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에디터다.' - 에디토리얼 씽킹 중에서

by 히읗

산만한 편집자를 멈춰 세운 오늘의 한 문장 3.


오규원, 「봄」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국어 영역에서 발췌(편집)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아래 내용을 참고하여 문제를 풀어보세요.

「봄」은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시인의 탐구를 보여 준다.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상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다시 언어에 구속된다는 필연적 한계를 갖는다. 그래서 시인은 기존의 언어 사용 방식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이를 통해 언어와 대상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Q.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은 대상들을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외부 상황에 변화를 주었음을 의미한다.

O X

.

.

.

.

.

.

.

.

.

.

.

.

.

.

.

정답은? X

잠깐 정답에 대한 해설을 하고 넘어가자.


참고 내용에 따르면 이 시는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탐구한 것이다. 즉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상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다시 언어에 구속된다는 필연적 한계를 갖는다'는 것이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기존의 언어 사용 방식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고 했다. 즉, ‘봄’을 '자유'라고 하지 않고, ‘지옥’이라고 불러본 것이다. 그러나 ‘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고, 필 꽃은 피고 반짝일 것은 반짝인다. 즉, 언어와 상관없이 대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므로, 대상을 언어로 규정하는 것의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은 대상들을 언어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언어 사용 방식에 변화를 준 것일 뿐, 외부 상황에 변화를 주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 이제 오늘 나를 멈춰 세운 한 문장을 살펴보자.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이 문장을 보면서 나는 수많은 회사원들이 떠올랐다. ‘회사원’이라니, 도통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뭉뚱그린 표현이다. 회사의 일원이라는 뜻이니 누군가가 직업을 소개할 때,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원입니다.”라고 한다면 ‘흠..., 백수는 아니군.'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나는 직업을 말하거나 써야 할 경우 두 가지를 무작위로 번갈아 가며 쓴다. 하나는 회사원이고 하나는 편집자이다. 편집자도 엄밀히 말하면 무엇을 편집하느냐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달라진다. 사실 내가 하는 일(월급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을 명확히 설명하는 표현은 없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출판사이자 중소기업으로 적어도 2인분의 일을 하게끔 구조화되어 있다.(물론 대표님은 그리 생각을 안 할지도...) 어쨌든 나는 원래 하기로 약속된 일, 즉 수능 국어 문제집을 만드는 일을 주 업무로 하고는 있다. 그러니까 기획부터 문제 제작을 포함한 원고 작성, 표지와 내지 디자인 관여, 바쁠 땐 인디자인 조판, 검토와 교정 및 인쇄 요청 등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원래 내가 해야 할 업무에 더해 예측불가로 치고 들어오는 업무들이 추가되고는 한다. 우리 회사의 초창기 때에는 업무의 모호성이 훨씬 더 짙었다. 편집자들이 문제를 만들다가 간식이 떨어지면 마트에 가서 간식을 사다 채워 넣는 일도 했고, 워크숍에서 할 게임 준비도 했으며, 이렇다 할 마케팅팀이나 영업팀이 따로 없었기에 교재 판매 촉진을 위한 이벤트까지도 편집자들끼리 모여서 기획했다. 그래도 그때는 열정이 있었다. 모의고사 문제를 만드는 시기에는 이른 아침에 해장국집에서 퇴근을 했고, 중간중간 책을 한 권씩 터는 날이면 내일 반차를 예약해 놓고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더랬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가 조금 더 커졌고, 각 부서가 생겨났으며 정해진 시간 안에서 각자의 할 일만 하고 가면 된다. '편집자'로서의 업무가 훨씬 뚜렷해진 반면 내 생각에는 이상하게 '회사원'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나는 '회사원'보다는 그래도 '편집자' 혹은 '에디터'라고 불려지길 바랐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편집자' 혹은 '에디터'로써 부여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규원의 시 「봄」을 통해 나의 일,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이 역시 논리적으로 정리가 안되는데, 그냥 언어의 한계에 갇히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모호한 나의 생각을 표현해 보자면 이렇다.


'회사원'이라고 해서 만들 책을 안 만들겠는가. 문제집을 만든다고 해서 편집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게 맞나? 나는 '회사원'의 탈을 쓰고 늘 '딴짓'을 꿈꾼다.

회사원 나부랭이가 ‘딴짓'을 꿈꾼다고 해서 내가 내가 아닌 게 되겠는가.


나의 정체성에 이름을 붙이려 애쓰지 말고 그냥 반짝거리는 일을 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딴짓을 야금야금 해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