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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음 Aug 02. 2024

화장실로 도망갈 땐 건드리지 말기


첫째 고양이 사또가 서열 정리를 하겠다고 하악 소리를 내면, 바바는 고양이 화장실로 달려 들어간다. 내가 발톱을 깎자고 하거나, 병원에 가자며 이동 가방을 들고 올 때, 혹은 자기만의 시간을 방해하려 할 때도 화장실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곤 바깥의 눈치를 보며 잠시 있다. 모래 위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는 듯하다. 달아오른 마음이 내려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간 바바를 탓하거나, 억지로 빼내지 않는다. 화장실로 도망갔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고, 숨 막힌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요즘 일 없나 봐? 일찍 퇴근하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은 저녁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이 없는 사람이 퇴근할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빈자리는 방금 내가 일어난 곳뿐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사에서 일하던 시절, 내 작은 소망 중에 하나는 '오늘 안에 집에 들어가기'였다. 12시를 넘긴 시간에 막차를 간신히 잡아 타고 집에 도착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니까. '사람들에게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입사 지원서에 썼던 말의 대가는 가혹했다.


학교 선후배와 친척들은 영화사에서 일하게 된 내가 신기한 듯했다. 맡은 영화는 무엇인지, 관객수는 얼마나 되는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짱짱한 배우진과 연출진이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당시 내가 담당하는 영화는 관객수 일만 명을 목표로 하는 독립 예술 영화였다. 대부분의 상대방은 예상보다 적은 관객수에 놀랐다. 호기심 어렸던 질문이 걱정 어린 조언으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무렵 나는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정했다. 집에 돌아가면 괜스레 가족들에게 화가 났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게 되었다. 아침 알림 소리에 눈을 뜰 때면,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곤 했다. 힘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요즘 일 없나 봐? 일찍 퇴근하네"

장난 반, 비꼼 반이 섞인 팀장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허허 웃으며 지나칠 뿐이었다. 하지만 울컥 뜨끈한 것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 할 수 있는 제일 나쁜 말을 했다. 그저 입모양으로만. 한 글자도 크게 소리 내진 못했다. 그 모습이 스스로 짠해서 또 눈물이 났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종종 화장실로 숨었다. 그곳에서 숨을 쉬고, 울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화장실로 들어간 바바의 표정을 관찰한다. 미간에는 주름이 지고, 콧구멍은 벌렁이고, 수염은 위아래앞뒤로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화장실에서 입모양으로 혼잣말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혹시 울고 있는 건가. 아니면 고양이 언어를 써서 욕을 하고 있는 건가.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화장실로 도망간 바바를 건드리지 않는다. 혼자 숨 고르기를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게 바바한테는 지금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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