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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 있을 것인가.

가슴과 팔목에 철삿줄을 동여맨 채.

by 히읗

산만한 편집자를 멈춰 세운 오늘의 한 문장 2.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국어 영역에서 발췌(편집)


어머니의 변명은 끝끝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좀처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뜻밖에도 아버지의 죄를 순순히 시인하는 그녀의 한마디가 내게는 그토록 엄청난 충격으로 깊이 남겨졌던 탓이리라.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아버지의 그 죄라는 것을 내 스스로 함께 나누어 지니고 만 느낌이었고, 그 때문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는 눈빛이 깊고 어두운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무서운 환영은 저주처럼 내 곁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시커먼 어둠 저편에 숨어서 음산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어디에나 숨어 있었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나와 부대원들은 훈련에 대비해 참호를 파다가 발견한 유해를 인근 마을의 노인과 함께 수습하여 매장하는 일을 행한다.


두개골과 다리뼈를 꼼꼼히 문질러 닦은 뒤, 노인은 몸통뼈에 묶인 줄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완강하게 묶인 매듭은 마침내 노인의 손끝에서 풀리어졌다. 금방이라도 쩔걱쩔걱 쇳소리를 낼 듯한 철삿줄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살을 녹이고 뼈까지도 녹슬게 만든 그 오랜 시간과 땅 밑의 어둠을 끝끝내 견뎌 내고 그렇듯 시퍼렇게 되살아 나오는 그것의 놀라운 끈질김과 냉혹성이 언뜻 소름끼치도록 무서움증을 느끼게 했다.

노인은 손목과 팔에 묶인 결박까지 마저 풀어낸 다음 허리를 펴고 일어서더니 줄 묶음을 들고 저만치 걸어 나갔다. 그가 허공을 향해 그것을 멀리 내던지는 순간 나는 까닭 모르게 마당가에서 하늘을 치어다보며 서 있는 어머니의 가녀린 목 줄기와 그녀가 아침마다 소반 위에 떠서 올리곤 하던 하얀 물 사발이 눈앞에 떠올랐다가 스러져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멀리 메마른 초겨울의 야산이 헐벗은 등을 까 내놓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사위는 온통 잿빛의 풍경이었다. 피잉, 현기증이 일었다.

광주리를 머리에 인 어머니가 모래밭을 걸어오고 있었다. 돌돌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를 거슬러 강변 모래밭을 어머니가 혼자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었다. 모래밭은 하얗게 햇살을 되받아 쏘며 은빛으로 반짝였다. 허리띠를 질끈 동인 어머니의 치맛자락이 흐느적이며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햇살에 부신 눈을 가늘게 오므리고 줄곧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꿈속에서처럼 나는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한 사내의 환영을 보았다. 그건 아버지였다. 언젠가 어머니의 낡은 반닫이 깊숙한 옷가지 밑에 숨겨져 있던 액자 속에서 학생복 차림으로 서 있던 그대로 그건 영락없는 그 사내였다. 나를 어머니의 배 속에 남겨 놓은 채 어느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밤, 산길을 타고 지리산인가 어디로 황황히 떠나가 버렸다는 사내. 창백해 뵈는 뺨에 마른 몸집의 그 사내가 어머니와 함께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놀란 눈으로 풀밭에 앉아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머니의 눈썹과 코, 입의 윤곽과 야윈 목 줄기까지 뚜렷이 드러날 만큼 가까워졌을 때 사내의 환영은 어느 틈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얗게 반짝이는 모래밭 위로 어머니가 찍어 내는 발자국만 유령처럼 끈질기게 그녀의 발꿈치를 뒤따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중략]

저것 봐라이. 날짐승도 때가 되면 돌아올 줄 아는 법이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만치 웬 사내가 서 있었다. 가슴과 팔목에 철삿줄을 동여맨 채 사내는 이쪽을 응시하며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퀭하니 열려 있는 그 사내의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채로였다. 애앵. 총성이 울렸고 그는 허물어지듯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불현듯 시야가 부옇게 흐려 왔다.

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 있을 것인가. 해마다 머리맡에 무성한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을 지천으로 피워 내며 이제 아버지는 어느 버려진 밭고랑, 어느 응달진 산기슭에 무덤도 묘비도 없이 홀로 잠들어 있을 것인가.


- 임철우, 「아버지의 땅」 -



Q.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에서 연상되는 상황이 현실이 될 경우 ㉮(날짐승)에 투영된 염원은 실현 가능성이 사라진다. O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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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O


잠깐 정답에 대한 해설을 하고 넘어가자.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은 ‘아버지’가 ‘어느 버려진 밭고랑, 어느 응달진 산기슭에 무덤도 묘비도 없이 홀로 잠들어’ 피워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연상되는 것은 곧 아버지의 외로운 죽음이다. 또한 '날짐승도 때가 되면 돌아올 줄 아는 법’이라는 어머니의 말에서 '날짐승'에 투영된 것은 아버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염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에서 연상되는 아버지의 외로운 죽음이 현실이 될 경우 '날짐승'에 투영된 어머니의 염원은 실현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


수능 모의고사 선택지 중 한 문장일 뿐이지만, 이 문장조차 곱씹어 보니 마음이 참 아리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알 수 없는 땅에 홀로 잠들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날짐승이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처럼 아버지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오늘 나를 멈춰 세운 한 문장을 살펴보자.



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 있을 것인가.


먼저 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데, 어머니로부터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듣게 된 후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피해 의식을 지닌 채 아버지에 대한 무서운 환영을 보게 된다. '나'는 군대 훈련 중 오 일병과 함께 참호를 파다가 이름 모를 유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유골의 주인을 찾기 위해 인근 마을을 찾아간다. 한 노인으로부터 6·25 전쟁으로 인해 많은 시신이 묻혔던 곳을 알게 되고, 그 노인과 함께 유해를 수습한다. 그리고 노인의 형님 또한 6·25 전쟁으로 인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첫눈을 맞으며 '나'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버려진 땅 밑에 웅크리고 누워 있을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버지의 삶도 생각해 본다.


지금은 21세기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나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었고, 과거보다는 전쟁이, 폭력이, 빈곤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오늘도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소식이 뉴스를 도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화두였는데, 길지 않은 텀을 두고 여기저기서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는 여전히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불안감 속에 익숙해져서 그렇지, 실상은 전쟁을 겪고 완전히 화해하지 않은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일이지만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다. 따져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전쟁을 몸으로 경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쟁을 떠올리면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


<아버지의 땅>에서 전쟁의 속성은 '철삿줄'로 묘사된다.

'쩔걱쩔걱 쇳소리를 낼 듯한 철삿줄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살을 녹이고 뼈까지도 녹슬게 만든 그 오랜 시간과 땅 밑의 어둠을 끝끝내 견뎌 내고 그렇듯 시퍼렇게 되살아 나오는 그것의 놀라운 끈질김과 냉혹성이 언뜻 소름끼치도록 무서움증을 느끼게 했다.'

전쟁의 끈질기고 냉혹한 속성은 인간의 뼈를 녹슬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싱싱하게 되살아 난다. 전쟁은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이념과 종교의 갈등 때문이든, 권력과 정치적 이익 때문이든,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을 하기 위해서든 죽음이 동반되지 않는 전쟁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인간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대체로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닥친다.


'가슴과 팔목에 철삿줄을 동여맨 채 사내는 이쪽을 응시하며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퀭하니 열려 있는 그 사내의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채로였다. 애앵. 총성이 울렸고 그는 허물어지듯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철삿줄을 동여맨 채 구부정하게 서 있는 사내의 눈이 잔뜩 겁에 질려 있다. 그리고 총성 소리가 들리자 허물어지듯 앞으로 고꾸라진다. 물론 이 장면은 '나'가 본 아버지의 환영이지만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두려움과 나약함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준다.


인간은 약하다. 전쟁 앞에서 그 나약함은 더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은 언제든 곧 죽음으로 치환될 수 있으므로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발가벗겨진 두려움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이 잔혹한 전쟁 속에 놓여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이 내 아버지라면, 그리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아버지를 내가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 상상만으로 가슴이 조여지고 무기력해진다.


전쟁은 왜 일어날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영토와 자원의 확보를 위해, 권력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념과 종교 갈등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은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인데, 어떤 종교에서 인간을 죽이고 폭력을 자행하라고 가르칠까? 그런 종교가 있을까? 그러나 신앙과 국가는 다르기에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전쟁이 일어난 것일 게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을 거쳐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 때문에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전쟁은 필요한 것인가? 현실적으로 이 세계는 이미 전쟁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이지, 전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전쟁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전쟁은 정당화된다.

전쟁을 통해 어떤 집단이, 어떤 나라가, 어떤 권력자가 거대 이익을 취하기 위해, 그것 때문에 내 아버지가 철삿줄로 묶인 채 잔뜩 겁에 질려 허물어지듯 고꾸라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느 버려진 차가운 땅에 무덤도 묘비도 없이 홀로 잠들어 있을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면서 찾아 헤매야한단 말인가? 정작 그 참혹하고 냉정한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만이 양지바른 곳에 정갈한 묘비를 갖추고 잠들어 있지 않은가? 누구를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 있을 것인가.

아직도 수많은 아버지들이 지금 어딘가에 쓰러져 누워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거창한 이유에서든, 전쟁은 정당화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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