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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著 <도시의 흉년>

스포 없음. 줄거리 없음. 개인적 흥에 겨운 감상문의 소지가 다분함.


학창 시절, 초중고를 거쳐서 대학 인문교양과목에 이르러서도 꼭 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독후감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초중고 시절의 독후감은 숙제라는 부담감에 귀찮기만 했었다. 신기하게도 스무 살이 넘고 대학생이 된 이후 과제로 제출했던 독후감이나 영화감상문에는 슬슬 재미를 붙였던 것 같다. 필자의 초중고 시절은 치열하고 살벌할 만큼 학력 위주였다. 오죽하면 당시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영화가 꽤나 히트를 쳤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의 학생들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치열함으로 학업에 열중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어쨌든 영화 감상문에 이어서 독서 감상문이라… 필자가 읽는 모든 책에 대해서 쓸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 분의 소설이라면 가장 최근에 읽은 이 작품에 대한 짧고 굵은 감상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자신도 초보 작가이지만 개인적으로 엄청난 팬임을 자처하고 싶기에.


 

박완서 작가… 나에게는 박완서 선생님

 

박완서 작가.  어릴 적에는 이 분의 진가를 몰랐다. 이름과 작품명 정도만 알고 있지, 국내소설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필자는 그 유명한 소설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현재의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박완서 작가’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이분이 작고한 이후에 이분의 작품에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 그 점이 가장 아쉽다. 살아계셨다면 손편지라도 쓰던가 작가와의 만남 같은데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서 소심하게나마 팬심을 마구 드러냈을 것 같다.  

부족하지만 출간을 하고 나서는 필자가 쓰는 글에 대해, 문장에 대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 속 다짐은 편하게 읽히면서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남는 문장을 써 내려가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필자는 에세이 작가지만, 글 쓰는 사람들 중에서 소설 장르를 가장 매력적이라 생각하고, 소설 쓰는 사람들이 제일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소설 중에도 스스륵 읽히지만 행간에서 맛깔스러움을 표현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솔직히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스토리 자체로는 재미있지만, 문장을 읽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은 경험은 드물었던 것 같다. 요즘 인기 있는 소설은 읽다 보면 참고문헌, 각주도 꼼꼼히 달려 있어서 내가 소설을 읽는 건지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읽는 것인지 혼동될 때도 많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행간을 읽는 재미가 있다. 마치 일일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여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그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은 미소를 넘어서서 실제로 “캬아~”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할 때가 많다. 내용도 궁금한데 유치하지 않고, 현학적이지도 않은 언어의 유희에 빠져서 나도 모르게 태킹을 하고, 연필로 밑줄 그어가면서 소설책을 읽는다.  행간에서 때로는 진상 같으면서도 그러다 갑자기 가슴이 아릴정도의 멋진 표현이 툭툭 튀어나와 국어의 훌륭한 묘미를 두뇌에서 가슴까지 정체 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한방에 맛보게 해준다.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 분의 글을 읽고 매번 감탄만 해서 나는 박완서 작가라 부르지 않고, 나의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박완서 선생님… 작가로서의 윤여사의 롤모델이자 나의 글 선생님 되시겠다.


 


 

박완서 著 <도시의 흉년>

- 스포 없음. 줄거리 없음. 불친절한 감상문의 소지가 다분함.


 

 

낯 뜨거운 천박함이 배어있다. 문장 자체에서의 천박함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찬란해 마지않은 이 화려한 문화가 이전 시대의 급변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어물쩍 넘어가며 만들어진 기반이었다는 것을 읽는 내내 독자 스스로 깨우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책 속의 다양한 등장인물은 내 부모, 내 이웃, 내 친구, 내가 속했던 유년 시절, 내가 속한 사회, 그리고 내 모습이 보여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분명 나와 다른 상황의 처해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만드는 능력. 이건 순전히 작가가 대단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일한 존재라고 착각을 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사회 현상학적으로는 남녀평등을 부르짖고, 평등한 인권 가운데서 민주적 사회가 형성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진짜 권력의 중심은 어쩔 수 없이 물질적 자본인 돈이다. 소설 내내 돈에 의해 계급이 판가름되고, 천하고 무섭게 돈을 긁어 모아 부자가 된 주인공 엄마와 그 가정사,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개인의 출생부터 25년여의 인생과 그 이전 세대의 이야기까지 아우르면서 가족 내력으로 내려오는 저주 같은 이야기인 ‘남녀 쌍둥이가 상피 붙는다’가 주요한 줄기처럼 맥락을 이어간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1960년대 70년대에 흔하게 있을 법한 이야기다. 지금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정말 진상 막장인 장면도 기가 막히게 묘사한다.  



김치 싸대기를 능가하는 초막장의 슬픈 상황과 현실

필자가 봤던 드라마는 아니지만, 일일드라마 중 가장 막장인 장면의 대표주자는 ‘김치 싸대기’가 아니었나 싶다. 배우 이효춘이 국물이 줄줄 흐르는 자알 익은 빨간 포기김치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상대 남자(사위인지 아들인지는 모르겠다)의 뺨에서 상체를 아우르는 엄청난 김치 싸대기 스윙 한방!  극 중 그 남자가 뭔 죄를 졌길래, 아니 저 남자 배우가 뭔 죄라서 저렇게 김치를 뒤집어쓰나 싶었다. 그 짧은 순간의 비디오 클립을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흡~’하고 놀랐지만 동시에 크크크 하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휴… 싶으면서도 약간의 통쾌함을 느꼈다. 아마 드라마 작가도 그런 것을 노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도시의 흉년>에서는 이 정도 초막장급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대놓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진상 같은 장면이 나오면서도, 그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이 일품이다. 필자가 서두에 낯 뜨거운 천박함이라고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고, 갑자기 주인공의 마음에 동화되었다가 그 천박한 마음가짐 들키는 것이 싫어서 상대 등장인물로 마음이 옮겨간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읽어보면 주인공도 나와 같은 마음이다. 스스로 민망한 천박함이 싫어서 체면을 차리지만, 사실은 고상함과 우아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미숙한 존재다.

천하게 번 돈이라서 부끄럽지만 그것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외면하기는 싫다. 이건 비단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에 휘둘리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나름 소신을 갖고 자신의 사상을 펼치는 사람은 결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관점을 가지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는 있지만, 적어도 돈을 쥐고 있는 그들의 주류사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회와 인간 군상의 민낯은 참으로 낯 뜨겁다. 어떤 결말이 정답인지도 알 수 없다. 주인공의 결말이 잘된 것 같기도 하고, 오해에 대한 해명조차 개운치 않은 복잡다단한 상황.



하지만 분량도 제법 되는 이 책을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렇다.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그러니 감상문에서 미리 간보기보다 직접 읽어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가치있는 책만 소장한다. 도서관에 이 책이 없어서 희망도서로 신청한 바람에 새책을 읽었다. 다 읽고 결국 소장본으로 구입했다. 색색의 태깅과 연필 밑줄이 넘쳐날 것으로 예상된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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