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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_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홀로 있고 싶지만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10_서치(Searching)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야 진짜 재밌는 영화. 그리고 꼭 봐야 할 영화.



01. 누군가가 그랬다.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전체 공개에서 친구 공개로 전환한 이유가 다른 사람이 나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다고… 그렇지만 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진짜 두렵다면 아예 어떤 SNS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전체 공개와 친구 공개, 물론 차이는 있지만 친구 공개로 전환한 순간 내 사생활이 ‘어느 정도’ 감춰질 것이다? 절대 아니다. SNS는 하지 않지만, 주변 지인들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을 사용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마찬가지. 누군가는 당신에 대해서 알 수밖에 없다.


02. 젊은 시절에는 믿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거 비밀이니까 아무한테 얘기하면 안 돼.” 그러면 나도 “응,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게.” 나는 스스로 내가 입이 무겁다고 믿었고, 나에게 말하는 친구도 나 이외에는 그 비밀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게 참으로 의미 없고 어리석은 화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젠 더 이상 “비밀이야. 너한테만 말할게”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한다면 “입 밖으로 나간 순간 비밀은 없는 거야. 나도 나를 못 믿고, 너도 이미 네 입으로 말한 순간 비밀은 없어.” 실제로 비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여기저기 다 말하고 다닌다. 참 인정머리 없다고? 하지만 이게 현실 세계다.


03. 위와 두 가지 상황, 실제와 허구, 비밀의 묘한 상관관계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알려짐을 두려워하면서도 요즘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들여다보고 SNS를 한다. 대부분 SNS 속 세상이 그 사람의 실제 생활의 일부라고 믿고 살고 있다. 과연 SNS 속 세상은 한 인간의 진짜 생활의 몇 퍼센트나 대변할 수 있을까?




20여 년 전, 세기말 분위기가 팽배할 때 등장한 영화 중 화제가 된 작품 두 개가 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1998)와 매트릭스(The Matrix,1999)다.
두 영화의 장르도 다르고 내용도 상이하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는 온갖 음모에 휘말린 주인공(윌 스미스)이 도망치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유령처럼 존재를 숨기기가 쉽지 않다. 20년 전 영화인데도 카드 결제나 현금인출기의 CCTV, 심지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는 순간 숨으려고 작정한 사람을 찾는 것은 그냥 식은 죽 먹기다.
 <매트릭스>에서는 현실세계와 AI가 지배하는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진짜 세계의 영웅을 찾고, 과연 진짜 세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뇌하는 철학을 담은 영화였다.
이런 가상현실에 관한 영화는 꾸준히 나온다. 가장 최근에 가상현실 세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이었던 것 같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지금 노출되어 있는 많은 SNS도 일종의 가상현실 세계가 아닐까? 



영화 서치(Searching)는 가상현실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단란했던 한 가정, 아이가 사춘기를 겪을 시기에 엄마가 암투병을 하다가 죽는다. 아빠와 남겨진 딸, 겉으로 그들은 잘 살아내려고 애쓰지만 마음속 깊은 상실감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어느 날 딸이 친구 집에서 학교 팀 프로젝트를 해서 밤을 새울 것 같다고 하며 늦게 귀가한다는 통화를 하고, 아빠가 잠든 밤 중 부재중 세 통의 전화를 남긴 채 실종된다.

실종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우친 아빠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이때부터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한 아빠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그리고 몰랐던 딸에 대한 진실들을 마주 대하게 된다. 스토리는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다. 



이 영화야말로 어떤 사전 정보도 모르고 봐야 재미를 백 배 더할 수 있다.
그리고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굉장한 수작이다. 


연기를 하는 배우, 특히 존 조(John Cho)는 딸의 실종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초췌해지는 아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고, 엄마 역의 사라 손(Sarah Sohn)은 짧은 분량이지만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엄마의 모습을 잘 표현했고, 딸 마고 역의 미쉘 라(Michelle La)도 어린 나이지만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 연기가 돋보인다. 피터 삼촌 역의 조셉 리(Joseph Lee)도 역할에 걸맞게 영화 안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계 미국인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묘사했다. 전부 영어를 쓰지만 곳곳에 한국의 정서가 슬쩍슬쩍 드러나서 반가운 마음도 있고 공감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연출이다. 연기도 뛰어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감독 누구야?”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컴퓨터 화면에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100분 내내 관객인 우리는 Google, facebook, FaceTime, iMessage, skype, Tumblr, Twitter, YouCast, instagram, YouTube, Gmail, Yahoo 등 전 세계가 아는 대부분의 SNS 화면을 종횡무진하며 함께 들여다본다. 2차원의 평면에서 사진과 영상과 문자로 이루어진 화면을 보면서 우리는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때로는 움직이는 커서와 타이핑하는 글자 안에서 그 사람의 감정까지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연출과 편집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악보의 악상기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연주가 펼쳐지듯이 커서를 움직이는 마우스의 손놀림의 속도와 절묘한 타이밍을 맞춘 편집에 관객은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된다.

28살의 인도계 미국인, 아니쉬 차간티(Aneesh Chaganty) 감독은 장편 영화 데뷔작을 이렇게 훌륭히 소화해냈다. 개인적으로 나이트 M. 샤말란 감독 이후로 장편 데뷔작의 설렘을 준 감독이 아닐까 싶다. 연출, 편집이 심플한데도 상당한 영민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컴퓨터 화면만 들입다 쳐다보는 100분이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없다. 게다가 식스센스급 반전도 긴박하게 펼쳐진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출처 :Daum


먼 미래의 가상현실이 아닌 우리가 현재 흔하게 접하는 모든 SNS에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 풍자가 은연중에 비친다.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 세계이고 어디까지가 가상 세계일까? 아바타를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계정을 가지고 인터넷 세계에 접속하는 순간 가상 세계가 펼쳐진다고 봐야 한다. 전부 다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 다 진실도 아니다. 일기를 쓰듯이 여러 기록을 남기지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기록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내 마음을 알아줘~라는 심정으로 진실의 잉크를 가상 세계의 물속에 살짝 떨어뜨리는 것이라 보면 된다. 마치 ‘이건 비밀이니 너한테만 이야기할게’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듯이… 하지만 비밀이라고 하면서 내밀한 이야기를 흘리고 싶은 이중적인 심리랄까? 그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증거이고, 사람 간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세계에서 눈 앞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못해도, 온라인 가상 세계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詩 <섬>



사람의 홍수 속에서 홀로 고독하게 유유자적할 섬을 찾지만, 사람들 사이의 섬이다. 내 영역으로 누가 훅 들어오는 건 싫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픈 현대인의 마음을 잘 묘사한 시다. 영화 속 마고가 유캐스트를 로그인 하지만 내가 누구라고 떠들기보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하며 한 두 마디 대답만 하던 심정과 비슷한 거다.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고요한 외로움과 공존하는 그리움.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감히 천재라 말하고 싶은 아니쉬 차간티 감독과 주연 배우 존 조 / 출처 : Daum영화


영화 공식 이미지와 포스터



*글 : 취미발레 윤여사 / 윤지영 작가

*사진 출처 : Daum영화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올린 글입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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