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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음 Aug 16. 2024

삐져버린 퉁퉁이 고양이와 화해하기

거실에서 낮잠을 자다가 슬며시 눈이 떠졌다. TV 아래쪽에 바바가 앉아있었다. 빤히 이쪽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바바의 엉덩이와 배에 살이 오동통하게 올라온 것이 보였다. 몸매가 삼각김밥 그 자체랄까. 크림빵 터지듯 웃음이 빵 터졌다. 아닌가, 그냥 기분 탓인가. 혹시 몰라 조심스레 바바를 껴안고 몸무게를 쟀다. 역시나였다. 이전보다 확실히 키로수가 늘어있었다. 내가 요즘 사랑이 넘쳤나, 자꾸 애교를 부리는 바바에게 홀라당 넘어가 간식을 많이 줬나, 그 유명한 고양이확대범이 되었구나! 싶었다.


사실 몸무게만 봤을 때는, 뚱냥이까지는 아니었다. 퉁퉁이 정도랄까. 하지만 고양이가 살이 찌면 건강에 좋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얼마 전,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장례를 치르다 보니, 뚱냥이들이 보통 체중의 고양이들보다 더 어린 나이일 때 무지개다리에 건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곧 터질 듯한 풍선처럼 걱정이 점점 커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바는 계속 애교를 부렸다. 맛있는 걸 내놓으라며 냥냥 거리며 따라다녔다. 못 들은 척했다. 머리를 종아리에 부비며, 슈렉 고양이 눈빛을 발사해도 못 본 척했다. 간식박스 앞에 망부석처럼 앉아있어도 모른 척했다. 며칠 뒤, 결국 바바가 단단히 삐쳤다. 근처에 가도 쓱 자리를 피해버리고, 쓰다듬으려 손을 뻗으면 하악 거리며 짜증을 냈다. 새벽녘에는 엄지발가락을 왁 깨물고 도망가기도 했다. 몇 번을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키며 깨어났다. '바바야! 왜 언니 발가락을 깨물어!'라고 말해봤자, 발가락 연쇄 깨물범은 뻔뻔하게 모른 쇠 할 뿐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할짝할짝 발바닥만 그루밍하곤 했다. 그저 네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인 건데...


고양이 커뮤니티에 들어가 '고양이 다이어트'를 검색해 봤다. 많은 실패기 중에 성공했다는 제목의 글이 종종 있었다. 하나 클릭하니 사료량과 간식량을 줄이기보다는, 양은 그대로 하되 칼로리가 낮은 사료와 간식을 주라고 쓰여있었다. 집사와 고양이가 모두 스트레스받지 않을 좋은 방법인 듯했다. 먹보냥이 바바에게 안성맞춤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다이어트 사료를 구입했고, 간식도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먹는 것만 잘 주면 금방 해결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바는 거리를 두었다. 화해가 쉽지 않았다. 바바와 눈을 마주치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친밀감의 표시라는 눈키스였다. 물론 눈을 떴을 때는 바바가 이미 자리를 뜨거나, 딴 곳을 보고 있기 일쑤였다.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 근처에 앉을 때도, 손을 뻗으면 손 끝만 간신히 닿을 정도, 딱 그 정도 거리에 앉았다. 바바가 노곤노곤해지는 것 같으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을 쭈욱 펴서 미간의 털을 쓰다듬었다. “언니가 미안했어.” 슬며시 사과도 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으면 바바가 괜스레 옆에 와서 털썩 누웠다. 오뎅꼬치 장난감을 흔들면 하얀 털의 배를 보이며 뒹굴뒹굴 애교도 시전 했다. 다시 맛있는 간식을 내놓으라며 냥냥 거리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삐져버린 퉁퉁이 고양이 바바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화해했다.


그래, 배고프고 예민하고 화난 날씬이보단, 배부르고 애교 많고 행복한 퉁퉁이 바바가 더 좋다. 뚱냥이도 아닌데 뭐. 건강에 문제만 없다면, 퉁퉁이 고양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퉁퉁이 단계를 넘어가는 건 걱정이 될 테니까, 아주아주 조금만 눈치껏 간식을 주어야지.


먹보 바바야! 그러니 그만 삐지고 내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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