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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음 Jul 19. 2024

안녕, 나의 작은 단짝 고양이

10년째 친해지고 있는 단짝이 있다. 고양이 바바다. 바바는 고양이치고도 워낙 겁이 많고 사람을 싫어하는 편이라, 같이 살고 있는 입장에선 행동을 늘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겉보기에 우리의 관계는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깝다. 물론 사랑을 표현하는 건 내쪽이다. 가끔씩 바바가 근처에 와서 몸이라도 한 번 부비고 가는 날이면 감격스러워 두손이 저절로 입을 가린다. 그런 날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 바바가 나한테 꼬리를 부비고 갔다.", "어제는 근처에 와서 잤다.", "만져달라고 골골송을 부르더라."등 온갖 자랑을 주변 사람에게 한다.

나는 바바의 행동을 이해한다. 어린 시절의 애잔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바는 한강에서 길을 잃고 떠돌던 어린 고양이였다. 그것도 위험천만한 자전거 도로 한가운데서 울고 있던.




바바와의 첫 만남은 노들역 근처 한강 다리 밑 자전거도로에서 이뤄졌다. 1년 만에 자전거를 꺼내 재정비하고, 들뜬 마음으로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날이었다. 이제 막 물에 비친 주황빛 노을을 보며 감상에 젖으려는 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냐아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자전거도론데?'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자 자전거도로 한복판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겁먹은 고양이의 양 쪽으로는 자전거들이 위험천만하게 쌩쌩 지나가고 있었다. 고양이는 몸을 움츠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입을 크게 벌리며 "냐아옹 냐아옹" 울고 있었다. 제발 나를 봐달라고, 내가 여기 있으니 자전거로 나를 치지 말아 달라고 사람들에게 애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오지랖을 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퀴를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울고 있던 바바의 근처로 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바바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한 발짝씩 가까이 다가왔다. 살면서 길고양이가 내게 그토록 가까이 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건대, 그때가 바바 인생에서 최고의 용기를 냈던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낯선 사람을 보면 집안 가장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기고,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지레 겁을 먹고 소변 실수를 해버리는 그런 고양이이니까.






고민도 하지 않고 아기 고양이를 집에 데려 왔다. 집에 와서 살펴본 바바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네 발바닥은 화상으로 피가 철철 나고 있었고, 코와 눈에는 각종 분비물이 가득했다. 잦은 기침을 하고, 몸은 너무 야위어 있었다. 고양이에게 치명적이라는 허피스 증상인 것 같았다. 급한 대로 고양이 커뮤니티 카페에 들어가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방법을 한참 검색했다. 반창고로 화상을 입은 네 발을 돌돌 말아 감싸 주고, 따뜻한 물을 페트병에 넣어 옆에 놔주었다. 그때까지는 바바를 잘 치료해서, 좋은 집에 입양 보낼 생각이었다.

"호랑이 무늬의 고양아! 씩씩하게 잘 버텨. 절대 죽지 마. 널 치료해서 꼭 좋은 집사를 만나게 해 줄게"

나는 바바를 작은 사과 박스에 두고 밤새 보살펴주었다. 이따금씩 집안에 공기가 조용해질 때마다 바바는 "냐아옹 냐아옹" 울었다. 거기 누구 없냐고, 혼자여서 무섭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밤새 울어대는 바바를 토닥이고, 피가 나는 발바닥을 핥는 것을 막다가 나는 그 사과 박스 한쪽에 몸을 대고 새우잠 포즈로 잠이 들었다. 잠깐 잠이 깨서 박스 안을 보니, 새근새근 콧바람 소리를 내며 바바도 잠이 들어있었다.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 간단한 검진을 받았고, 화상과 허피스 약을 타 와서 먹이고 바르며 며칠을 밤새 병간호했다. 고양이는 점점 기운을 차리더니, 집에서 우다다 달리며 놀기 시작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곤해진 나는 TV를 보다가 낮잠에 들었는데, 갑작스런 온기에 놀래 잠에서 깼다. 바바가 누워있던 내 몸에 자신의 몸을 조심스레 기대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바바는 골골송을 부르며 눈을 조심스럽게 감았다. 순간 영원히 그 고양이를 다른 집에 보낼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바는 이미 오롯한 나의 고양이, 나의 가족이었다.

지금껏 10년을 넘게 같이 살며 바바는 한 100번쯤은 내게 용기를 내어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겁많고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나는 바바가 내게 가진 그 애틋한 감정을 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얼마나 큰 용기를 담고 있는 건지를 안다. 그래서 종종 겁을 먹고 하악질을 하거나, 발톱을 내밀어도 웃고 만다.

네가 날 좋아하는 거 알거든?
그러니 계속 용기를 내서 다가와 줘.
그거면 나는 충분해.

나의 작은 단짝 고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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