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은 Oct 17. 2019

 사소한 것에 마음을 내는 것에 대하여

 with  「연필로 쓰기」

연필,

김훈의 연필로 쓰기제목을 보고, 문득 몇 년 전 찾아간 신경외과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었던 이십 대 시절, 나는 목표가 생기면 그것에 과하게 집중했던 것 같다. 원하는 대학에 편입 원서를 내고 전공 시험을 치르는데 긴장감이 보통 수준을 넘어서인지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답안을 쓰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채점자가 무슨 글자인지는 알아볼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일념으로 글쓰기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손은 더 심하게 떨렸다. 중간중간 손을 탈탈 털어가며 겨우 답안을 작성했다. 그 후 필기시험이라는 동일한 조건만 주어지면 손 근육이 이상 증세를 보이며 떨렸다. ‘서경증’이라고 신경외과 의사는 말했다. 긴장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글자를 쓸 때만 손이 떨리는 증상이라고 했다. 다행히 나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손으로 글씨를 쓰면 악필이 된다.

이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를 걷어 내니 실제 표지는 작가가 직접 연필로 쓴 원고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도 역시 악필이었다. 서경증으로 인한 악필은 아닌 것 같았지만 서체에서 묘한 친근감이 들었다. 책의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지극히 사적인 경험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책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책은 생각보다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간장을 심심하게 친 시골 순두부 같았다. 시골에서 고모가 직접 만든 순두부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맛은 순하고 담백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고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못 견딜 정도의 호기심을 유발하지도 않았으므로 잠들기 전 한 챕터씩 천천히 읽었다. 기억을 더듬어 연필로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밑줄은 떨리지 않는다.) 내가 느낀 단편적인 생각들을 아래에 기록한다.


‘첫추위에 모든 잠자리들은 죽는다고 하는데, 잠자리들이 어디서 죽는지 알 수 없다.’

- 「호수공원의 산신령」 중에서


작가가 나와 같은 것을 궁금해한 것에 놀랐다. 나는 도시의 비둘기 떼를 보면서 직장 동료에게 ‘저 많은 비둘기들은 어디에 가서 죽는 걸까요?’라고 말했다가 엉뚱한 사람이 된 적이 있다. 가을 잠자리 떼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린 시절에는 잠자리 떼를 많이 보았고, 도시에 나와 살면서부터는 비둘기 떼를 많이 보는데, 그들이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 죽지 않는 것을 보면 죽음을 맞이할 때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그 어리석은 짓, 해서는 안 될 짓, 함부로 써낸 글, 너무 빨리 움직인 혓바닥, 몽매한 자만심, 무의미한 싸움들, 지겨운 밥벌이, 계속되는 야근과 야만적 중노동……’

- 「늙기와 죽기」 중에서


나는 뜨끔했다.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작가가 말하는 ‘젊어서 저지른 온갖 못난 짓거리와 비루한 삶’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간 나는 대단한 무엇을 하지도 않으면서 주변의 이야기에 마음을 내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어떤 것을 하고자 하면 긴장을 심하게 할 정도로 그 목표에 집중했다. 여전히 철은 없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행복이란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외로움이란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내가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 「늙기와 죽기」 중에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변에 대한 ‘관찰’이 아닐까 한다. 행복하지 않은 요즘 뒤늦게 깨달은 것은 내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관계가 삶을 더 따듯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물에 빠진 세월호만 세월호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더 크고 더 썩은 세월호였으니, 세월호가 어찌 세월호를 구할 수 있었겠는가.’

- 「동거차도의 냉잇국」 중에서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버스 안 출근길이 떠오른다. 역사 속의 먼 슬픔이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가까운 슬픔이다. 국가 권력이라는 큰 세월호가 거짓 속보로 국민들을 안심시켰지만, 이내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온 국민은 경악했고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당시 나는 출퇴근 시간이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렸는데, 오며 가며 내내 울었다. 벌써 5주기를 맞이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함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반으로 갈린 지 오래되었고,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은 ‘지겹다’는 차가운 말을 동네 어른들이 종종 하는 것을 들을 때면 참담하고도 무서웠다. 요즘 뉴스를 보면 ‘더 크고 썩은 세월호’가 여전히 많아 보인다. 이 편 저 편을 편들고 싶지 않고, 정의와 원칙을 내세우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싸움판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나는 아직 한국을 떠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고, 내 삶에서 당당한 개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여러 번 읽은 부분은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이다. ‘80살에 가까워서 한글을 깨친 할매들’이 쓴 시들을 소리 내어 엄마에게 읽어주었는데,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나서 혼났다. 나는 상상도 못 할 삶을 살아낸 할매들의 시 속에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한탄보다는 주변 사람이나 동물에게 보내는 걱정, 연민, 사랑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감자를 심어 아들 딸 주고 즐거워하는 김옥교 할머니,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 아이 엄마를 걱정하며 오일장 수입을 내놓은 이옥남 할머니, 피란을 가면서 소와 닭을 걱정하는 김춘조 할머니, 할머니들의 글을 보면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이 보인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얽힌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관심을 갖는 일로 나의 시간과 마음을 소모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쌓여갔고, 내 삶을 살아내는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는 이런 나에게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어쩌면 더 소중한 삶의 부분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대신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통해 그가 관찰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삶에 온기를 더하라고 알려주었다.


지친 일상의 어느 순간, 여행의 길가에서 문득, 따뜻한 시골 순두부가 생각날 때, 이 책을 다시 펼쳐 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새의 선물의 의미, 그리고 진희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