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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Bolero

세 가지 모습의 열정_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프로젝트



필자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수준을 지닌 관객이다. 취미로 발레를 하고 발레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무용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역부족이다. 발레, 무용, 클래식 공연을 좋아해도 현실세계 너머의 초현실적인 예술을 이해하기에는 내 예술적 수치는 참 얕은 숫자를 가리킨다.




현대무용은 사실 어렵다.



발레 공연을 선호해도 가끔씩 눈에 확 들어오는 현대무용 프로젝트가 있다. 때로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발레와 현대무용, 그 중간 정도의 모던댄스가 함께 무대에 올라오는 현대무용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본 현대무용 중에서는 화이트 노이즈 같은 배경 음악에 무대 한가운데 바닥에 엎드려있던 무용수가 고개를 쳐드는데만 약 5분 정도가 소요된 적도 있고, 마주 보던 두 무용수가 눈도 안 깜박이고 눈물을 흘려가며 눈싸움을 하기도 했고, 마주 보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서로의 뺨을 수십대 후려갈긴 것을 지켜본 적도 있다. (아... 솔직히 지켜보면서 너무 괴로웠다. 아플까 봐 괴로웠고, 이 상황을 이해 못하고 앉아있는 나 자신이 괴로웠다. ㅠㅠ) 이런 공연을 보고 나면 그 작품 속에 보여준 몸의 움직임보다는 강렬했던 행위의 기억만 남아서 아쉽기도 했다.



사실 무대에서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서 안무가의 의도를 알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클래식 발레의 경우 이미 스토리도 알려져 있고, 여러 번 보다 보면 어떤 동작의 춤이 펼쳐질지도 이미 알고 있다. 그에 비해서 현대무용은 대부분 창작 작품으로 오롯이 그 춤으로 안무가의 생각을 읽어낸다.

대한민국의 필자 나이 또래라면 아마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작곡의 볼레로를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_Les uns et les Autres 1981> 라고 기억할 것이다. 필자도 초등학교 때 TV에서 더빙으로 된 영화를 봤다. 영화 스토리는 잘 기억 안 나고, 뭔가 전쟁 이야기가 있었다는 정도였고, 오로지 나의 장기기억장치에 남아있는 이미지라고는 마지막에 붉은 원형 테이블 위에서 볼레로 음악에 맞춰서 한 발레리노가 춤을 추고, 여러 무용수가 함께 군무를 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음악 볼레로'였다. 그 영화가 상영되고, 그 영화의 마지막 춤 장면은 무수히 패러디됐고, 라벨의 볼레로는 대한민국 전역을 휩쓸 정도였다.



30여 년이 지난 2017년, 예술의 전당에 쓰리 볼레로 홍보 현수막이 걸리고, 어느 날 SNS에 3인의 안무가에 의해 재탄생된다는 볼레로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아마도 나로 하여금 꼭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한 요인은 바로 익숙한 볼레로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냥 궁금했다. 현대무용가와 발레 안무가가 각각 해석한 볼레로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2017년 6월 4일, 초등학교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봤던 시기와 비슷한 연령의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을 데리고 차 안에서 우리는 라벨의 볼레로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공연장으로 향했다.


티켓과 프로그램북, 기대를 안고 공연장에 가다



현대무용가 김보람의 볼레로_철저하게 처절하게


역시나 도입은 현대무용다운 무언의 마임. 심지어는 음악도 없이 관절을 꺾는듯한 움직임과 신음에 가까운 숨가쁜 호흡으로 시작한다. (살짝 불안했다. 또 어려우면 어쩌지... ㅡㅡ) 도입 부분에서는 약간의 코믹스러운 움직임과 요소에 관객들이 작게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움직임에 맞춰서 악기의 소리가 하나씩 튀어나오고, 어느 순간 악기 소리 없이 움직임으로만 진행되다가 갑자기 정신 차려보면 분명 볼레로에 맞춰서 이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근래 내가 봤던 현대무용 작품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안무가는 타이틀에 걸맞게 볼레로를 분절하고 쪼개고 철저하고 정말 처절할 정도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중간 부분에 계속되는 반복적인 사선 군무 대형 중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 명씩 독무로 흘러가는 부분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좋았다. 안무가는 영리하게 음악을 사용했고, 재미있는 시퀀스로 관객들에게 '우리를 이해해달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무한반복 머리 어깨 무릎 발 동작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안무가가 영리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대중적 코드 난이도를 잘 맞췄기 때문이다. 필자 같은 지극히 평범한 범주의 관객이 이해하기에 난이도가 딱 좋았다.

그리고 사실 볼레로 음악은 요즘 말로 하면 그냥 후크송이다. 한번 들으면 그 멜로디가 그냥 입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집요할 정도로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고, 그중에 악기가 하나씩 추가되면서 음량이 점점 커지는 음악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는 볼레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볼레로의 패턴은 우리의 인생과 상당히 비슷하다. 각자 오늘 한일을 떠올려보라.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을 때까지 한 일상... 모두들 다른 일상을 살지만, 개개인의 일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무수한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고, 조금씩 변하고, 내적 성장을 이뤄간다.

중반 이후부터 쉴 새 없이 춤을 추는 무용수들, 남녀 무용수가 섞여 있는데 같은 동작이지만 모두 자기만의 특색 있는 춤을 춘다. 편곡으로 단 8개의 악기가 볼레로를 연주하지만 옹색한 사운드도 아니고, 8인의 무용수와 어우러져 음악과 몸의 무브먼트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뤘다. 마지막에 폭발하듯 터지는 음악과 모든 무용수가 바닥에 정말 대자로 뻗는데 나도 모르게 물개 박수와 돌고래 함성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렇다. 무브먼트... 관객으로 하여금 음악과 하나 된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해주는 안무가의 역량에 다시 한번 환호를 보낸다.




현대무용가 김설진의 볼레로_볼레로 만들기


첫 번째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김설진의 무대가 시작된 것이다. 더욱 정확히 표현하면 김설진의 볼레로는 단순한 몸의 움직임이 아닌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가 융합된 형식이었다. 중간중간 살짝 난해한 코드는 여전히 존재했다. 평균 수준의 관객으로 한마디 하자면 공연기획을 할 때 프로그램북 등에 작품에 관한 안무가의 의도나 생각을 좀 정리해서 실어줬으면 좋겠다. 사실 무용 분야, 클래식 분야에서 말로 일일이 설명하면 굉장히 유치하다는 선입견을 가지는데 예술분야가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려면 이해하기 쉬운 언어적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김설진의 작품을 보면서 기발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모든 일상 소음이 볼레로 리듬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빨래 널기 전 터는 것이나, 우산을 펴는 일, 심지어는 휴지를 버리는 일 조차... 간간히 터지는 기발함에 박수를 보내다가도 전체 작품의 중간중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좀 답답하다. 조금만 더 친절한 현대무용님이 돼주길 바란다. 관객은 너무 알려고 하지 말고 아는 부분만 알아라 하면 대부분의 관객은 영원히 대부분을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는 것. 물론 감정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모두 언어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창작의 배경이나 관객 입장에서 중점으로 두고 봤으면 하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려줬으면 좋겠다.

작품 중 좋았던 부분은 부리부리 박사 스테이션 같은 오브제의 형태와 그 위치... 객석에서 봤을 때 오른쪽  측면에 놓고, 무대를 대칭으로 사용하지 않고 굉장히 자율적으로 사용했는데 그 점은 참 맘에 들었다. 김설진의 작품은 단순히 현대무용이라기보다는 볼레로 음악이 담긴 무언극에 가까웠다. 역시 음악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모든 무용수가 격정의 춤을 보여준다. <볼레로 만들기> 작품은 삶의 밝은 면보다 고통과 반복되는 일상의 어두움 쪽에 좀 더 중점을 두고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고뇌가 보이는 작품이다.




발레리노, 발레안무가 김용걸의 볼레로


내가 본 영화의 안무를 맡은 사람이 모리스 베자르이다. 김용걸은 모리스 베자르의 작품에 오마주를 담았다고 한다. 첫 등장부터 무대가 열리지 않고, 다리와 손등 신체의 일부 군무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상당히 딱딱할 수 있는 음악인데 이미 관객은 김용걸의 볼레로에 축제 분위기가 된 것 같았다. (손동작 군무에서 객석 여기저기서 그렇게 해맑고 관대한 웃음이 터질 줄은 몰랐다.)

무대가 열리고 내가 탄성을 질렀던 건 무대 뒷부분, 즉 백스테이지까지 활짝 열고 그 자리에 오케스트라가 무려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 내가 평소 발레 공연을 보면서 내심 아쉬운 건 오케스트라 피트가 바닥에 푹 꺼져있다는 것이다. 춤 공연을 위해서는 당연한 거라고는 해도, 한 번쯤은 오케스트라와 발레 무용수가 한 무대 위에 있는 공연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간혹 TV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데 앞에서 춤추는 무용수 말고, 무용수와 오케스트라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동등하게 한 무대에 있는 공연 말이다. 그런데 오늘 바로 그런 꿈의 무대를 봤다.

볼레로 도입부는 소리가 작기 때문에 뒤에 있는 오케스트라가 전구색의 작은 악보등만 켜놓고 있는데 그래도 85명의 단원들의 규모가 워낙 크기에 뭐랄까? 마치 '걱정 말고 춤춰... 우리가 뒤에서 연주해줄게...!!' 이런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오케스트라를 무대 위로 올린 것은 진정한 신의 한 수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오케스트라 단원이 앉아있는 쪽 조명도 밝게 바뀌면서 음악과 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36명의 군무와 1명의 독무. 안무가인 김용걸은 무대 위에서 발레리노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마 이 독무 역할을 너무 젊은 무용수가 했다면 그 느낌이 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사석에서 김용걸 교수를 만났을 때 (필자의 책 집필에도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신 분이다) 그가 안무가 이전에 무용수로서 얼마나 무대 위에서 추는 춤을 갈망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36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볼레로를 추는 그 모습은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36명의 군무는 일사불란하고 중간중간에는 발레 클래스의 센터를 보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모두 검정 슈트를 입고 나오는데 슈트 안감이 살짝살짝 보이는데 빨간색이다. 그렇지... 베자르의 작품에 나오는 붉은 원형 테이블이 이렇게 형상화됐구나 싶었다. 마지막에 원형 대형을 만들고 슈트 쟈켓을 벗어서 내려놓는데 모두 뒤집어서 붉은 원으로 만들고 그 원형의 틀을 다시 던져버린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부분도 좋았고, 독무와 군무, 오케스트라의 음악까지 계속 팽팽한 에너지를 유지해서 진심 감동적이었다.



이번 세 작품의 구성과 순서마저도 좋았다. 초등학생인 우리집 아이들도 웬만한 TV 프로그램보다 훨씬 재밌었다고 하고, 현대무용을 새롭게 보게 돼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음악으로 세 안무가의 생각을 슬쩍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공통점 아래 각자 다른 삶을 살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각자의 몫이 있을 뿐이다.




취미발레 윤여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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