이유는 가족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요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간단해 보여도 하나의 음식(요리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이 식탁에 올라오기 위해서는 실질적 주방에서는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막상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아도 중간에 나오는 부자재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주방일에 능숙한 사람은 음식 하나가 완성되었을 때 나머지 부자재를 얼마나 빨리 정리하느냐의 현실에 부딪힌다. 분명 모든 음식마다 그릇과 도구가 다른데 저 다양한 그릇은 저렇게 작고 예쁜 싱크대에서 나오는 것인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오며 영화 속 싱크대 수납장이 도라에몽의 주머니를 연상시켰다. 엄마가 떠난 지 4년이 되었는데 4년 만에 돌아온 집의 모든 주방도구가 잡지에 등장할 것 같이 새것만 가득한 것을 보며 ‘아… 이 영화는 음식으로 말하는 판타지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하다고 느낀 것은 거창한 식단이 아닌 재료 한 두 가지를 가지고 그 재료가 뿜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화면 가득하게 표현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이 어색하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영화라는 유쾌한 판타지 속에서 현실 세계의 꼬투리를 잡고 있는 내 모습에 얼마나 이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것을 표현했는지가 놀라울 정도였다. 사실 필자도 해본 적이 없는 떡시루에 떡을 찌거나, 막걸리를 담그는 모습, 토치가 없으면 집에서는 꿈도 못 꾸는 크렘 브륄레까지… 눈이 계속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맞다. 배우 문소리가 있었다
슬로 푸드와 아날로그 감성이 만연한 화면 속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장면은 배우 문소리의 역할이다. 주연이라고 하기에는 비중이 적지만 그녀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녀가 요리를 만드는 장면은 ‘촌동네 시골에서 다양한 재료로 저런 요리가 가능하지?’란 의문을 갖기 전에 영화 속 대사처럼 그녀가 정말 마법사로 등장하는 것 같았다. 반다나에 웨이브 진 긴 머리에 이것저것을 요리하거나 바느질하는 모습은 흡사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나 디즈니 영화 <신데렐라>에서 호박을 마차로 바꾸는 요정 할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말하고, 자연스러운 손놀림까지… 절정에 달한 장면은 딸인 혜원과 나무 아래에서 노지 완숙토마토를 먹는 장면이었다. 엄마의 연애 여부를 묻는 고등학생 딸에게 천연덕스럽게 토마토를 먹으며, 대화하는 장면. 그저 중년의 아줌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섹시미가 아닌 자연스러운 원숙미에 보는 중간에 살짝 소름이 돋을 뻔했다. 그러곤 생각했다. ‘맞다… 문소리가 이런 배우였지’ 존재의 무게감을 여실히 보여준 배우.
이 영화는 이렇듯 각자의 배우가 자기 색깔대로 연기를 한다. 드라마에서만 봤던 류준열은 풋풋함과 설렘을 동시에 지닌 성장해가는 청년의 모습을 상당히 잘 표현했고, 이야기를 더욱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배우 진기주는 앞으로 다른 영화에서도 만나고 싶었다. 심지어는 사람과 배경이 채우지 못한 여백을 여러 동물이 채워준다. 소, 닭, 젊은이들의 다정한 친구 개 오구까지…
화면이 아름답다. 풍광이 멋지다는 표현보다 분명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화면이었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휴식처럼 꿈꾸는 장면이기에 그것을 표현해 준 영화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미니멀한 요리로 탄성을 지르게 만든 영화의 판타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게 만들 수 있었다.
밥 한 끼의 중요성. 육체가 배고프면 영혼까지 목마르고 배고파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음식 장면에서 ‘우와… 맛있겠다…’라는 생각보다 매일 차려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음식을 떠올리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매 끼니를 준비하는 내 손길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오늘 저녁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추전이 아닌 애호박전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다.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윤지영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리틀 포레스트>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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