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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여름, 집에 침입한 낯선 손님

폭력이 주는 내밀한 고통


내 작은 글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길 바란다.


지금으로부터 약 38년 전쯤의 일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여름의 절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은평구 갈현동에 정원과 담이 있는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1층 마루에서 정원을 바라보면 뜨거운 태양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리는 게 보일 정도의 날씨였다.

한가로운 대낮에 갑자기 담장 밖 골목에서 뭔가 시끄러운 군중의 소리가 났고, 잠시 뒤 엄마의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머!! 누구세요!!”

당시 대낮에도 빈집에 들어와서 가전제품을 훔치는 좀도둑이 있던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엄마의 비명에 놀랐다.

그런데 곧 엄마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어떻게 해. 놀랐잖아요. 그럼 여기 잠시 들어와 앉아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엄마의 눈짓에 나와 언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호기심에 거실을 슬쩍 봤다.

짧은 스포츠머리로 자른 교복 입은 낯선 남자 고등학생이 우리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는 상당히 겁에 질려 있었다. 엄마는 그 학생에게 얼음을 넣은 미숫가루 한잔을 줬던 것 같다.


엄마의 물음에 학생은 조용조용 대답한다.

“패싸움이 났는데 잡히면 맞을 것 같아서 도망치다 이 집으로 들어왔어요. 저는 D고등학교 1학년 아무개입니다.”

당시 학교 폭력이다 싶으면 그냥 패싸움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간 싸움도 잦았고, 그래서 어린 기억에도 그 동네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쳐다만 봐도 좀 무서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이 담을 넘고 들어온 건지 빼꼼히 덜 닫힌 철대문을 밀고 들어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땀에 절어있었고 불안해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피신시켜주고 안심시켜준 우리 엄마에게 고마워했다.

발 옆에 아무렇게나 둔 학생 가방은 엉망이었고,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 날 한 여름 고등학생 패싸움에서 도망치다 우리 집에 숨어든  어린 침입자가 미숫가루를 다 마셨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집에 약 20분 정도 머물다가 밖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엄마가 바깥 동향을 살피고 살짝 그 학생을 내보내며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학생, 앞으로 어떤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그래도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곧장 집으로 가세요.”




2019년

“화난 마음은… 좀 가라앉았니? 괜찮겠어?”

“화나지 않았어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에요. 그래요. 정말 슬펐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잡고 있던 자동차 핸들에 힘이 가해진다. 바로 목구멍에서부터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데 심호흡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어쩌면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집에 뛰쳐 들어온 그 고등학교 남학생의 눈망울도

분노나 두려움보다는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폭력에 반응하는 감정은 분노나 두려움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슬픔에는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폭력은 상대를 슬프게 한다. 아프도록 슬프게 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폭력은 여지없이 근절돼야 한다.



*글 : 윤지영 작가





지인이 정신의학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선 학교에 도움이 되는 공익의 글이니 읽고, 부디 많이 공유하고 알려주세요. 학교폭력에 이후 올바르게 대처하는 가이드 라인이 될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학교폭력위원회에 보내는 편지. 정신의학신문. 2019. 이 글은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마음건강을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과 선생님, 학생과 부모님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학교폭력 문제로 진료실을 찾는 학생과 부모, 교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학교폭력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마음건강을 중심으로 편지 형식의 글을 적어서 언론 매체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마음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인쇄하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제출 자료에 첨부하셔도 좋습니다.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5994&fbclid=IwAR1ih3rqNUMt3XvijMVHnHbZG3vBQGdod2IGa0wS8NZJOiPrTGi4hJWAh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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