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번, 친구 여럿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으로만 봐왔던 고양이들을 실제로 보게 되는 거냐며 다들 한껏 들떴다. 즐거운 집들이 타임이 기대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많은 고양이 바바가 걱정이 되었다. 초인종 소리가 계속 들리거나, 현관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여러 명이 왔다 갔다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 친구들과 집 앞 마트에서 모였다. 다 같이 장을 보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오손도손 팔짱을 낀 채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세심한 친구들이라 고맙게도 본인들이 먼저 조심조심 행동해 주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큰 소리를 내지 않겠다며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 집에 들어올 때면 고양이 사또와 바바가 중문 앞으로 달려오곤 했다. 기지개를 켜고, 바닥에 뒹굴며 배를 보이고, 얼굴을 부비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만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두 고양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소란스럽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친구들의 낯선 입장 소리에 놀랜 것이 틀림없었다. 구석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거였다. 어쩌면 고양이들이 마중 나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친구들은 약간 김이 샌 듯한 얼굴이었다. 간식까지 손수 구매해서 준비해 온 친구는 눈썹이 4시 40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처럼 축 쳐저버려서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집에 들어와 한상 가득 음식을 해 먹고, 틀어놓은 TV 예능 프로그램이 다 끝날 때까지도 고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를 한번 쓰다듬어 보겠다는 친구들의 달콤한 꿈은 잠잠해지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오랜만에 모인 터라 수다는 끊이지 않았고, 즐거운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었다. 어디선가 끼익 나무 소리가 났다. 거실 한쪽에 있던 방문이 살짝 틈을 벌리며 열리고 있었다. 소리 난 곳을 보니 사또와 바바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 이미 친구들끼리는 작은 룰이 하나 만들어진 상태였다. 호랑이 무늬를 가진 고양이 바바는 사람을 무서워한다니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고, 절대 돌고래 소리를 내지 말자고. 정해진 룰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은 애가 타고 있는 듯했다. 몇몇이 주먹만 쥐고 손을 동동 거리는 게 보였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곁눈질로는 다들 고양이에 초집중 상태였다. 만져보고 싶다거나, 가까이와 주었으면 한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이런 친구들의 마음도 모르고 사또와 바바는 그저 멀리서 이 쪽을 흘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때가 되었다며 한 친구가 가방에서 슬며시 고양이 간식을 꺼냈다. 평소 우리 집 고양이들도 잘 먹던 간식이었다. 친구는 천천히 바닥에 누웠다. 그리곤 간식을 든 손만 사또바바에게 쭉 내밀었다. 친구의 손이 가까워져 올수록, 눈동자가 커지고 털이 곤두서던 사또바바는 혼비백산하더니 결국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이후 친구들이 다 갈 때까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괜스레 서운하고, 아쉬워진 친구들은 장난처럼 ”우리가 아주 예뻐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너희들이 됐으면, 우리도 됐다. 흥!”이라고 말하며 웃으며 떠났다.
친구들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왔다. 중문 앞에서는 사또바바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냐옹냐옹 끊임없이 잔소리를 시전 하며 졸졸졸 따라다녔다. 오늘 낯선 사람들 때문에 자기들이 좀 힘들었다고 칭얼거리는 듯했다. 얼굴을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아진 고양이들이 골골송을 우렁차게 불렀다. 사또와 바바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사랑받으면 되나보다. 모두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거다. 집사인 내게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아도 충분한 것 같다. 그 애정이 고맙고 또 고마워서, 온마음이 행복으로 충만해진다.
한때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상처주곤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단짝 고양이들과 지내며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중이다.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존재에게 최선을 다해 애정을 주려고 노력한다. 사또바바의 사랑으로 내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채워지듯이,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존재에게 그런 따뜻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