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는 용도로 침대를 사용하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불행히도 제 침대는 아닙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죄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죠. 의자이자, 책상이고, 소파이자 침대인 역할을 말입니다. 침대 생활을 즐기는 제 습관은 아마 변하지 못할 듯합니다.
소심하게 고백하건대,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침대를 사용해 봤습니다.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때 생활하던 기숙사 일인룸에서였죠. 방마다 설치되어 있던 싱글사이즈의 가구, 그것이 제 인생 첫 침대였습니다.
다른 방에 머물던 친구들 중 키가 크거나 몸집이 있던 몇몇은 그 침대를 '퍼킹 스몰 베드'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네, 정말로 그 침대는 퍽이나 아담한 사이즈였습니다. 몸을 大자로 뻗으려 하면 팔이나 다리 한쪽이 침대 밖으로 떨어지기 일쑤였고, 크게 뒤척이기라도 하면 바닥으로 보기 좋게 낙하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제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작은 가구일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만날 수 있었던 '인생 첫 침대'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때까지 제대로 된 나만의 방을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자고로 제게 집이란, 방으로 나눠져있지 않고 어디서든 가족들과 북적북적하게 지내야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껴보겠다고 옥장판에 다닥다닥 붙어 자그마한 온기도 나눠야 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래서 교환학생으로 갔던 기숙사는 꿈만 같은 장소였습니다. 오롯이 혼자 방을 쓰고, 혼자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 나만 꿈을 꿀 수 있는 장소가 있단 것은 제게 벅찬 두근거림을 주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땅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단 것도 묘한 승리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매일 딱딱한 방바닥에서 꿈을 꾸던, 어찌 보면 지지리 가난해서 바닥이라고만 생각하던, 그러한 제 인생이 조금이나마 높은 곳으로 옮겨졌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으니까요.
기숙사에 있던 그 침대를 참 좋아했습니다. 침대 위에서 책을 읽었고, 맥주를 먹으며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고,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고, 이어폰을 꽂고 밤새 노래를 들었습니다. 지난 이십여 년 간의 기간보다 그 공간에서의 일 년이 '나' 스스로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죠.
감정을 숨기고 살았던 한국에서와 달리, 기숙사 방에서의 저는 솔직함 그 자체였습니다. 슬픈 생각이 들면 울었고, 즐거운 생각이 들면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고, 마음이 평온할 때면 창문을 열고 바깥에서 들어온 바람에 얼굴을 대고 깊은숨을 쉬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죠. 평생 해본 적 없던 '나 혼자'가 되는 경험은 참 애틋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벌써 10년도 훌쩍 흘렀습니다. 집에서는 독립을 했고, 이제는 싱글보다는 조금 큰 슈퍼싱글 침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대 생활을 즐기고 있죠. 아직까지 저에게는 솔직함이 가득해지는, 스스로와 멀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 논알콜, 논픽션 ]
알콜러버이지만, 금주선언을 해봤습니다.
술에 취해야만 할 수 있던 이야기를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진상을 부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솔직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