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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두려움. 증오의 또 다른 이름

삶과 죽음의 간극… 그리고 마음속 증오를 도려내는 여정


#03. 몬태나(Montana)

두려움. 증오의 또 다른 이름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몬태나>의 원제는 hostiles이다. 영화를 보낸 내내 적대감, 반감이라는 의미가 떠나지를 않는다. 영화를 홍보할 때 <레버넌트>의 제작진이 대거 참여했다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레버넌트>에서 느꼈던 삭막함과 황량함이 <몬태나>에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차이점이 있다면 <레버넌트>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과 공포감을 표현했다면, <몬태나>에서는 제일 두려운 존재가 인간 그 자체다.


영화 원제 메인 포스터 (사진 출처 : 구글 영화 이미지)


 

언제나 그랬듯이 영화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극장에 들어갔다. 내가 돈 주고 보는 영화라면 대강의 시놉시스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편이지만,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일부러 내용을 서칭 하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간다. 티켓을 발권받을 때 영화의 간단한 시놉시스 프린트를 함께 받았지만, 등장인물만 확인했을 뿐 무슨 내용인지 전혀 살펴보지 않고 관람을 시작했다. 영화는 도입부터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입 부분에서 이미 나는 여주인공(로자먼드 파이크, 로잘리 퀘이드 役)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짧지만 강렬하고 참혹한 학살 장면, 그녀가 느낄법한 증오심은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유발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장면에서 영화의 또 다른 축인 남자 주인공(크리스찬 베일, 조셉 블로커 대위 役)의 내면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증오심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도 좋았지만,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가 정말 끝내준다.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배우. (사진 출처 : imdb.com)



영화의 배경은 1892년대이다. 흑백, 유색인종의 차별에 맞서던 남북전쟁은 끝났고, 미 대륙에서 원주민(인디언)과 개척자(백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서 서로 잡고 잡히고 살육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영토(territory)를 뺏고 지키기 위해 시작된 싸움이었다. 백인은 개척자라는 이름 아래 미 대륙 원주민들의 땅을 뺏고, 원주민 인디언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여러 종족이 각자 차지한 영토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마치 동물들의 생태계 본능처럼 포식자는 약자를 언제든 공격한다.  

영화 초반에 한 가족이 처참하게 몰살되는 장면은 인간 간의 영토 전쟁이라기보다 사냥에 가깝다. 살육자에게 자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온한 일상 중 순식간에 온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엄마의 증오심은 영화 <킬빌>의 우마 서먼이나 완벽한 여성 킬러의 원조격인 <니키타>의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속 시원한 복수를 했다면 액션 장르의 영화로 탈바꿈되었을지 모른다.) <몬태나>의 퀘이드 부인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으로 소리를 질러도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비명으로 그녀의 증오를 대신해준다.

평생 적대 관계였던 블로커 대위(크리스찬 베일)와 아파치 인디언 추장인 옐로우 호크(웨스 스투디)는 군 상부의 명령에 의해 옐로우 호크의 지병으로 인디언의 고향인 몬태나로 사면을 하게 되고, 그 이송을 블로커 대위가 맡게 된다. 블로커 대위는 이 임무를 마지막으로 정당한 살인을 저질렀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몬태나까지 가는 길은 무려 1000마일의 여정이다. 영화에서 관객은 묵묵히 그 여정을 지켜보게 된다. 과거에 두 사람은 서로의 적이자, 불신만 남아 있고, 둘 다 상대의 부대와 종족을 엄청나게 살해한 사람들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아니라면 살인마에 가까운 이들의 20년 후의 모습은 살의로 가득 차 있기보다 육신의 껍데기만 입고, 공허함으로 채워진 영혼만이 남아 있다. 특히 블로커 대위의 증오는 부지불식간에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같지만, 본인 스스로 도화선에 불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터럭만큼 남은 영혼마저 소멸될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옐로우 호크 추장 역시 미국 부대 입장에서는 잔인한 아파치 인디언 추장에 불과하다. 역으로 추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종족과 가족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사람이다.


이들의 마음의 증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삶과 죽음의 사이…
그리고 마음속 증오를 도려내는 여정

영화의 대부분은 황량한 대지를 말을 타고 가는 여정으로 채워졌다. 말을 타고 가다가 밤이 되면 텐트를 치고, 날이 밝으면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떠난다. 영화 속에 농담이나 위트 섞인 대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에서 순식간에 죽음이라는 경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한 번에 갈라놓는다. 걷다가 잔인한 코만치족의 공격을 받아서 죽고, 소소한 난투극으로 ‘영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을 거야’라는 관객의 일말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말 총알 한방에 그냥 죽어 나간다. 죽음이 삶의 일부분인 것처럼 사방에 널려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제각각의 죽음을 목도하며 마음속에 있는 증오가 조금씩 누그러든다. 감히 죽음을 통한 치유라는 표현을 쓰기는 억지스럽다. 오히려 영화 중 블로커 대위의 대사처럼 여러 형태의 죽음과 산자의 마음속 증오의 일부분이 함께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들의 여정 속에서 예기치 못한 위험에 처함으로써 죽음의 경계선을 바로 넘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두렵게 하는(terrify) 것이었을 것이다. 마음속 증오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이 쉽지 않다. 어떤 대상을 증오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덤으로 얻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내 영혼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이 감정을 정리하지 않으면 마치 세포가 자라듯이 내 영혼을 잠식시킨다. 그래서 증오심은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도려내야 한다. 어쩌면 내 영혼의 일부가 증오와 함께 죽어야 내 온전한 영혼은 살아나고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


 


 

대지의 위대함… 그 위를 걷는 사람들

기나긴 여정 속에 걷는다. 그들의 여정은 마치 우리의 인생을 비유한 것 같다. 무료하고 변화 없고, 걷다가 지치면 쉬고, 힘든 이가 있으면 기다려주고, 사고를 당하고, 예상치 않은 사건이 터진다. 그렇게 땅을 딛고 한걸음 내딛는 것이 꼭 우리가 매일 뚜벅뚜벅 걸어가며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 인간이라면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살아간다. 우주를 유영하듯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닐 수는 없다. 대지 위에서 인간은 치유를 받는다. 그 가운데 인연을 만나고, 갈등하고, 상처받고, 또한 치유한다. 그들의 여정이 목숨을 걸고 긴 행군을 마쳤다기보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먼저 보낼 사람들을 떠나보냈다는 것을 보여줘서 그런지 남은 자들의 미래나 결말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덜어낸 증오의 무게만큼 가볍게 남은 마음으로 영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땅을 딛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은 우리의 인생과 매우 비슷하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볼 때 보다 보고 나서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다. 혼자서 몰입하면서 보기에 아주 제격인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감정의 대한 확실한 정답보다 에둘러 천천히 비유하는 세련된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묵직한 영화 <몬태나>를 추천하고 싶다.


윤작가의 사담 : 영화 전반부에 블로커 대위가 아파치 호송 명령을 받고 방에서 혼자 생각하는 씬인데 정면 얼굴 위주의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이 나온다. 얼굴의 절반은 검게 그림자가 생기고 나머지 절반의 실루엣으로만 이루어진다. 대사가 없이 몇 초간 흘러가는 장면인데, 인상 깊고, 표정만으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가 가장 돋보였던 명장면이다. 아쉽게도 영화 홈페이지 사진에는 스틸 샷이 없다. 만약 영화를 본다면 위의 사진 옷을 입고 홀로 있는 장면이니 꼭 놓치지 말길 바란다.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윤지영

*사진 출처 : 영화 <몬태나> 다음 웹사이트, imdb.com, <Hostiles> 공식 웹사이트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올린 글입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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