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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_상상초월, 애니메이션의 인터스텔라

과학의 베일 속에 감춰진 애정의 형태



#13_펭귄 하이웨이(Penguin Highway)

과학의 베일 속에 감춰진 애정의 형태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중년 나이로 살아가는 지금 나는 상당히 젊은 무용수들과 일을 한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와 일을 할 때도 있지만, 멋진 발레리노와 일을 할 때가 많다.
2년 전이었을 거다. 훈남 발레리노들에게 둘러싸여 일하고 있는 나에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분이 물었다.
“그렇게 멋있는 청년들과 일하면 설레지 않으세요?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난 약 5초 동안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구식 형광등 불빛 들어오듯이 ‘아… 이 사람이 내가 젊은 남성과 흔히 말하는 썸을 탈까 봐 노리고 하는 질문이구나…’
그러고 난 피식 웃으며 그 질문에 대답도 잘 안 한 것 같다. 질문이 하도 같잖아서…
가만히 생각해봤다. 분명 나는 나와 함께 작업하는 모든 무용수를 존중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일률적인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아~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그 감정 말이죠?’
애정의 형태가 여러 가지라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좀 불행한 거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땐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미묘하게 좋아하는 감정에서 시작해서 서로를 믿으며 일을 하는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고, 존경의 마음으로 좋아할 수도 있다. 열정의 불꽃이 튀어서 연애감정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뭉게구름처럼 피어 나와 그 사람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너무 좋아서 상대의 감정은 묻지도 않고 마냥 혼자 좋아하며 행복해 할 수도 있다


펭귄 하이웨이 도입부에서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겁나 똑똑한 남학생, 아오야마가 등장한다. 자존감, 자신감 동시에 만빵 탑재되어 있는 소년이다. 그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이과형_理科形 두뇌로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치과 누나(20대 여성)와 논리적으로 대화하고,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보고 몽정기 사춘기 소년 같은 접근이 아니라 과학자 같은 호기심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진지하게 연구한다. 커다란 가슴을 하루에 30분 정도 생각한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상대에 대한 연구자 같은 자세로도 가능하게 만드는 소년이다.

그렇게 평화롭고 일상이 넘쳐나는 마을에 펭귄이 등장한다. 남극에서나 서식하는 아델라 펭귄이 여기저기서 떼 지어 출몰하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펭귄의 출현에 관한 연구를 하기로 한 아오야마는 프로젝트에 <펭귄 하이웨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친구 우치다와 연구를 하던 중 같은 반 동급생 하마모토의 비밀의 숲에 있는 공중에 떠있는 바다(海, うみ)의 존재를 알게 된다. 셋은 숲에 있는 초현실적인 바다의 존재와 (비현실적이지만) 펭귄을 만들어내는 누나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


초등학생 4학년 삼총사가 지구의 끝에 있는 구멍을 연구한다. (출처: Daum 영화)



영화는 내내 우리의 허점을 공략한다. 

귀엽고 발랄한 아델라 펭귄이 등장하고,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마을이 등장하니 우리의 동심_童心을 소환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는 점점 4차원을 넘어서 철학을 논하고, 노벨 물리학상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과연 이것이 애니메이션인가? 싶을 정도로…

감독은 관객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전개한다. 원작 소설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영화가 마치 럭비공 튀듯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 오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동심으로의 회귀성 영화가 아닌 관객에게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는 재패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인지 선택하게 했다. 항상 그랬듯이 난 시사회를 볼 땐 사전 지식을 전혀 가지지 않고 영화를 대한다. 원작 소설이 있더라도 미리 보지 않고 영화로 먼저 만나려고 한다. 그래야 최소한 위에서 언급한 유치한 선입견 색안경을 끼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이 영화는 보면서 중반까지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중반부터 마음을 놔버렸다. 그래…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 당신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겠다. 마음을 내려놓고 영화가 말하는 럭비공 튀는 이야기를 수용하니 영화가 쉬워졌다. 그리고 마치 꿈속의 편린을 붙잡듯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이야기가 그대로 받아들이니 영화의 숨겨진 재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짜릿했던 장면 (출처: Daum 영화)



결국 영화는 애정의 형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리학, 차원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을 해도 결국 소년이 누나를 보내며 멋진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 다짐을 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애정의 다양한 형태에 관해 논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연상의 이성을 바라보며 막연히 좋아하고 짜릿한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아닌 논리적 사고로도 상대를 많이 좋아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영화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숲 속에 펼쳐져 있는 커다란 구 형태의 바다가 사실은 세상의 끝인 구멍(あな)이라는 역설을 보여주고, 아오야마의 아버지가 출장을 가기 전 작은 주머니를 뒤집으면서 공간의 초월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서 과학적 깨달음인 유레카에 대한 설명까지 이어진다.

동네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들,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여러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질 때 아르키메데스가 그랬듯이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과학에만 근거한 것일까? 실제로 우리는 인생에서 전혀 관련 없을 법한 여러 조각들이 드라마틱하게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멋진 그림이 나올 수도 있지만, 예측하지 못한 당혹스러운 결말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영화에서도 아오야마는 길 한가운데서 유레카를 나지막이 읊조리지만, 숲 속 바다가 쏟아붓는 문제점을 해결할 열쇠는 자신이 좋아하는 누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문제는 해결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부딪히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지만 주인공 아오야마는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다. 비록 눈 앞에서 누나가 신기루처럼 사라지지만, 길지 않을 먼 훗날,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멋진 성인으로 변화되었을 때 누나를 당당히 만날 상상을 하며 일상을 지내게 된다. (영화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이다)

어쩌면 치과 누나의 모습은 소년 아오야마가 생각하는 여성 이상형이라기보다 아오야마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형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에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화해서 연구하고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을 보였으리라. 그래서 누나의 존재가 사라져도 슬퍼하기보다는 미래에 언젠가 만날 더 나은 자기 자신을 기대하는 것에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누군가를 막연히 좋아하고, 그 사람의 의식이나 존재나 다양한 형태의 작업의 결과물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이자 위안이다. 어떤 대상을 애정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아오야마의 진지한 눈빛. 우리에게도 질문하는 것 같다. (출처: Daum 영화)


하나와 앨리스의 <아오이 유우>가 여기에도 있었다.

또 하나의 재패니메이션 위력을 느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원작이 슬쩍 궁금해져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핫하고 섹시한 캐릭터이지만 주변 인물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닌 세상을 향한 당당함이 있어서 더욱 멋진 인물이었던 치과 누나. 영화 속에서 중성적이면서도 독특한 보이스 톤을 지녀서 누굴까 했는데 정말 반전의 반전. 아오이 유우(蒼井優)의 목소리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것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펭귄 하이웨이 일본 공식 포스터 (출처: Daum 영화)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윤지영

*사진 출처 : Daum영화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올린 글입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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